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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운이야기

공포의 추억

공포의 추억 - 빳따
 


1979년
15사단 68FA에 배치를 받고
간부대상으로 포단의 첫 교육이 시작되었다.
동기생들도 인근의 998FA로 파견을 가서 합숙으로 함께 교육을 받았다.
 


16기 위00 중위는 내 기억으로 인하대를 졸업하신 선배로
교육 첫 날,
17기 신임장교들의 언행이 못마땅하셨는지
교육이 끝난 야밤에 동기생 전체를 소집하셨다.
155mm 야포 포상진지에 6~7명인가 17기 동기생들이 나란히
위 선배님 앞에 정렬했다.
 


위 선배님은 신임 학군장교들이 타군 장교들에게 너무 깍듯한 것도 꼴불견이고
선배들에게 예우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것이 문제가 있으며
앞으로 자대 생활을 똑바로 하라는 취지로 일장 연설을 하신 후
17기이므로 빳따를 17대씩 모두 맞아야 한다고 하셨다.
 


달빛이 교교한 으슥한 야밤,
포상에서 가져오신 쇠몽둥이(가신을 들어 올리거나 옮길 때 사용하는 스텐레스 봉)로
땅을 쿵쿵 찍어대시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셨다.
척 보아도 보통 굵은 쇠몽둥이가 아니다.
길이가 약 75센티 되어 보이고 직경이 7센티는 되어 보였다.
만약 오늘 저 몽둥이로 빳따를 맞게 되면 뭔 일이 생길 것 같았다.
혹시 꿈틀대다가 잘못하여 꼬리뼈라도 맞으면 그 통증과 후유증은 대단할 것이다.
위 선배님은 이미 모든 후배들을 약속대로 17대씩 내려칠 기세다.
 
‘자, 한 놈씩 엎드려뻗쳐 !!
한 대씩 맞을 때 큰소리로 하나 둘 셋 하면서 숫자를 세어라.‘
퍽 퍽 뻑 뻑 퍽......
무시무시한 공포감, 허벅지 살을 때리는 둔탁한 마찰음 소리,
엄청난 고통으로 동기생들은 ‘윽’ ‘억’ ‘어우’ 등등 신음소리를 자제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모두 용감하게 열여섯, 열일곱 하고 끝까지 맞으면서 숫자를 세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상책이라고 나는 세 번째로 일찌감치 맞았는데
장난이 아니었다.
내가 참을성도 많고 깡다구도 좀 있었는데 정말 아팠다.
온 다리가 통증으로 주저앉는 느낌이다.
어째든 맞고 나니 온 몸이 식은땀이 흐르고 후들후들 거렸다.
 
 


그런데,
내 다음 차례로 맞은 동기생에서 문제가 생겼다.
친구는 서너 대를 맞고서 그 자리에서 푹 고꾸라졌다.
그만 실신을 하고 만 것이다.
위 선배님은
‘야 왜이래 일어나, 이 친구 형편 없구만 장교가 이 정도 빳따에 쓰러져?!’
하고 독려를 하셨지만
한 번 고꾸라진 동기생은 온 몸이 나무토막처럼 굳어지면서 뻣뻣해 졌다.
모두 놀라서 동기생을 주무르고 개울에서 물을 떠다가 얼굴에 뿌리면서
정신을 차리라고 계속해서 주물렀다. 친구는 약 3분 정도 지나니까 창백했던
얼굴이 차츰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마비되었던 몸이 점점 풀렸다.


위 선배님은 그 동기생은 더 때리지 않고 저쪽에 가서 좀 쉬라고 하면서
나머지는 빳따를 계속 맞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시 빳따를 때리기 시작하셨다.
한 명이 기절했으니 혹시나 그만 두지 않겠는가 하는 얄팍한 기대는 한 순간에
무너졌고 모두 차례대로 빳다를 열일곱 대씩 맞았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매를 맞을 동기생은 엎드려뻗쳐를 하지 않는다.
위 선배님은 ‘야 엎드려 너는 왜 엎드려뻗쳐를 안 해?’


동기생은 대답했다.
‘저는 사정이 있어서 엉덩이에 빳따를 맞을 수 없습니다.’
‘그럼 어디를 맞고 싶나?’ 하고 위 선배님이 물었다.
‘엉덩이하고 머리만 빼고 아무데나 때리십시오.’ 하였다.
우리는 속으로 야 저 친구 대단한 배짱인데?
위 선배님은 동기생을 세워 놓은 채로
등과 다리 팔 등을 가차 없이 쇠몽둥이로 쳤다.
동기생은 머리를 양 손으로 감싸고 등을 굽히면서 17대를 다 맞았다.
대단한 깡다구를 가진 동기생이 멋져 보였다.
그 동기생은 태권도 5단이라고 했었던가 하는 말을 들은 것 같다.


그날 밤 모두 끙끙대면서 잠을 잤는데
군복 바지를 벗으려고 하니 피멍이 들어 바지와 상처가 서로 들러붙어서
잘 벗겨지지가 않았다. 서로 친구들의 상처에 맨소래담 비슷한 연고를
발라주면서 정말 이렇게 심하게 맞아 본 적은 없었다고 투덜거렸다.


자대 배치 받자마자 항공대로 파견을 갔거나 OP GP로 파견된 동기생들은
이 무지막지한 빳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제대를 할 때까지 공포의 빳따 이야기가 큰 화젯거리였으며
나중엔 어느새 무용담으로 변하여 추억의 빳따로 기억에 자리 잡게 되었다.


아산의 윤철호 동기와 부산의 김창수 동기 이희경 동기 양상용 동기
같이 맞은 동기들이 또 누구더라???
 
 
아산모임의 윤철호 동기얼굴을 30년만에 보니 갑자기 같이 빳따맞은 생각부터 난다.


2008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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