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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야기

아버님과 보청기

 

아버님과 보청기


아버님께서 오른쪽 귀가 어두우신지는 15년 정도 되었다.

어머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잘 듣지 못하시고 ‘뭐라꼬’ ‘난 당체 못 알아듣겠네’

하시며 티격태격 하신지 오래 되셨고

요즘은 보청기까지 하셨는데도 더 심해지셔서 잘 못 알아들으시는 경우가 잦다.


전화를 걸어서 ‘아버지 저 득수인데요’ 하면

‘누고? 영수라꼬’하시면 나는 ‘아니요 태호 애비예요‘ 하고 소리를 지른다.

겨우 알아들으시곤 ‘아하 그래, 별일 없니? 내가 요즘은 통 안 들린다. 가만 있거라 느그 엄마 바꿔 주께’‘ 하시면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바로 넘기신다.

물론 동생이 나보다 더 자주 전화를 드렸기도 하고 동생과 내 목소리가 형제라서 비슷하기도 해서 그러려니 하지만 통화할 때마다 답답하고 걱정이 된다. 정작 아버님은 얼마나 답답하실까 하고 생각하면 더욱 안타깝다.


아마도 젊으셨을 때 알게 모르게 중이염을 앓으셨거나 고막의 손상이 있었거나 노인성 난청이 심하신 것이거나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불편을 많이 겪고 계신다.

주변 일가친척들이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웃는데 아버님은 잘

못 들으시니 주위 사람들의 얼굴만 이리 저리 살피신다. 보청기도 여러 개 바꿔서 사용을

해 보셨는데도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다.

아버님께선 무조건 크게 말한다고 잘 들으시는 것은 아니다. 약간 작은 소리라도 주파수(음 대역)가 잘 들리는 범위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은 이러한 아버님께선 어머니와는 대화를 잘 하신다.

60여년 긴 세월을 곁에서 함께 살아 오셨기에 중요한 단어와 어머니의 표정과 입 모양을 보시고 대충 알아들으시는 모양이다.

중요한 대화를 하고자 하면 누나는 아예 넓은 백지에 연필로 중요 단어를 써 가면서

차분하게 이야기 해 드리면 의사소통의 문제는 아직 없다.


아버님을 닮아서일까 웬일인지 나도 벌써 조금씩 오른 쪽 귀가 왼쪽보다 잘 들리지 않는다.

특히 막내아들과 대화할 땐 아이가 말소리가 작고 빨라서 잘 못 듣거나 다른 의미로 듣는 적이 있다.

그래서 다시 묻는 적이 많다. 내가 ‘용호야 뭐라고?’ 하면 아내가 옆에서 ‘아이구 00라고 했어’하고 답답해하며 통역을 해 준다.


물론 비즈니스 파트너와 친구들 만나서 나누는 대화는 신경을 많이 쓰기에 놓치는 내용은 없다. 그러나 뉴스를 듣거나 연속극을 볼 때, 특히 요즘 개그프로그램을 볼라치면 음량을

12 정도는 올려야 제대로 들리고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요즘 젊은 아이들이 부르는 빠른 노랫말 가사나 랩은 제대로 들리지가 않는다.

그러다보니 자연 젊은 층이 즐겨 부르는 노래는 점점 듣지 않게 되어서 아는 노래가 없다.

그래서 가끔 가는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는 최소한 7,80년대에 유행한 곡까지가

내 애창곡의 한계이다. 나도 보청기를 끼어야 들리는 그 날이 오고 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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