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무 1존(三無 一存 ), 예외는 있다.
ROTC사이엔
학연 지연 혈연은 없고 오로지 기수만 존재할 뿐이다.
맞는 말이다.
고향, 학교, 친척 등의 기타 요소들은 ROTC집단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또한 무의미하다. 오로지 선배냐 후배냐 동기냐 만이 중요하다.
아무데서나 주위에서
초록색 반지를 만나면 반가워 말을 건넨다.
혹시 몇기 이신가요?
‘0X 기 인데요‘ 하고 말씀하시면
‘어이구 선배님, 전 17기입니다.’로 바로 선배대접을 깍듯이 하면서 대화가 시작 된다.
혹은 ‘전 0Y 기입니다’ 라고 하면
‘어 그래요 난 17긴데 반갑구만... 어디서 근무했나?’하고 자연스럽게
후배와 격의 없는 대화를 이어간다.
세상만사 모두 그렇지만 3무 1존 거기에도 예외는 있었다.
1979년 4월
유난히 찬바람이 슁슁 불어대던 밤...
광주포병학교 14구대,
야간 점호가 끝나고 단꿈을 꿀 시간, 밤 11시
갑자기 구대장이 주번근무자인 내게 ‘빰빠라’를 발동하셨다.
‘지금부터 1분 이내에 팬티바람으로 전원 연병장으로 집합한다’
‘주번사관 뭐하나 !! 빨리 집합시켜라’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전원 기상 1분내 팬티바람으로 연병장 집합’하며
단잠을 자고 있는 동기생들을 큰 소리로 깨웠다.
‘야 뭐야 장교가 뭔 빰빠라야 에이 C...'하면서도
난생 처음 받아보는 빰빠라 기합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난 근무복을 입고 소총을 메고 주번사관 근무 중이었으므로 애매하였다.
구대장께 물었다.
‘구대장님 저도 옷 벗고 나갑니까?’
구대장 왈 ‘야 이놈아 근무자가 자리를 지켜야지 어딜 나가 넌 대기해’
‘예 알았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나를 제외한 전 구대원은 모두 팬티바람으로 연병장에 집합하였고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고통의 빰빠라 기합을 받게 되었다.
나는 주번근무를 서게 되어 운 좋게도 열외가 되었고 따뜻한 내무반에서
혼자 대기하며 동기들이 어서 기합을 끝내고 입실하기를 기다렸다.
혼자 열외로 앉아 쉬고 있자니 좌불안석이었다. 하지만 내겐 하늘이 내려 준 행운이었다.
약 1시간이 좀 더 지났을까?
추위와 고통의 기합에 악이 받친 동기생들이 덜덜 떨면서 괴성을 지르면서
복도로 몰려들어 오고 있었다.
난 너무 미안하여 말도 못 건네고 화가 나 씩씩거리는 동료들의 눈치만 보고 복도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야, 힘들었지 수고했다.’ 하면서 말을 건네 보았지만 반응은 모두 귀찮다는 듯이
냉담하다.
광주포병학교 새벽의 칼바람 속에서 살얼음이 언 하수구에서 맨살에 포복을 했다고 하니
얼마나 춥고 고통스러웠겠는가?
동기생들은 샤워장에 들어가서 찬물로(구대장이 찬물만 나오도록 조작함)
온몸을 씻으면서 추위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댄다.
그 소리를 나 혼자 복도에서 듣고 있자니 마치 수십 명의 귀신이
한꺼번에 울부짖는 소리로 들려 섬뜩하였다.
목욕을 마치고 모두 내무반에 들어와 씨부렁거리다가 피곤한지 이내 잠이 든 동기생들...
적막이 흐른다.
그런데 조금 후 그러니까 새벽 한시가 가까워 진 시간,
구대장께서 나를 포함하여 몇 명의 동기생들을 조용하게 깨워서 바깥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연병장에 집합해 보니 구대장을 포함하여 4명이었다.
구대장께서 하시는 말씀,
‘쉬, 조용히 해라 오늘 내가 느그들하고 한잔 할라쿤다.
오늘 이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이야기 하지 마래이.
오늘 날 잡아서 내가 한턱 내니께 고마 암말 말고 송정리역 건너편 골목에
떡갈비 집으로 가자. 떡갈비 놓고 소주한잔 하자 마..‘
아니 이건 또 어인 횡재수인가?
고통의 빰빠라에서 열외된 것도 미안하고 송구한데 그 맛있다는 떡갈비와 사제 소주를???
내겐 엄청난 행운의 순간이었다.
구대장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예, 아무한테도 이야기 하지 않을 겁니다.
그 새벽 송정리에서 구대장께 얻어먹은 떡갈비와 소주는 평생 잊지 못한다.
다음날, 같이 떡갈비 먹으로 갔던 친한 진주 KS대학 동기에게 물어 보았다.
'야 내가 어제 주번근무하면서 빰빠라 열외하고 너희들하고 같이 구대장 따라가서
떡갈비까지 얻어먹고 재수가 억수로 좋았는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나도 모르겠다.'
동기생이 내게 살짝 귀띔을 해 준다.
‘우리 구대장이 진주 KS대학에 니하고 같은 고향 산청 출신 아이가 이 바보야...’
2008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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