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7년 미국 남부 시골 마을의 식당. 식사를 마친 2명의 중국인이 달러를 꺼내자 종업원이 말한다.
“위안화는 없으신가요.”
달러를 받는 곳은 이제 전 세계 어디에서든 쉽게 찾을 수 있다. 아시아 각지에서는 이제 달러가 아닌 위안화 위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오일달러’라는 말이 사어가 된 지도 오래다.
닛케이비즈니스가 그리는 2037년 세계의 모습이다. 명목국내총생산(GDP)에서도 중국이 미국을 앞설 것으로 예상되는 2027년으로부터 10년이 지난 때다.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상실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잡지의 분석을 따라가보자.
달러 몰락 1단계 : 뉴욕에서 달러 황혼을 맞다
금값이 1트로이온스(약 31.1g)당 1100달러에 근접하며 사상 최고치를 넘나드는 상황은 달러의 흔들리는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2006년까지 인류가 발굴한 금의 총량은 15만8000톤이다.
앞으로 인류가 더 캐낼 수 있는 금의 양은 사실상 채굴이 불가능한 것까지 포함해도 6만~7만톤에 그친다.
금을 사들이고 있는 주체는 신흥국 중앙은행들이다.
중국인민은행은 지난 2003년 이후 올해 4월까지 454톤을 더 사들여 현재 1054톤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중앙은행 역시 2005년 387톤이던 금 보유량을 올 상반기엔 550톤으로 끌어올렸다. 인도중앙은행은 지난주 국제통화기금(IMF)의 금을 사들이며 금값 폭등을 이끌기도 했다. 대부분의 금을 켄터키주 포트녹스의 지하 금고에 보관하고 있는 미국은 2009년 9월 현재 8133.5톤(약 2억6200만트로이온스)을 보유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장부에는 110억달러라고 돼 있지만 시가를 반영하면 2620억달러에 달한다.
신흥국 중앙은행이 금을 사들이는 것이나 미국이 태환제를 폐지(71년)한 후에도 막대한 양의 금을 보유하는 이유는 동일하다. 위기 상황에서 믿을 것은 달러가 아닌 금이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엔 문제가 생기고 있다. FRB는 리먼사태 이후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자산규모를 2조2800억달러 수준까지 높였다.
그러나 현재 보유한 금으로 늘어난 자산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금값이 트로이온스당 8000달러로 뛰거나 달러 가치가 8분의 1로 줄어야 한다. 9월 28일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가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치를 당연하다고 여긴다면 이는 실수하는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달러의 추락은 미국 내에서도 확인된다. 전 세계 다이아몬드 거래의 75%가 이뤄진다는 뉴욕 47번가에선 최근 ‘금 삽니다(We buy gold)’라고 적힌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금 사재기가 시작되고 있는 것.
금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최근에는 새로운 수법도 생겨났다. 사친회(PTA)를 통해 사람들을 모으고 이들이 내놓는 금을 20~30%가량 할인된 가격에 사들이는 ‘골드파티’도 생겼다.
달러 몰락 2단계 : 위안화의 야망
중국은 저우샤오촨 인민은행 총재가 IMF의 특별인출권(SDR)을 기축통화로 하자는 제안을 내놔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목표는 SDR가 아닌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려는 것이다.
최근에는 국외에서도 위안화의 기축통화 가능성을 언급할 정도다. 일례로 마틴 레드라도 아르헨티나중앙은행 총재는 10월 6~7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IMF·세계은행 연례 총회에서 “위안화는 향후 5년 안에 기축통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이미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아시아 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도 중국은 2년 임기가 끝났음에도 “과거 일본도 연임했던 전례가 있다”며 유임을 주장하고 있다. 올해엔 한·중·일과 아세안 간 달러 스와프협정 외에도 한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벨라루스, 아르헨티나 등 6개국 지역과 위안화 스와프협정을 맺었다. 또 7월에는 무역에서도 중국 본토 일부와 아세안, 홍콩, 마카오 간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를 시험적으로 추진하기도 했다.
물론 통화스와프, 무역 결제 외에도 위안화 기축통화화를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위안화 국제화의 선봉에 서 있는 중국 사회과학원의 위용딩 원장은 “중국 금융시장이 취약해 규제가 필요한 상황이라 위안화의 국제화는 장기적으로 추진할 일”이라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관즈쑹 노무라자본시장연구소 시니어펠로우는 중국이 잰 발걸음을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르면 내년부터 중국이 관리 플로트제 혹은 변동환율제로 전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달러 몰락 3단계 : 달러당 50엔 시대
우노 다이스케 미쓰이스미토모은행 치프스트래티지스트는 “내년에 달러당 50엔까지 엔고·달러 약세가 진행될 수 있다”는 대담한 전망을 내놓는다.
미국 경제 위상이 급전직하하면서 중장기적으로 달러 가치가 하락해 기축통화로서의 위치를 상실한다는 시나리오다.
엔고에 대한 공포가 있는 일본 내부에서도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할 때란 의견이 나온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를 맞아 수출이 증가하기 힘든 시대인 만큼 일본 소비자들의 구매력 향상을 위한 엔고 정책으로 환율 정책의 패러다임시프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엔고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경제역사학자 찰스 킨들버그가 설명한 ‘국제수지 발전 단계론’에 근거하고 있다.
현재 일본 경제는 ‘미성숙 채권국’ 단계에 있다. 이는 무역수지 흑자에 국외 투자로 얻어지는 소득수지 흑자 등이 겹쳐지며 경상수지 흑자가 증가하는 구조다. 넘쳐나는 경상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자본수지가 적자인 국가가 이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일본의 국제수지 구조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넘어가면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만 봐도 수출 감소폭이 수입 감소폭을 넘어서면서 무역흑자가 감소했다. 킨들버그 이론에 따르면 일본이 다음 단계인 ‘성숙한 채권국가’로 넘어가고 있다. 그만큼 수출보다는 내수가 중요해지는 시대라는 얘기다.
달러 몰락 4단계 : 기축통화 없는 세계
달러 이외의 기축통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현 상황에서는 달러를 대체할 수단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기축통화가 바뀐 것은 지난 1944년 브레튼우즈협정 때가 유일하다. 당시에도 달러가 쉽게 기축통화 자리를 물려받은 것은 아니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 후로는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영국을 압도했지만 달러가 기축통화 자리를 차지하는 데는 30년 이상이 걸렸다.
달러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지금 새로운 기축통화 후보로 위안화, 유로, 아시아통화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위안화가 기축통화의 역할을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골드만삭스 예상대로 2027년에 중국의 명목GDP가 미국을 넘어서더라도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중국이 자본주의체제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저우샤오촨 총재가 위안화가 아닌 SDR를 기축통화로 내세운 것도 위안화의 현실적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로가 대안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케나카 세지 류코쿠대학 교수는 “유로는 기껏해야 금본위제 시대의 은 역할에 그칠 것”이라고 말한다. 유로화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달러 대비 급락해 기축통화가 되기엔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이 유로를 도입한다면 기축통화로 한걸음 다가갈 수 있겠지만 가능성은 낮다.
유로화 같은 아시아 지역의 역내 단일 통화를 말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유로존이 정치 통합까지 이뤄내는 데 50년이 걸렸던 것을 생각하면 이제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아시아 지역에서 단일통화가 나타나는 데는 시간이 한참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달러 이외의 기축통화는 상상하기 힘들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새로운 기축통화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도 나온 만큼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새로운 기축통화 시대 혹은 기축통화가 사라진 시대에 과연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 또 이러한 위험을 어떻게 극복할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Nikkei Businessⓒ2009년 11월 2일자 기사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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