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3대 불가사의를 꼽아본다면....
첫째 불가사의는 나의 현재 몸무게다. 내 몸무게가 놀랍게도 74kg에 도달한 것이다. 결혼 전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갔던 적이 있다. 그것은 군 복무 시절에 63kg였었는데 잠시 동안 뿐이었다.
항상 60kg을 밑돌았던 나의 몸무게는 57~58kg을 크게 벗어난 적이 없었다. 어머님은 항상 내가 살이 찌기를 열망하셨고, 맛있고 영양이 많은 음식을 많이 해 먹이고 가끔 보약도 사 먹이셨다.
내 스스로도 체중을 불리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많이 먹었다.
하지만 난공불락의 체중 60kg는 나와는 상관없는 오를 수 없는 나무였다. 자장면도 곱배기에 도시락밥을 비벼 먹어도 체중은 그대로 였다. 목욕탕에 가서 체격이 좋은 다른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언제나 저들과 같은 몸매를 가질 수 있을까? 어릴 때 잘 먹고 컸는데 왜 내 몸은 이렇게 말랐을까? 어머니를 닮아서 호리호리한 것일까? 어떻게 하면 살이 찔 수 있을까? 그 것은 내 인생의 영구 과제로 남아 있었다. 내 몸무게는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약 10년 가까이 60kg을 정복하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이었다. 그랬던 내가 약 40세가 되면서부터 나도 모르는 사이에 61kg - 63kg - 67kg - 70kg으로 향상되었다. 담배도 술도 끊지 않았기에 나의 체중이 늘어나는 특별한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마음을 여유롭게 가지고, 잘 먹고, 열심히 일한 것과 술을 계속 많이 먹었다는 것 밖에는 딱히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영원히 60kg을 돌파하지 못하고 노년을 맞이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기 시작하였다. 2년 전부터 73~75kg을 유지하고 있다.
과거에 즐겨 입던 바지의 허리 사이즈는 28~30인치, 이미 바지들은 폐기처분 되었고
이제는 32인치 허리사이즈도 입으면 배가 답답해 한다. 오늘 아침 체중계는 74kg을 가리켰다. 바지를 살땐 이제 34인치가 자연스럽다. 과거 말라깽이 시절에 런닝셔츠나 티 셔츠, 팬츠, 와이셔츠는 95 사이즈를 입었는데 이젠 100 사이즈를 때론 풍덩한 105사이즈도 그리 크게 보이지 않는다. 어머님도 친척들도 내 모습을 보면 살이 찐 것이 신기하게 바라보신다.
둘째 불가사의는 얼굴과 코다. 어릴 때 양 미간이 넓고 얼굴이 둥글납작하며 납작들창고였던 내가 지금은 얼굴이 갸름해 졌고 두 눈 사이가 좁아지고 납작들창코가 많이 개선된 점이다. 어릴 적 사진을 보면 이목구비가 없고 순진무구형 얼굴형태였었다. 특히 가족들과 많이 틀린 나만의 얼굴 모습과 납작들창코는 내가 생각했던 가장 큰 콤플렉스였다. 어머님도 자신이 낳은 자식이지만 부모 형제들의 얼굴과는 많이 틀린 내 얼굴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셨고 내게 자주 말씀을 하셨다.
콧날을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모아서 콧날이 높아지도록 자주 만져주라고 하셨다.
그래서 난 생각이 날 때마다 손가락으로 콧날을 세우곤 하였다. 그런 효과 덕분인지 지금은 내 얼굴 모습에 콤플렉스를 가지기 않을 정도로 콧날도 서고
들창코도 개선이 되었으며 얼굴도 갸름해졌고 또 안경을 쓰게 되자 샤프해 보인다는
친구들도 있을 정도로 바뀌었다. 난 이렇게 변화된 내 모습에 대 만족이다. 어릴 적 고민하던 얼굴 모습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세째 불가사의는 내 직업이다. 어릴 적부터 어머님께서는 점쟁이에게 토정비결을 보셨는데 내 진로나 평생직업으로는
공무원이나 다른 사람의 녹을 먹는 회사원 체질이라고 판에 박은 결과를 얻었었다.
사업은 절대 하지 못하는 성품이라서 그저 회사원 또는 선생님, 공무원 같은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내겐 적격이라고 반복해서 들어 왔고 내 자신도 스스로 남들처럼 배짱이나 승부사 기질이
별로 없어서 그런 줄로 알고 군 생활을 마치고 대기업에 입사를 하였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높은 직책까지 올라가리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1990 이후 한국기업의 구조적 문제에 직면한 대 기업들의 개혁 변신 등의 움직임이 역동적으로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 내용과 질적인 면에서 지극히 형식적이고
밝고 풍성한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난 조직에서의 장차 큰 비전을 얻을 수 없으리라 스스로 직감하였다. 축소지향적이고 허리띠 졸라매기 식의 감축경영은 점점 과거로 회귀하는 퇴보경영이라는 판단이 섰다.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조직생활은 내겐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고 서서히 싫증이 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보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생겨났다. 직장을 그만 두었을때 어떤 친구는 다시 공부를 해서 학계로 나가라 어떤 지인은 한의사 공부를 하여 한의사가 되라 세무사 공인회계사 변리사 등 시험을 보고 자격증을 따서 전문직이 되라 새로운 회사에 취직을 하라는 등의 충고와 제안을 하여왔다. 하지만 난 엉뚱하게도 무역이라는 비즈니스 세계에 나를 던져 넣었고 몸소 10년째다.
과거 직장에서 국내 판매도 해 보았고 기업 경영에 참여도 해 본 경험으로 생각하였을 때
나는 제조업이 한국에서 얼마나 힘든 모험인지 알았고
대한민국의 기업이 국제 시장에서 얼마나 경쟁력측면에서 열세인지, 국내 제품의 국내 판매경쟁이 얼마나 치열한 지 그리고 얼마나 상호 취약한 바탕 속에서
치르어 지는지 몸소 체득하였기에 난 다시는 그렇고 그런 회사의 조직원이 되기는 싫었다.
큰 비젼도 없는 기업에서 시간을 벌면서 월급을 받아 살아간다는 일이 새삼스럽게도 무사 안이한 생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직장 생활을 다시 한다는 것을 내게는 이제 단순한 월급벌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물론 요즘엔 모두가 월급쟁이가 최고라고 하는 인식이 짙다) 그래서 몇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난 국제 마케팅(즉, 무역업)에 투신하기로 마음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뿌린 만큼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정직한 비즈니스분야라고 강한 확신을 가졌다.
물론 소규모 무역으로 큰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쉽지 않은 비즈니스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큰 돈 투자하지 않고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정직한 비즈니스라는 점에 난 매력을 느끼고 그러한 비즈니스라면 잘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을 가진 것이다. 부모님과 형제 자매 그리고 가까운 친인척, 그리고 친구들도 나의 예상치 못한 의외의 변신에 다소 놀라고 우려를 느끼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난 엄연히 지금 나홀로 무역업 10년을 채워가고 있다.
물론 미원그룹시절 수출 및 수출관리 7년 경험이 밑 바탕이 된 것을 사실이다. 내 상호를 걸고 직접 무역을 시작할 땐 완전히 맨 땅에 헤딩이었으며 비빌 언덕이 없었다.
아직도 부족하고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난 무역이 좋다. 맘에 든다. 일을 즐기며 한다. 이상의 내 인생의 커다란 변화는 내 가족, 친지, 친구들과 내 자신마저도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 변화된 모습이다.
그러나 위의 커다란 변화는 현재의 내가 존재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인생의 자신감과 깊이감을 보다 크게 가질 수 있도록 해 준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며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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