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족이야기

남이섬의 한 사내아이

남이섬의 한 사내아이


1960년 남이섬에

다섯 살 된 사내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부리마을에서 태어나

경찰서에 다니시는 아버지와 밭일을 하시는 어머니

그리고 두 딸이 사는 시골 집에서 태어나 그 집안의 장남이 된

그 사내아이입니다.

그 아이의 부모님은,

시골에서 큰 희망도 없이 어렵게 살아가기보다는

서울로 가서 돈도 벌고 자식들도 제대로 가르쳐야겠다는

뜻을 세우셨고 드디어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됩니다.

사내아이는 멋도 모르고 시골을 떠나서 멀리 여행을 하게 된 것입니다.

들뜬 아이는 트럭도 타고 배도 타고 이사짐을 풀고 정착한 곳이

남이섬이었습니다.

사내아이의 고모집이 남이섬에 있었고

그 남이섬은 마침 고모부 집안 땅이어서

서울로 가기 위한 2년의 준비기간 동안 살기엔

사내아이 가족에겐 부담도 없고 외롭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더욱 좋았던 것은 아이의 아버지가 염소나 소를 키우는 일을

매우 좋아하셨는데 남이섬은 최적의 목장이었습니다.

염소가 다 자라면 아버지는 몇 마리씩 배에 싣고 내다 팔으셨고

소도 파시고 하였습니다.

풀도 잘 자라고 밤나무도 많고 옥수수도 잘 자랐습니다.

논은 적었지만 추수하고 나면 볏짚으로 새끼도 꼬고 초가집 지붕도

잇고 소 여물 끓여 먹일 정도는 되었으니까요.

그때만 해도 사료는 없었으니까 섬에서 자란 식물이 먹이가 되었지요

감자나 고구마 농사도 잘 되었습니다.

보리도 심었고 수수도 심었습니다.

남이섬엔 사내아이집을 포함하여 너댓 집이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한 집안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사내아이는 주로 형들과 누나들과 함께 놀아야 했습니다.

이듬해 사내아이의 동생이 태어났지만 같이 놀 수가 없었습니다.

형들과 누나들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많은 것을 익히고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메뚜기 잡아서 구워먹고

모래사장에서 개미귀신이 개미잡아 먹는 것도 보면서 강에 가서 물놀이도 하고

배고프면 풀밭에 삐삐를 뽑아서 씹어 단물도 빨아 먹고

옥수수깡을 씹어 단물도 먹고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굴렁쇠를 굴리면서 남이섬을 누비고 다니고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겨울엔 양말을 두 켤레 신고 귀마개하고

목도리 두르고 장갑으로 중무장한 후 

꽁꽁 언 북한강에 철사로 만든 썰매를 띄우고 배고픈 줄 모르고

얼음을 지쳤습니다.


사내아이는 그 중에서도 굴렁쇠 굴리기가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아침 밥 먹고 누나 형들이 강 건너 방하리 국민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남이섬은 사내아이의 독차지였습니다.

단연 굴렁쇠굴리기의 기능보유자가 될 법도 합니다.

요리조리 오솔길을 따라서 물구덩이 큰 돌을 피해가면서 마치

자동차 운전하듯이 한 번도 넘어뜨리지 않고 오랫동안

굴렁쇠를 슁슁 거리며 잘 굴린 아이는 남이섬 안에서는 그 아이가 유일합니다.


여름엔 옥수수를 따서

감자를 캐서 삶아 먹었습니다.

수박도 토마토도 참외도 직접 밭에서 따 와서 바로 먹었고

상추도 풋고추도 바로 밭에서 따와서 씻어 먹었습니다.

가을엔 참 풍성하였습니다.

벼를 베어서 고모집 넓은 앞마당에 큰 멍석을 깔아놓고

어른들이 탈곡기로 벼알을 털어내는 풍경은 아무리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발로 돌리는 탈곡기가 돌아갈 때 내는

웅 웅 소리는 참 신기하였습니다.

햅쌀로 인절미를 만들어 나누어 먹었습니다.

잘 익은 콩도 멍석위에 놓고 도리깨로 쳐서 콩알과 껍질을 분리하였습니다.

남이섬의 가을은 사내아이에겐 가장 기억나는 계절입니다.

유독히 많은 밤나무 중에서도 섬 한가운데 가장 크고 많이 열리는

왕밤나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르익은 가을 아침 일찍 일어나 이른 밥 얼른 먹고

누나따라서 아이는 손 바구니 하나 들고 밤 주우러 갈 생각에 설레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전 날 가랑비가 살짝 왔었는지 이슬인지 밤나무 밑의

풀들이 촉촉하게 젖어있었습니다.

떨어진 왕밤은 먼저 보고 먼저 줍는 사람차지입니다.

바구니 가득 밤을 줍고도 더 줍고 싶어서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립니다.

왕밤나무 가지마다 밤송이가 주렁주렁 달리고 밤송이가 입이 벌어져서

무게를 견디지 못한 윤기가 반들반들한 왕밤이 툭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면 '내 꺼' 하면서 쏜살같이 달려가서 먼저 줍는 그 기분이 삼삼하여

사내아이는 가을이면 어른들이 밤나무의 밤을 털기 전 며칠 동안

계속 밤 주우러 아침잠을 설쳤습니다.

쪄서 먹고 구워 먹고 날로 먹고 밤맛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사내아이는 남이섬에서 2년간 지내면서

몇 가지 잊지못할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여름 홍수가 왔을 때 일입니다.

누나 형 들은 학교도 못갑니다. 북한강 물이 누런 황토색으로 변해서

넘실넘실대며 도도히 남이섬을 삼킬 듯 상류에서 하류로 세차게 흘러내려

갈 때면 장화신고 어른들 뒤따라서 강가로 나갑니다.

꿀꿀거리며 돼지도 떠내려가고 큰 황소도 음메 하면서 떠내려 갑니다.

어른들은 안타깝게 쳐다봅니다. 생각같아선 배를 띄우고 건져내었으면

하는 눈치들입니다.

강가에 작은 나뭇가지엔 검은 물뱀들이 물살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주렁주렁 많이 매달려 있습니다. 사내아이에겐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사내아이의 외삼촌이 공군 조종사로 근무하셔서

정기적으로 정찰비행을 나오셨는데 어머니께 몇월 몇일 남이섬으로

정찰비행을 하니 모래사장에 나와서 수건을 흔들고 서 있으라고 편지가

오곤 합니다. 어머니는 섬사람들에게 기별을 해서 모두 비행기 구경

하자고 합니다. 외삼촌은 정확한 시간에 남이섬 상공에 낮게 고도를 낮추어서

굉음을 내며 남이섬을 지나 청평발전소 쪽으로 비행했다가 다시 기수를 돌려

거슬러 올라오며 지나갔습니다. 어머니와 외삼촌의 짧은 만남입니다.


사내아이에게 남이섬의 추억과 아련한 기억이 뚜렷하고

아름다운 것은 다섯 살 여섯 살 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학교도 가지않은 때 묻지 않은 철없던 시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루 종일 먹고 놀고 아무런 의무도 부담도 없던 나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도 아이의 부모님은 곧 서울로 이사해야 한다는 커다란 삶의 무게에

눌려서 사셨는지도 모르지요.

서울로 이사와서 식구들은 추억의 남이섬으로 자주 찾아갑니다.

경춘관광이라는 회사에 팔려 옛 모습이 다 바뀌어 버린 추억의 섬을 자주도 찾아갑니다.

그 아련한 추억속으로 빠져보고 싶어서 어른이 되어 아내와 연애할 때도 남이섬을

갔습니다. 아이를 낳고 아이들과 부모님을 모시고 남이섬을 갔습니다.

깨끗하게 단장된 남이섬 어느 한 부분에 서서 사내아이 시절 밤 줍던 밤나무가

이 나무인지 저 나무인지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가족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 아이의 세 아버지  (0) 2007.03.13
자랑스런 아들  (0) 2007.03.13
최진석 소위 - 조카에게  (0) 2007.03.13
송도찬 선생님과 우리 부부  (0) 2007.03.13
고마운 남이지기님들께  (0) 2007.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