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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야기

어머니와 건망증

 

어머니와 건망증


3년 전

지은 지 오래 된 고향 부모님 집이 누전으로 완전 전소한 후

자식들이 모아서 새로 지어드린 자그만 시골집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새살림을 차린 듯이 오순도순 살고 계신다.


아버님은 술을 즐기시기에 친, 인척과 동네 친구 분들과 후배들과 자주 술자리를

해 오고 계시는데 안타깝게도 아버님께서 난청이 있어 귀가 잘 들리지 않은 관계로

최근까지 아버님과 가까이 정을 나누시는 분들은 아버님을 위해서 대화를 하실 때 목청을 한껏 올리시며 큰 소리로 이야기 하시는 것을 종종 보면서 주위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모두 아버님의 난청을 자연스럽게 이해를 해 주시는 것 같다.


어머님은 올해 들어서

시골에 간 우리들에게 종종 같은 질문을 부쩍 반복해서 하시는 것이 조금 이상하였다.

조금 전 같이 식사를 한 메뉴를 되물으시거나 

조금 전 어디 식당에서 먹었는지 또 물으시거나

큰 손자 태호가 집에서 돈 타가지 않고 박사 공부 잘 하는가며 아내에게 서 너 번

반복해서 물어보셨다. 아내는 그 때마다 '예 지가 벌어서 공부하고 있어요'. 했다.

그러면 어머님은 ‘그래, 아이구 참 장하다..’ 하신다.

서울에 남겨 놓고 내려오신 아버님 명의의 작은 주택의 전세금이 요즘 얼마인가 라든지

두 번 세 번 같은 질문을 자꾸 반복하여 물어보시는 바람에

아내와 누나와 동생과 나는

어머님이 건망증을 보이기 시작하시는 구나하고 깨닫게 된 것이 약 1년이 되어 간다.


50이 된 나도 조금 전 했던 일과 명함 주고받은 사람들의 이름을 가끔씩 깜박 깜박 잊는 경우가 많아서 한참동안 애가 탄 적이 있는데

84세이신 어머님이야 오죽하시랴 하고 자식들은 이해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궁금한 것을 자꾸 반복하여 물으시는 어머님을 뵙거나 자꾸 반복하여 대답을

해 드려야 하니 좀 이상하시다 하고 걱정을 하게 된다.


오래전 일은 잘도 기억을 하시는데 며칠 전의 일, 몇 시간 전의 일들을 기억을 못해내시는

안타까운 적이 많으시다. 그래서 일부러 강조해서 알려드리면 기억을 해 내시는데

무심코 알려드리면 기억을 잘 못하시는 것 같다.

아무도 없는 시골에서 아버님과 두 분이서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반복하여 보내셔서

긴장감을 갖지 못하셔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노화에 의한 자연스런 건망증이신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신경정신과 의사들은 우려할 정도가 아니고 숫자 계산도 잘 하시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하기야 동네 할머니들과 마을회관에서 고스톱도 잘 하시는 것을 보면 전혀 문제없으시다. 나는 고스톱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시골에 내려가면 아버님과 술을 마시고 아버님은

일찍 잠자리에 드시게 하고 아내와 어머니와 읍내사시는 이모님과 함께 재미삼아 고스톱을 한다.

어머님은 패도 잘 보시고 이기는 횟수가 우리보다 더 많으시다.


그런데 가끔 찾아가서 뵈는 사촌형제들이나 먼 친척들께서는 어머니와 대화를 하면서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하시는 어머님을 처음 보시고는 다소 놀라는 빛이 역력하다.

네 어머니가 혹시 치매가 오는 것 아니냐 하는 식으로

기운을 빼는 질문을 하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고모님, 왜 같은 질문을 자꾸 하세요? 참 이상하시네요... 하시면

어머님은 ‘그래 요즘 내가 조금 전 들은 것이 통 기억이 안 나서 자꾸 묻는다.’

‘왜 그라는 지 모르겠네...‘

‘내가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서 이러는 가 싶다. 아이고 참 내...원’

하시면서 한 숨을 쉬신다.


그러면 내가 나서서 주변 사람들에게 어머님을 대변하여 이야기를 한다.

‘건망증이 좀 있으신가 봐요. 너무 걱정하는 식으로 말씀하지 마세요.

치매는 아니시고 이제 연세도 있으신데 당연하다고 생각하니 너무 꾸짖듯이 이야기 하시지

마세요.‘ 하면서 어머님 편을 든다. 주변에서 자꾸 이상하게 바라보거나 면박을 주거나

하면 어머님께서 자신감을 잃고 주변사람들과 대화를 잘 못하실 수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어머님께서 자신감을 잃지 않으시도록 뭔가 기억을 잘 하고 계신 것이 있거나

기억을 하고 계신 것을 오히려 칭찬을 해 드리고 있다.

그리고 꼭 기억을 해 두셔야 할 사항은 글로 써서 탁자 위나 냉장고에 붙여 드리면

좋다. 조금 전 시골의 아버님 어머님과 전화통화 하면서 ‘저희가 휴가 때나 되어서

시골에 내려간다.‘고 말씀드리자 ’그래 나도 안 그래도 느그들이 바빠서 휴가 때나 올끼다 하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다.‘ 하셨다. ’특별히 아픈데도 없고 요즘 편하고 괜찮다.‘라고

하셨다. 건강이 더 나빠지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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