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족이야기

어머니의 소망

아버님 삼우제를 지내고

고향 산청에 다녀왔다.

 

어머님은 아버님 영정사진과 위패앞에

아버님이 평소 좋아하시는 술을 한잔 따라 놓으시고

불고기 한 접시와 과일을 놓고

눈물을 지으시며 아버님께 말씀하신다.

 

그리 와 보고싶어 하던 부리 집에 왔소.

땃땃한데 누워서 한잠 푹 자고 가소

그리고 나도 빨리 데리가소....

 

밤에 나 홀로 큰방에서 아버님과 함께 잠을 잤다.

시골집 주변에는 외등도 멀리 있어서

칠흑같은 어둠이 시골집을 둘러싸고

정적이 온 방을 감싸 안는다.

 

아버님의 영정사진을 나  홀로 지키며

아버님께서 담궈 놓으신 매실주를 홀짝 홀짝 마시면서

아버님도 한잔 드리고 나도 한잔 마시면서

10시 40분까지 아버님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불을 끄고 평소 아버님이 즐겨 누우신 위치에

이불을 펴고 내가 누웠다.

아버님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안하게 사시라고 중얼거리며

며칠간 나를 업습하였던 피곤을 내 몰기 위해서 깊은 잠을 청하였다.

임종하신 11월 1일 새벽부터

장례준비 

입관

성복제

조문객 인사

발인제

출상한 11월 3일

화장장 화장 

납골당 안치

분향제

토요일 오후 친지들 식사대접

일요일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월요일(11월 5일) 납골당 삼우제....

그리고 시골 산청 부리까지 5시간 운전

시골 집 도착 후 친척 및 동리 어르신들께 인사

아버님 유품 소각

간단한 저녁식사(읍내에서 산청식당 갈비탕을 먹었다.)

피곤에 절어있는 내가 이제 아버님 영정 앞에 매실주 몇 잔을 마시고

아버님께 안녕히 주무시라고 한 후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어제 태운 아버님 유품의 잔해에서 아직도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옷이며 모자며 신발이며 이불이며 내의며 그리고 기타 유품들은 아버님 가시는 길에

입고 쓰고 신고 가시라고 그리고 주무실 때 덮으시라고 태워서 보내 드린 것이다.

 

아버님께서는 꿋꿋한 모습으로 우리 곁을 떠나가신 터라서

아버님이 새삼 불쌍해 보이시지는 않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리라는 믿음으로

안타깝거나 아쉬움이 크지는 않았다.

그저 혼자 남으신 어머님의 외로움과 장차 생활의 고충이 눈물의 원인이다.

 

고향에 계신 어르신들은

형제같이 지낸 아버님이 저세상으로 떠나가심으로서 앞으로 쓸쓸함을 어찌 감당할까

하시면서 애통해 하셨다. 하지만 원망을 하지는 않으신다.

느그 아버지는 참 좋은 분이셨데이.. 마. 좋은 데 갔을끼다.

하지만 내사 마 참 애통하데이.. 그리 서로 형제간 같이 어울리고 술도 마시고

좋은 데 놀러도 다니고 했는데 고마 떠나 가 버린께 참 서글프데이...

 

집 도배도 새로 하고 아버님 유품도 정리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상경을 하였다.

그리고 오늘까지 만 6일을 어머님께서는 아들네 집에 머무신 셈이다.

 

어머님은 며칠 간 이런저런 생각을 깊이 하시고는 어제 아침에 드디어 심중의 이야기를 하신다.

'야야 내가 꼭 산청에 가서 혼자 잘 지낼 수 있을끼니까 내를 산청에

데려다만 주거라. 혼자 능히 잘 지낼 수 있다. 느그들이 마음이 않 놓이기는 하겠다만

내사 마 걱정없이 혼자 있으면서 밥도 낄이먹고 보건소도 다니고 마을회관에 나가서

같이 놀기도 하고 화투도 치고 동네 할마씨들 하고 이야기도 하고 지내면 내맘이 편하겠다.'

 

고모님들께 전화를 해서 어머니 뜻이 '시골에 가셔서 혼자 사시고 싶다고 하는데 어찌해야 할까요?'

하였더니 고모님들 왈 '그래 느그 어머이 얘기대로 해 드리라. 시골에 사시는 것이 훨씬 네 어머이

한테도 좋을기다. 느그 생각에는 어찌 늙은 엄마를 혼자 계시게 하나 하고 걱정이 되겠지만

노인들은 다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산청 부리에 혼자 사는 할마씨들이 많다....

걱정하지 말고 보내드리라. 이모도 있고 석채 작은아버지도 있고 주변에 말동무 할

친구도 있고... 산청이 훨씬 좋다. 서울에 딱 갇혀있으면 오히려 병난데이..

 

그래서 어머님 생신인 11월 15일 전날 우리 모두 산청으로 같이 내려가서

11월 15일 생신상을 보아드리고 시골 친구분들에게 이모님께 어머니 잘 부탁도 드리고

어머님을 홀로 산청에 두고 올라 올 계획이다.

나도 어머님의 굳은 의지와 현재 건강을 생각하면 크게 걱정은 되지 않는다.

어머님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리리라.

49제일에 다시 올라오셔서 같이 화계사에 가서 49제를 올리고

어머님이 다시 산청으로 극구 가시겠다면 보내 드리리라.

대신 이젠 시골집에 자주 찾아뵈리라...

 

 

 

 

 

 

 

'가족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장의 멋과 맛  (0) 2007.11.19
가을과 고향이 주는 선물  (0) 2007.11.16
하늘문 추모공원  (0) 2007.11.07
아버님 장례식 조문객들에 대한 감사  (0) 2007.11.07
유기농 주말농장의 소중함  (0) 2007.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