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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운이야기

내가 뭐길래 나 하나를 위하여

종로오피스텔에서 내어다 본 옛 풍경

멀리 광화문 경복궁 좌측의 인왕산과 우측의 북악산

북촌과 중촌의 모습이다.

 

 

 

 

내가 뭐 길래, 나 하나를 위하여

 

어릴 때

초등학교가 지어졌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가 필요했다.

병과 학교도 필요했고, 전방부대도 준비가 되었다.

 

나를 먹여 살리려고 큰 회사가 준비되었고

결혼을 하고 집은 넓게 마련되었다.

집뿐이랴 지하 주차장에

최소한 5미터 x 2 미터의 주차공간이 필요하고

차를 진입시키기 위한 진입도로와 자동차를 회전시키기 위한 회전반경이 준비되었다.

내가 가끔 쳐다보는 곳에 꽃과 나무를 심어 놓았다.

하지만 하루 종일 난 그 공간에 머무르고 있지는 않다.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필요한 것이다.

잠자는 시간을 빼면 고작 4시간 생활하는 데 필요한 공간이 크기만 하다.

 

나 하나 때문에 사무실이 필요하다.

엘리베이터가 필요하고

공동 화장실이 마련된다.

역시 꽃과 나무와 흡연 장소가 준비되었다.

아주 가끔 이용하지만 어째든 오피스텔에도 주차공간이 필요했다.

 

나 하나 때문에

적어도 사무실 주변에는 자주 가야할 12개 이상의 점심식당이 필요하고

내 술좌석을 위해서 30개 정도의 술집이 필요하다.

우체국과 은행과 세무서 법무사무소와 관세사무소가 나를 위해 마련되어 있다.

내가 잠시 앉아 친구와 대화할 수 있는 다방이나 카페가 서너 곳이 준비되고

같이 담소를 하며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숲의 공간이 필요했다.

 

나를 위해서

아주 길고 큰 지하철과

큰 버스가 필요하고

그들이 잘 달릴 수 있는 길이 준비되어야 했다.

일주일이면 고작 두세 번 걸어서 다녀오는 왕복 4km의 산책로가 필요하다.

산책로 옆에는 눈길정도 주는 꽃밭이 필요하고,

한달이면 한 번 정도 가기 위한 사우나 또는 온천목욕탕이 필요하다.

세 달에 한 번 갈까 말까하는 영화관이 필요했고

그 영화관에서 2시간 잠시 바라다 볼 영화를 만들 많은 장소와 공간이 필요했다.

가끔 들리는 쇼핑센터, 백화점, 책방도 필요하다.

 

나 때문에

북한산 불암산 도봉산 남산 인왕산 수락산 멀리는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이 있고

가끔 가야 되는 해외의 국가가 있어야하고

그로 인하여 국내 비행장과 국외 비행장이 준비되어야만 한다.

여건이 될 때 생각이 날 때 찾아가야 하는 유원지나 레저시설이 있어야 하고

나를 위한 바닷가와 호수와 강이 필요하다.

잘 가지는 않지만 나를 위해서 병원이 필요하고 약국이 필요하다.

혹시 모르는 경우를 생각해서 경찰서와 소방서가 필요했다.

 

나를 위해 준비된 것들이 비단 장소와 공간뿐이랴

 

나를 위하여

부모도 필요했고, 아내도 필요했고 자식도 필요했다.

내 한 끼 먹이자고 장을 보아야 하고 내 한 몸 입히려고 옷을 사러 다녀야 했다.

청소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한다.

설거지도 필요하고 다림질도 해야 했다.

 

나 하나 때문에

친구들이 필요했고, 술자리가 필요하고,

같이 한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의 희생이 요구되었다.

 

나를 위하여 많은 시인과 소설가가 글을 썼고

화가가 그림을 그렸으며

작곡가가 곡을 만들었고 연주가가 연주를 하였으며

성악가와 가수가 노래를 불러주었다.

배고프고 힘든 연극배우들과 뮤지컬배우가 공연을 해 주었다.

나 때문에

디자이너가 옷을 지었고

가방을 생산하였다.

한 달에 두세 번 산에 가기 위해 모자 신발 등산복 생산업체가 필요했다.

나를 위해서 신문이 만들어 지고

나 때문에 뉴스가 제작되고

정치가와 상인들과 생산자와 선생님과 교수님들이 필요했다.

내가 걷고 달리고 오르고 하는 길마다 수시로 깨끗하게 청소를 해 주고

내가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를 주워주는 사람들이 있다.

내 자동차가 탈이 나면 훌륭하게 고쳐주는 정비소와

나의 자동차 먹이를 보급하는 주유소가 필요했다.

 

내가 뭐 길래, 나 하나를 위해, 나만을 위한 너무 많은 것이 필요했다.

그런데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제공하여 주고 있나?

이 아침 내가 무엇으로 그들에게 보답하여야 하나 고민이 되고 있다.

 

2008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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