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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것들

세모(歲暮)의 한강변에서

 

 

세모(歲暮)의 한강변에서

 

  한해가 저물어간다. 세모(歲暮)의 한강변은 춥고 황막하다. 털장갑에 귀마개까지 중무장을 했지만 겨울철 강바람이 코끝에 매섭고, 흐르는 강물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느껴져 을씨년스럽다. 서리 맞아 하얗게 센 억새들이 차가운 강바람에 흐느적대며 슬피 운다. 물오리 서너 마리가 강물에서 한가로이 유영하며 먹이를 찾는 듯 연신 자맥질을 해댄다. 어디선가 철새들이 군무(群舞)하듯 날아왔다 사라지는 가하면 하늘높이 기러기가 편대비행을 하며 서쪽으로 날아간다.

  
세월의 여울목에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세월은 오는 것이 아니라 가는 것이라 했던가. 강물은 저렇게 지난 수천 년을 역사의 애환(哀歡)을 안고 말없이 흘러갔겠지. 금년 한해도 다사다난(多事多難)하기는 여느 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격동의 한해였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전국적인 구제역파동, 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 시민혁명으로 붕괴된 이집트·리비아 등 독재정권, 월가점령시위(Occupy wall street)와 탐욕 자본주의, 유럽재정위기의 파급과 경제 불황,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한미 FTA비준에 따른 갈등심화, 북한 김정일의 사망 등 크고 작은 수많은 사건으로 얼룩진 한해였다.


  
그래서 그런지 연말이라 하지만 예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 같다. 이맘때면 거리는 흥겨운 크리스마스분위기로 달아오르고 캐럴소리도 요란할 텐데 분위기가 썰렁하다. 송년모임에서도 별로 감흥이 없는 표정들이다. 대신 작금의 우리사회가 처한 불안과 위기를 걱정하고 우려하는 얘기들이 많다. 정치, 사회적으로 갈등과 대립이 심각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중소기업도산, 청년백수급증 등 세상살이가 어렵다보니 송구영신(送舊迎新)의 기분인들 나겠는가 싶기도 하다.


  
흐르는 강물에서 영겁의 세월과 인생무상을 교감(交感)한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고 결국은 다 한줌의 재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뻔히 알면서도 권력과 부귀와 공명심에 집착하고 탐욕을 부리는 것이 우리들 인간인 것 같다. 예전보다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한 사회가 되었고, 사랑과 자비를 외치는 종교인들이 인구의 70%를 웃도는 사회가 되었건만 증오와 불신으로 분노하는 ‘성난 사회(angry society)’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요즈음 우리사회를 보면 지식인, 저명인이라고 하는 이들이 저마다 그들의 편향된 생각과 주장을 펼치며 목청을 높이고 ‘나 여기 있소이다’ 하고 존재를 과시하듯 하는 행태가 한심스러울 때가 많다. 한강물에 빠지면 강물이 오염될까봐 먼저 건져야 된다는 소릴 듣는 정치인은 태생적으로 그렇다 치자. 그런데 최근에는 소위 연예인과 교수, 작가, 자칭 철학자 심지어는 법조인까지 SNS의 날개를 달고 극단적인 주장과 무책임한 비판으로 상대방을 조롱하고 비아냥대며 선동성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들이 인터넷과 스마트폰, 트위터, 페이스북 등으로 날리는 자극적인 단문메시지를 수많은 젊은 활로우어(follower)들은 그대로 믿고 무비판적으로 리트윗(재전송)하며 악플과 욕지거리를 마냥 해댄다. 더구나 ‘나꼼수’니 ‘딴지일보’라는 희한한 매체까지 등장하여 상대방을 비난하는 패러디물을 올리고 집중적으로 인신공격을 해대는 세상이다. 그들의 입맛에 따라 세상을 재단하여 왜곡된 사실과 정보를 사실인양 무차별적으로 유포시켜 사회적 혼란과 분노를 조장하고 있다.

  소수의 목소리가 다수의 의견을 대변하듯 급속히 확산됨으로서 침묵하는 다중(多衆)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일시적 감성과 분노로 포플리즘에 넘어가 이성과 지성이 무너지고 정의가 사라지다 보면, 건전하고 성숙한 시민사회의 실현은 점점 요원해진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사회의 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신묘년(辛卯年)도 가고 있다. 이제 며칠 있으면 임진년(壬辰年)의 새해가 시작된다. 임진년은 우리나라가 420년 전에 임진왜란을 겪은 해이다. 내년에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변화와 어려움이 예상되는데 우리 모두가 자기성찰(自己省察)을 통해 은인자중(隱忍自重)하고 따듯한 마음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두 합심해서 위기를 헤쳐 나가 용이 승천하듯 국운이 크게 상승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바람결에 가수 혜은이의 노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안고서, 마음을 싣고서~

 

 

 

탁승호

    (전) 한국은행, 금융결제원 임원
    (전) 국민대학교, 단국대학교 교수
    (현) 금융연수원 겸임교수, 한국지급결제학회 회장
    (현)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편집위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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