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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운이야기

중용

中庸(중용)

 

부족하거나 넘침이 없이 적당함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고

좌나 우로 너무 편중되어서 치우치지 않고 중도노선을 견지하는 자세이기도 하며

어느 한 곳에 광적으로 몰입하거나 유별나지 않고 상식적으로 무리가 없는

균형이 잡힌 생활자세라고도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의 현실은 중도를 지향하는 일반 대중을 평안하게 놔 두지를 않는다.

 

노정권편이냐 한나라당이냐

흑묘 백묘

보수 진보

극한 대립

양 극

찬성이냐 반대냐

파병이냐 철수냐

햇빛정책이냐 대립구도냐

해외파냐 국내파냐

적이 아니면 우군

칼이냐 코란이냐

양단 간에 결정하라

이분법의 논리

전진이냐 후퇴냐

합격 아니면 불합격

우반이냐 열반(돌반)이냐

부르조아주 아니면 프로레타리아

양반 아니면 상놈

신자는 천당 비신자는 지옥

천사와 악마

호감 비호감

네편 내편

할래 말래

산이냐 바다냐

술 먹을까 노래방 갈까 

짜장이냐 짬뽕이냐

가입이냐 탈퇴냐

 

우리 사회는 다양한 중도들에게 의견을 말할 여유와 틈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양 극단은 10% 씩이어야 하고

중용(중도)가 80% 이어야 하는데

거꾸로 양 극단이 40%씩이고 중도는 20%로 채 못되는 구조의 사회로 치닫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자넨 소신이 없구만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뭐야?

그러니까 찬성이야 반대야 그 점만 결론적으로 이야기 해

 

제품의 품질관리를 해 보면 제품의 품질은 중간 평균치를 중심으로 종의 모양으로

양쪽이 대칭인 모양으로 분포를 하며 중심에 그 많은 수가 몰려서 나타난다

이 구조가 가장 바람직한 품질의 안정적인 분포구조 이고

모든 전문가들은 기업의 제품이 중앙의 가장 높은 수를 차지하는 좌우 대칭의 뾰족한

종의 모양을 나타내도록 밤잠을 설치면서 제품의 품질을 관리한다.

즉 품질 하한선과 상한선의 간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제품의 품질은 중앙으로부터 가까이 있는 군을 합격으로 처리하며

양 극단을 불합격으로 페기한다.

최근 6 시그마  나노기술 등이 이를 의미한다.

 

사람도 사회도 국가도 마찬가지로 전 구성원의 품질(?)

즉 평균적인 사고 관점

도덕적 기준

윤리의식

부의 정도

정치의식 수준

공중질서 의식

사회의식

학력 등이

그 평균적 중앙값에 많은 사람이 몰려있게 되어 있는 것이 이치상 맞다.

그런데 실제 사회의 현상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공감이 가지 않는 공감할 수 없는 양 끝단에 서서 

토론도 부족하고 설득과정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설정해 놓은 양 극단 간에서 선택을 강요하고 강요당하는 우리 사회

종교집단 동창회 정당 동호회 후원회 장학회 회사조직 공직사회 정부기관 협회 조합 공공기관

하다 못해서 서너명 지인들의 만남 속에서도 양 편을 가르고

중간과 중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만연되어 있다.

 

고향 선후배 만남

가족 친지의 만남

동창생들의 만남

동호인 친구들의 만남

이해 관계인들의 만남 

여러가지 모임과 만남에서 우리는 강요하고 강요받는다.

 

과격한 사람들은 집착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말한다.

 

우리들의

갈길은 하나

목표는 하나

가는 길도 오로지 하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과반수의 의견이니 말 없이 따르라

좌든 우든 선택을 하라

중간은 우리에게 없다.

하는 식으로 구성원의 자연스러운 다양한 중도와 중용을 거부하는 풍조가 점점 더해 간다.

 

리더와 코드가 맞지 않으면 불필요한 존재 암적인 존재 조직에 해가 되는 존재

마치 서로가 맞서서 대립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자기 중심적 자기 아집으로 바라보며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을 경원시 한다.

 

건전한 다양한 목소리와 계층이 사회의 기반을 구성하고 있어야

선진사회이다.

독재 사회주의 극단적 자본주의에서는 이러한 균형잡힌 구조를 찾을 수 없다.

아니 그러한 구조가 뿌리를 내릴 수 없다.

 

현실은 다양성의 사회이다 

미 합중국의 경우 다 인종국가이고 

중국은 다민족 국가이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을 이해하고 아우르는 사회이다

그런 가운데 엄청난 경쟁력과 힘을 가지는 사회이고 안정된 구조이다.

나와 너 그리고 그들을 이해하고 하나의 가치있는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어느 한 곳에 소속이 되어야 하고

그것도 극단적으로 편향적일 때 멋있어 보이고 추앙을 받는 일면도 없지 않다.

어중간하게 가운데서 양쪽을 다 배려하고 고려하면서 이쪽도 옳고 저쪽도 옳다고 하는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하니라고 하는 중도층에 대하여는

그다지 시선도 주지 않고 마치 우유부단하여

있으나 마나한 존재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경상도냐 전라도냐

경찰과 검찰

정부와 야당

노무현 비노무현

MBC냐 KBS냐

4대 일간지냐 기타 신문이냐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

월급쟁이냐 소유주냐

강남이냐 강북이냐

도시냐 농어촌이냐 ....

신문이나 매스컴을 들여다 보면 모두 양각 구도를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솥단지의 다리가 3개 이어서 기울지 않고 반듯하게 서 있으며

카메라 받치는 다리도 3각대 이며

시합을 겨루는 씨름도 삼세 판

윷 놀이도 삼세 판

바둑도 삼세 판을 해서 공평하게 승부를 가려주게 되어 있다.

한번 두번으로 서둘러 끝장을 내지 않고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며

자연스럽고 조화로움 속에서 결론과 결정을 기다리며

발전을 해 나가야 할 시대임을 알아야 한다.

너무 조급하게 결정하고 결론을 내려하고 토론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조차

참아내지 못하는 조급증이, 아집증이 그리고 불균형증이 만연된 사회이다.

 

속이 깊고 신중하고 현명하고 인내심이 높고 균형이 잡힌 사람일수록

가운데 높은 봉우리에 서서 경거망동하지 않고 양쪽을 모두 바라보고

양쪽을 이해하고 문제점을 읽어내는 지헤를 발휘할 수 있다.

 

한쪽 끝에서서 저 끝에 있는 상대가 보일리가 없다.

그러하니 서로간에 끝도 없는 평행선 달리기 식의 논쟁과 오해와 증오 무시 모함만이

넘쳐나는 것이다.

세상을 살았으면 얼마나 오래 살았으며

배웠으면 얼마나 깊이 배웠으며

인간과 자연과 신의 섭리를 알고 깨달았으면 얼마나 깨달았을까

마치 자신이 신이나 되는 양

마치 자신이 그 분야의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정통한 박박사처럼 떠들 수 있는 위치인지

깨닫지 못한 극단주의자들이 목소리를 크게 내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우리 현실 사회의 부의 구조는 이제 종으로 표현을 하기 어렵다

일부 고소득 부자 층은 숫자는 적으나 그들이 소유한 부의 금액은 몹시 큰 금액이다.

봉우리가 하나인 큰 산의 모습을 한 부의 구조가 되어야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구조인데

우리 사회는 지금 봉우리가 두 개가 되어 있다. 뾰쪽한 부유층의 봉우리가 독도처럼 뚝 떨어져

솟아 있고 또 다른 쪽에 다른 서민 및 극빈층의 산이 솟아 있다.

중간이 사라진 형상이다.  

 

우리 조상들이 '三'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둔 지혜로움을 상기하면서 살아야 할 시대이다. 

 

'삼'은 양 극단과 중도를 이르는 말이다.

우리 사회가 양 극단 만으로 제대로 설 수가 없다.

더우기 중심(중도)이 크고 대다수의 튼튼한 기둥이 되고 양극단은 한쪽으로 기둥이 넘어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구도가 되어야 바른 사회이고

대다수가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사회가 될 것이다. 

'삼'이란 숫자를 멀리서 보면 한 봉우리를 가진 큰 산, 안정된 모습의 큰 산

모나지 않은 튼튼한 산의 모습니다.

중도가 80% 이상 존재하는 큰산이 되도록 구성원 모두가 노력해야 할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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