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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것들

바른말 우리말 - '채소'와 '야채'

바른말 우리말 - 채소와 야채

 

'채소’는 노동 집약적으로 대량 생산하여 신선한 상태로 부식 또는 간식용으로 쓰는 초본성 먹을거리를 가리키는 우리 표준말이다. 지방에서 쓰는 ‘푸성귀’가 있지만 이는 ‘기르거나 저절로 나는 온갖 나물’이라는 뜻이므로 채소를 가리키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채소의 ‘채’는 나물 채이고 ‘소’는 풋나물 소로서 나물이라는 뜻의 한자 명칭을 표준말로 삼은 것이다.

 

문제는 일부 사람들이 ‘채소’ 대신 ‘야채’라는 말을 끊임없이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한자말인 ‘야채’를 쓰는 사람들은 야채가 채소보다 더 세련되고 시대흐름에 앞서 가는 말이라도 되는 듯이 쓴다.

 

또 김치 담그는 무나 배추만 채소이고 쌈 싸 먹는 것과 당근 그리고 서양채소는 모두 야채인 줄 잘못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건 채소라는 말을 모르거나 야채라는 말의 뿌리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채소는 통틀어 가리키는 총칭이기도 하려니와 어떤 종류의 채소라도 정확하게 가려주는 말밑이 된다. 시설채소 고랭지채소 청정채소 무농약유기농채소에는 총칭으로 썼다.

 

머위나 미나리들은 고유채소이며 파슬리·셀러리·양배추들은 서양채소 또는 줄여서 양채이다. 잎을 먹는 쑥갓은 잎채소(엽채류)이고 무나 순무 우엉은 뿌리채소(근채류)이며 가지·토마토·오이·호박은 열매채소(과채류)이다. 그 밖에 꽃봉오리를 먹는 브로콜리는 양채이자 꽃채소이며 고추·마늘·생강들은 향신료채소이다.

 

채소는 이처럼 넓고 깊게 뿌리를 뻗어 우리말을 떠받치고 있다. 그런데도 들나물 또는 들채소라는 뜻밖에 없는 야채를 따르는 사람들 등쌀에 채소가 다칠까봐 걱정이 앞선다.

 

야채가 끊임없이 쓰이는 까닭은 그 말이 공영방송의 본뜬 느낌이 드는 어린이 프로그램 제목, 일부 국산 냉장고의 채소 넣는 서랍, 국산밥솥의 기능안내, 재일동포 재벌 제과사의 구운 과자 이름, 찐빵과 만두 이름, 신선채소 상표, 채소가게 상호 속에 까지 파고들어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방송에 나오는 일부 음식조리사들, 음식 탐방기자들, 이름난 건강프로그램도 뒤섞어 쓰고 있다.

 

한편 고운 우리말은 아닐지라도 이미 발을 들여놓은 말을 어찌하겠느냐고 묻는 이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말을 남과 다르게 새로 쓸 때는 한번쯤 깊이 생각해보고 쓰는 것이 국어에 대한 기본 도리일 터이다.

 

토끼풀이 잔디밭에 파고들면 처음에는 흰 꽃도 피고 하니 두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처음에 뿌리 뽑지 않으면 몇 년 지나지 않아 온통 토끼풀 밭이 되어버려 없애려면 큰 고생을 하게 마련이다. 토끼풀 밭에 앉으면 옷에 풀물이 들고 잘 빠지지 않는다.

 

우리말을 지키려고 피를 흘렸던 선열들을 생각하면 낱말 하나라도 허투루 쓸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