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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이야기

무역업의 장기 생존전략

 


무역업의 장기 생존 전략

맨앤비즈통상

2003. 11.1.



1999년 5월 1일 맨앤비즈통상으로 사업자 등록하고 사무실 간판을 내 건 날로부터 어언 50개월이 되었다.


첫해에 아무 것도 없이 허허벌판에 나는 조그만 집을 짓기 위해 집터를 고르고 있던 중 돌밭에 작은 공간 하나를 발견하고 나무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잇고 문을 달아 내어서 ‘내수’라는 이름의 작지만 내 소유의 움막집을 하나 지을 수 있었다.

그 집이 최초의 거래였던 LG DBP의 CVK납품 건이었다.


이듬해 초, 움막집 근처 터에 해외바이어의 부탁을 받고 여러 가지 자재를 사용하여 새 건물을 하나 지었는데 이름하여 ‘수출 오퍼’였다. 비록 코미숀을 받는 수출이지만 당시 건축주(바이어)는 중동의 두바이에 있는 화학 종합 수입판매상으로서 요구하는 건축사양이 매우 복잡했다. 석유화학제품으로 기초를 해 주고, 페인트 원료로 지붕을 덮고, 벽은 다양한 화학원료로 해달라 등 등, 나는 어렵게 여기 저기 도움을 받아서 비로소 빌딩을 하나 지었다. 바이어는 내게 집 짓는 재료와 방법을 가르치려고 작정한 건축주와 같이 뜸을 들이면서 많은 요구를 하였었다. 덕분에 나는 많은 건축재료를 섭렵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수고비를 받고 남의 집을 지어주기 시작한 셈이다. 굳이 집으로 비유한다면 여러 업종이 입주하도록 만든 주상복합건물이라고나 할까?


그 해 나는 베트남에 ‘직수출’ 거래처를 신규로 개척하였는데(하기사 무에서 출발했으니 모든 거래처는 신규개척일 수밖에..) 그 때 지은 집은 예전에 회사 다니면서 많이 다루어 본 FRP 재료로 만든 집으로 특색 있고 다른 사람들의 집과 차별화 된 나만의 주거용 주택이었다. 숙달된 조교의 솜씨를 발휘해서 반듯하게 지었다. 오래 살아도 쉽게 비바람에 손상되지 않도록 철저히 보강하고 모양도 제법 내어서 남들이 쉽게 흉내내지 못하도록 설계를 해서 가장 아끼는 MY HOME이 되고 있다.

그야말로 ‘직수출’이다 문패도 내 문패로 걸고 사람들에게 내 FRP집을 소개하기도 했다. 베트남은 이제 막 떠오르는 장래성이 있는 지역이므로 오래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든든한 집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 탄력을 받아서 그 해에 태국에 또 한 건의 ‘직수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집은 규모가 작았지만 에폭시로 지은 집으로 이것 역시 아무나 흉내내기가 쉽지 않도록 노하우를 발휘했다. 역시 수명이 최소 10년은 가도록 정성을 쏟고 자재도 좋은 것으로 지었다.


그러한 가운데 그 해 연말엔 선배의 조언으로 적은 별장을 짓기 시작했는데 건축주는 국내의 FRP제조업체 중 몰드를 제작하는 업체들이었다. 건축에 따른 수고비를 넉넉하게 주겠다는 건이고 비슷한 별장이 우리나라에 없는 독특한 것이어서 자청해서 지어 주었다. 이름하여 ‘수입 오퍼’였다. 비록 내 별장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 맨앤비즈통상만이 짓도록 독점 건축권을 받아 놓았다. 이제 똑 같은 별장을 지어 달라고 주문만 받으면 수고비가 생길 참이다. 별장도 지어보니 재미있고 짭짤했다. 그런데 한국에 없던 집을 지으니 준공검사(수입 시 화학물질관리협회검사)를 받는 절차가 있었고 오히려 이런 절차 때문에 아무나 집을 짓기가 쉽지 않은 장점이 있었다. 별장(수입)을 지을 경우 나는 당분간 내 소유의 별장은 굳이 투자하여 짓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자금도 부족했을 뿐더러 우선 내가 거주할 주택이 있고 당시엔 별장이 내겐 과분하다고 여겼으며 때가 되면 내 소유의 별장을 짓기로 하였다. 즉 직접 수입해서 STOCK SALE을 하거나 납품하는 ‘직수입‘은 당시 경험이 적은 나로서는 위험부담이 크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 번 별장을 짓고 나서 여기 저기 소문을 내니까 그와 비슷한 콘도나 펜션, 방갈로, 황토방 등을 지어 달라고 요청이 들어왔다. 나는 성의껏 유사한 모양과 재질로 다양한 레저용 주택을 지어주게 되었고 해당 건축주와 지금까지 관계를 맺고 계속 주기적으로 지어주고 있다.

즉 ‘수입 오퍼‘는 계속 나의 무역사업의 한 장르로 자리잡아 유지되고 있다.


또, ‘수출 오퍼’(즉 주상복합건물)도 계속 새로운 건축주와 인연을 맺으며 요구 건축사양대로 정확히 지어오고 있으며, 그 덕분에 싸고 빨리 잘 짓는다고 업계에 소문이 나니까 큰 건축주도 내게 건물을 짓도록 맡기기도 했는데 그것이 바로 필리핀 한진중공업의 경우다. 한진은 규모가 클 때는 거의 10층 규모의 복합건물을 지어달라고 했으며 그러나 작을 때는 작은 주택을 아주 지어서 자기들에게 팔라고도 했다. 한진중공업은 수고비를 많이 주었고 작은 집을 지어 팔라고 할 때는 건축비 에 + 이익을 높게 붙이더라도 한진이 인수를 해 주어 재미가 있었으며 아직까지 그 관계는 지속되고 있다.


어느 경우는 남들이 자기 집이나 남의 집을 지을 때 내 조언이나 도움이 필요하다고 도와달라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나는 가능한 무상으로 컨설팅을 해 주곤 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나중에 내게 집을 짓도록 맡길 건축주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내 집을 지어서 팔려고 할 때 하다 못해 목공 철공 인테리어업자 역할 또는 부동산 중개인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소중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었다.

때로는 내가 꼭 필요로 할 때는 수고비를 합리적으로 요구하고 노가다로서 남의 건축 현장에 직접 들어가서 품을 판적도 있다.


무역은 위의 사례처럼 집을 짓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

그 집이 내 집이든, 남의 집이든 그것이 별장이든, 콘도든, 펜션이든, 황토방이든,  주상복합빌딩이든, 헛간처럼 생긴 창고든, 이것저것 다양한 집을 지어보아야 진짜 건축가가 되듯이 무역도 이런저런 다양한 아이템, 다양한 형태의 거래를 해 보아야 그 사업 영역이 넓어지고 그 사업수명이 길어질 수가 있다. 오로지 초가집만 짓겠다던가 오로지 별장만 짓겠다던가 하고 고집하다가 유행이 지나가 버리게 되면 그때 가서 갑자기 경험이 전혀 없는 아파트나 다세대 주상복합건물 등을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자기가 자신 있는 어느 하나에만 목을 매어서는 단명할 수밖에 없다.

거래처든 아이템이든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이 거래처 저 거래처 여러 거래처를 개척해 놓아야 하고, 아이템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갖추어야 태풍과 홍수와 폭설이 오더라도 튼튼한 집이 몇 채라도 남아있게 되지 않겠는가? 그것도 초기에 의욕과 시간이 많을 때 이 집 저 집 다양한 건축물을 지어보고 주문도 받고 해야 그 사업이 오래 가는 것이다.


베트남 파트너와는 직수출 외에도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이는 건축에 비유한다면 집을 지어서 단순히 판매하는 차원을 넘어서 파트너에게 집을 짓는 노하우를 전수한다는 차원으로 발전한 것이 된다. 재료와 공구, 건축공법, 주택관리 등, 폭넓은 비즈니스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집을 지어 팔기보다는 어렵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비즈니스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무역의 심화 및 광역화로 인해 기존 파트너와 장기적인 관계 유지를 한다는 중요한 측면이 있다.

이리해야 뿌리깊은 나무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사업의 장기 생존력을 배가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건축경험을 쌓고 나서 나는 내가 지었던 유형의 건축물을 다른 사람(건축주, 실입주자, 레져시설 이용객)에게 한눈에 소개할 수 있는 조그만 복합전시장(홈페이지)을 만들어서 알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금년 초다.

축소모형의 다양한 건축물 샘플을 전시장에 지어 놓으니 여러 사람이 다녀가고 있다. 맨앤비즈통상이 어떤 건물을 잘 짓는지 보고 가고 있다. 다녀간 사람들이 비슷한 건물을 지어야 할 경우 나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올해 초부터 좀더 욕심을 내어서 새로운 건축영역을 조금씩 손대기 시작했다. 즉 ‘다양한 내수품목의 확대’를 꾀하는 일이다. 이를 집짓기에 비유하면 조그만 식당 건물을 지어 직접 경영을 하는 일과 비슷하다. 물론 내겐 힘들고 생소한 분야이다. 원료나 반제품을 무역으로 하는 본업(집짓기)에서 상당히 동떨어진 완제품(집짓기) + 서비스제공(식당운영)을 취급하기 시작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국내 경기침체와 경험부족으로 이렇다할 성과가 미미한 상태이지만 여기 저기 내가 지은 건물에 간판을 걸어 놓으면 소문이 점점 나서 조만간 성업이 되었으면 하고 기대하고 있다. 한 집에 소 갈비집, 또 다른 식당엔 고급 횟집, 그리고 장어구이집, 고급 양식집을 차려 놓았다. 현재 모든 내 식당엔 거의 손님이 거의 없지만 아직은 문을 닫지 않고 버티고 있다. 때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말이다. 대부분 메뉴가 비싸서 경기가 좋지 않은 지금 수입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곧 사람들이 좋아하는 먹거리이므로 길게 보고 유지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달부터 나는 친한 동창의 권유로 드디어 나만의 별장(‘직수입’)을 지어보기로 마음을 굳혀가고 있다. 베트남으로부터 주방용 목기류를 수입하여 친구에게 판매하는 비즈니스인데 초기엔 친구가 나를 충분히 가이드 해 준다고 하고 초기 자금도 부담을 해 주겠다는 이야기에 다소 용기를 가지게 되어 조심스럽게 발을 내 디디고 있다. 건물에 비교하면 나만의 내 소유의 독특한 별장을 짓는 짓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나는 내수판매, 수출오퍼, 수입오퍼, 직수출, 직수입, 프로젝트 등을 경험해 보게 되었다. 

이상 기술한 이야기는 나의 무역비즈니스를 건축과 비교하여 회고해 본 것이며,

예전에 의사, 무역회사 사장은 나이가 많이 들어도 70세까지는 사업을 할 수 있는 멋진 직업이라고 했는데 그 무역업이 요즘은 많이 변질이 되고 있어 안타까움에 이 글을 써서 관련되는 여러 동료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쓰고있다.

무역을 하다가 조금만 위기가 닥치면(거래처 이탈, 거래 중단, 자금의 고갈 등) 자포자기하여 사업 초기처럼 열심히 신규개척을 하려는 의지를 꺾고 의욕을 상실하여 전업을 해 버리는 세태가 안타까워 이 글을 적고 있다. 계속 새로운 다양한 독특한 튼튼한 집을 짓고(신규고객을 개척) 사후 유지관리를 하면 긴 수명의 집(거래처 및 아이템)이 여러 채 될 것이고 수입을 창출해 갈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따라서 평소에 열심히 신규개척을 해 나가게 되면 일시적인 위기가 닥칠 지라도 여간해선 몰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지들이여 다양한 또한 많은 집을 짓도록 최선을 다 해 봅시다.



최소한 70세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