산청으로 휴가를 갔다. 맑은 시골 공기에 아침 일찍 잠이 깼다.
운동삼아 부리마을 위로 5분 걸어 저수지가 있는 골안 마을로 올라갔다.
저수지도 보고 싶고 산 밑에 앉아 있는 마을의 끝이 어디인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잘 닦여진 아스팔트 도로가 끊어지면서 콘크리트 길이 이어지고 그 길의 마지막 끝부분부터
산으로 오르는 소로가 이어지고 길 옆에 오래된 시골집이 한 채 있었다.
내가 보기엔 이 집이 마지막 집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여기서 저 고개를 넘어가면 어디로 가며
그리고 차가 갈수 있는 길이 별도로 있는지 궁금하여 산을 올려다 보며 주위를 기웃기웃 거렸다.
마지막 집의 주인이신 할머니(연세가 70이나 되어 보이신다)께서 내다 보니 집 앞에
처음 본 외지 사람이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있어 궁금하셨는지 밖으로 나오시면서 내게 말을 건네신다.
'어디서 오셨능교?' '어델갈라꼬 길을 찾는가요?' 하셨다.
나는 '예 저는 아래 부리마을 아버님집에 다니러 왔는데 안골마을 구경도 하고 저 너머로 가는 길이
있는지 궁금해서 아침에 운동삼아 걸어 올라왔어요. 동네가 참 조용하고 좋네요' 하였다.
할머니께서 내 모습을 보시더니 '아, 황00씨 아들이 아입니꺼?'
나는 반가와서 '예, 맞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아이가, 영판 아부지하고 닮아서 척 보이께 알아보겠고마. 그래 모두 편안하십니껴?'
하시면서 '아이고 고마 좀 들어오이소. 낄이논 물이라도 한잔 하구로' 하시면서
나를 이끌고 마당으로 들어가셔서 머그컵에 헛개나무 달인 물이라고 갈색으로 된 물을 한 잔 가득
퍼서 주신다.
'자 마셔보이소 이기 참 좋은기라예. 우리 아들도 셋이나 있는데 오늘 댕기로 온다 해서 다리논깁니더.
술 먹는 사람한테 좋다고 하는 긴께 어서 마시소'
하시면서 할머니는 내 아버님과 본인과의 관계를 내게 한참 설명하시면서 친근하게 대하여 주셨다.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내 할머니로 부터 서로 관계가 맺어지는 먼 친척임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난 모르던 할머니와의 정감어린 짧은 대화를 나눈 순간 매우 행복감을 느꼈다.
그것은 몸에 좋은 헛개나무 달인 물을 얻어 마신 것 때문도 아니고
모르고 있던 먼 친척을 상봉한 기쁨도 결코 아니다.
내가 행복감을 느낀 이유는 내 얼굴모습이 내 아버님과 많이 닮았다는 것을 할머니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기에 그렇다.
어릴 때 내 얼굴모습은 내가 보아도 남이 보아도 아버님과 어머님과는 전혀 닮지를 않았었다.
특히 내가 어릴 때 가장 자신없고 부끄러워 했던 내 코는 들창코였는데 부모님 코는 콧날이 오똑하시고
잘 생기셨으며 누나들이나 동생의 코는 모두 부모님을 닮아서 잘 생겼는데
하필 내 코만 이상하게 납작하고 들창코여서 어린 마음에도 왜 나만 코가 이렇게 생겼을까
하면서 내심 고민을 많이 하였었다.
어머니는 내가 코 때문에 걱정을 하거나 풀이 죽어 있으면
'참 이상하데이 니를 엎어서 키워 그렇나? 왜 너만 코가 납작한지 모르겠네 참 별일이네' 하시면서
'코를 높게 만들려면 엄지와 검지로 코뼈를 양쪽에서 모아주면서 눌러주면 물렁뼈가 단단해지면서
코가 오똑하게 바뀔 수 있으니 자꾸 생각날 때마다 코뼈를 눌러서 아래로 당겨주라'고 하셨다.
게다가 당시 어린 나에게 친척들이 '너는 경호강 다리 밑에서 울고 있는 걸 주워와서 키웠다'고
내 출생의 배경을 농담으로 이야기 하곤 하였는데 반은 믿지 않았고 반은 혹시 그럴지도? 하면서
문득 문득 생각이 든 것도 바로 그 코 때문이었다.
진짜 친 자식이면 왜 나만 코가 납작하고 들창코이겠는가!
구 후 안경도 쓰게 되고 어머님이 시킨대로 코를 자꾸 만져서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기에
결혼한 이후에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지만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사춘기 시절까지
내가 아버지 아들이 맞긴 맞는지 긴가 민가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릴 때 난 비쩍 말라서 차라리 어머니를 닮았다고 주위사람들은 이야기 해 왔다.
그러던 중 40대 후반이 되면서 살도 많이 쪘고 얼굴모습이 점차 아버님을 닮아간다고 주위에서
이야기를 듣게 되자 신기하기까지 하였다.
이젠 내가 내 모습을 거울이나 사진으로 보아도 아버님 모습을 읽게 되었으니 얼마나 신기하겠는가?
아버님은 연세에 비해서 늙어보이시지 않는 모습이라서 실제 나이를 이야기 하면 처음 본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주름도 많이 없으시고 해서 그런 모양이다.
지난 번 친구가 아버님 사진을 보고는 내가 중절모를 쓰고 사진을 찍었는지 착각을 하였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신기하게도 어릴 때 보이지 않았던 내 모습에서 점점 나이가 들면서 아버님 모습과 똑 닮아간다는
이야기를 주위에서 들으면 참 기분이 좋다.
이로써 나는 주워서 키운 자식이 아닌 것을 확신할 수 있고
또 아버님처럼 나이도 많이 안들어 보인다는 의미도 되기에 그렇다.
아버님 제가 당신의 장남 맞습니다. 고맙습니다.
2006년 어머니 생신 날 나들이 가서
공원에서 딸기를 드시는 아버님 - 1925년 소띠이신 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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