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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것들

어린 날의 추억

 

 

 

어린 날의 추억


갓 젖을 뗀 송아지 목줄 잡고 흙먼지 가득한 자갈길
산 넘고 들 지나 아쉬움 반 땀내 반 장터로 가는 아버지
막 캐낸 쑥 머리 가득 이고 이십 리길 총총걸음
공책이랑 책가방이랑 입학선물 생각만 가득한 어머니

오늘은 내가 손꼽아왔던 바로 장날입니다.

윗마을 아랫마을 어르신들 처녀총각 지나는 마을길
앞마당 깨끗하지 않으면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말씀
대빗자루 하나 들고 동네 끝까지 쓸어내도
애지중지 키운 집안동물 팔려간 자리 누런 똥 범벅되는

오늘은 내가 힘들어하는 바로 장날입니다.

어린 동생들 손목 잡고 물놀이 갔다가
물 잔뜩 먹어 헛배 부른 동생 걱정 야단 걱정에 밤늦도록
논 한가운데 볏단 뒤에 숨어 부모가슴 애간장 태우다
군침 도는 국수 한 그릇에 몰래 집안으로 숨어들던

오늘은 내가 두려워하는 바로 장날입니다.

끙끙 리어카 끌고 밀며 수십 번 고여 쉬는 고갯길
우리 집은 왜 이리 멀어, 푸념 잦던 시절
도망치고만 싶던 철부지
구멍 난 옷 겹겹 기워 입은 부모님 헤아리지 못한

오늘은 내가 죄송한 바로 장날입니다.

 

 



- 윤성완 님, '풍경이 머무는 곳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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