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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것들

한국적 리더십 - 죽음을 무릅쓴 간언

죽음을 무릅쓴 간언(諫言)....김처선

성(性)을 상실한 중성인간인 환관(宦官)은 명관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환관은 자신의 뜻을 세울 수 없는 오로지 Yes Man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산군 때, 효자동 환관촌에 정이품(正二品)의 벼슬에 노환관인 김처선(金處善)이라는 분이 있었다. 환관의 우두머리로 장관급에 해당하는 높은 자리였다.
연산군의 포악과 음란이 날로 심해졌다. 임금이 궁중에서 처용(處容)놀이를 하며 그 음란이 극에 달했다.

그는 집을 나서며 <오늘 나는 죽어서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임금 앞에 나아가 극언으로 간(諫)하였다.
<늙은 몸이 역대 네 임금을 모셨고, 경서(經書)와 사서(史書)에 대강 통하지만 고금에 상감마마와 같은 엉망인 분은 없었사옵니다.>

분노가 폭발한 연산군은 활을 가져오게 하고는 활시위를 당겨 엎드려 간하고 있는 김처선의 갈빗대에 꽂혔다.
그래도 노 환관은 계속 간하였다.

<조정의 대신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늙은 내시가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다만 상감마마께서 오래도록 임금 노릇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옵니다.>


연산군은 화살 하나를 더 쏘아 김처선을 바닥에 나뒹굴게 하고는 그 다리를 부러뜨리게 했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걸으라고 했다.
<상감께서는 다리가 부러져도 걸어 다닐 수 있겠사옵니까?>라고 노 환관이 말을 하자........
<말끝마다 대꾸한다.>고 그의 혀를 잘라버리게 했다. 혀가 돌아갈 때까지 행실을 고치라고 간하였다.

연산군은 끝내 김처선의 배까지 갈라 창자를 꺼내서 죽게 만들었다.
그의 시체는 매장도 못 하게 하고는 깊은 산에 버려 짐승의 밥이 되도록 했다.
그리고는 분을 참지 못 하고 널리 포고문을 내려 김처선의 이름자인 처(處)자와 선(善)자를 쓰지 못 하도록 금자령(禁字令)까지 내렸다.

김처선의 용감한 죽음을 두고 선비사회에서는 <환관만도 못 한 놈>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김처선은 환관사회에서 우상이 되었고, 환관들이 효자동의 환관촌에 그의 신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부화뇌동(附和雷同)해서 살지 않고, 죽음을 무릅쓰고 옳은 것을 간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적 리더상이다.

강남의 귤나무를 강북에 옮겨 심었더니 탱자가 열리더라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의 리더십과 서구의 리더십은 분명히 다르다.

한국의 정신과 의식구조에 맞는 리더십은 무엇인가?
의롭지 않은 처사에 목숨을 걸고 바르게 하기를 권하는 것이 우리의 핏속에 면면히 이어온 참 리더상이다.


리더십 한국학. 이규태. 신태양사. 중에서 일부를 수정함.

서경석님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