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엔 뵙고 싶은 부모님이 계신 경남 산청 부리마을을 찾아갔다.
네살 때 식구들을 이끌고 남이섬으로 떠나와서 2년을 머무르시다가 자식들 교육을 잘 시키시며 좀더 낳은 생활을 꿈꾸시며 서울로 올라 오신 부모님
그리고 이제 45년이 흘렀다. 그 동안 잘 크고 결혼하여 난 두 아들을 가졌고 아내가 직장을 다니다 보니 큰 아들(태호) 작은 아들(용호)을 업어서 키워 주셨던 어머니 그리고 건강하셨기에 일흔이 넘도록 일을 하시다가 10년전 서울을 떠나 고향에 작은 집을 하나 사서 낙향하신 아버님
부모님을 찾아뵙는 일은 즐거움이기도 하고 길러주신 노고에 조그마한 보답이기도 하며 고향을 갔다와야 마음이 편안해 지는 자연스런 일이 되었다.
염소 몇 마리 오리 몇 마리 기르시며, 텃밭에 먹고 조금씩 나누어 줄 만큼의 채소를 가꾸시고 감나무 밤나무 몇 그루 돌보시며 조금씩 몸을 움직이실 수 있는 정도로 시골살림을 하고 계신 부모님을 찾은 것은 일요일이 아버님 생신이기 때문이었다.
작년에 시골집이 누전으로 불이 나서 모두 타버린 후 마을회관에서 부모님은 이장의 배려로 3개월을 보내시고 그 집터에 우리 자식들이 협력해서 지어드린 작은 집에 새로 살고 계신 부모님
동생 누나 우리 식구들이 한 대의 차에 타고 그다지 붐비지 않은 중부 고속도로를 거쳐 대진고속도로를 경유하여 고향 산청을 찾았다.
부리마을로 들어가는 길목 옆 들녁에는 이미 반은 추수를 끝냈고 아직 가을걷이를 하지 않은 논엔 잘 익은 벼가 싯누렇게 성숙한 빛을 뽐내며 서울사람들의 눈길을 빼앗았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부모님 뒷 밭에 주황색으로 익어가는 단감나무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 노랗게 커져가고 있는 호박 그리고 앞 마당에 심은 목화에서 하얀 솜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염소는 지난 주 새끼를 두 마리 낳아서 식구를 늘렸다 밤은 이미 다 털어서 나누어 먹으라고 한 자루를 택배로 보내주셔서 밤나무 밑을 돌아다녀 왕밤은 한 개 밖에 못 주웠다.
일요일 아침 부모님을 모시고 남해대교를 건너 상주해수욕장을 지나서 삼동면 미조리 포구로 달려갔다. 가을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시골 길 노란 감이 달린 감나무 조금씩 단풍이 짙어져 가고 있는 가을 산 이순신 장군이 전몰한 곳을 지나서 미조항구로 갔다. 미조항의 공판장에는 마침 가을 갈치축제가 한창이었다.
회안주에 소주를 즐기시는 아버님은 기분이 많이 좋아 보이신다. 어머님 생신이 곧 다가 오기에 그 때 또 우리들이 다니러 내려 오겠다고 하니 어머님도 뭐하러 자꾸와 하시면서도 금새 환해 지신다. 부모님의 맘을 어찌 내 다 헤아리겠는가 하지만 찾아 뵙고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일이 부모님께는 즐거움이고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은 확실할 것이다. 난 부모님께서 아직도 이곳 저곳 나들이 하시는 것을 즐기시고 잘 드시는 모습에서 건강하심과 삶의 의욕을 가지고 계심을 확인하는 것이다.
부모님을 고향에 두고 떠나오며 헤어지는 순간에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서로를 그리워하고 사랑한다는 정표이리라.
건강하셔서 막내아들 용호가 결혼하여 며느리 볼 때까지 살아 계시면서 항상 지금의 부모님 모습이라면 좋겠다는 기도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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