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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야기

종교에 대한 나의 생각

 

종교에 관하여

2004. 5. 26.


     인간의 마음속엔 항상 자신 보다 우월한 그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고

간절히 기도하고 싶고 매달리고 싶고 맡기고 싶어 하는 심성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이 한계가 있고 또 세상만사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를

무수히 체험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큰 이유는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며

죽은 후 사후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죽음으로써 정들었던 행복했던 이승과의 단절이라는 명제 앞에서

한없는 외로움을 예감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기독교의 입문과 이탈)


유일신 하나님을 철저히 받드는 기독교는

사후의 세계를 천당과 지옥으로 나누고

절대자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믿느냐 아니면 그렇지 않는가에 따라

단순히 천당인가 지옥인가로 분류하는 칼날 같이 매서운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보면 무척이나 단순한 종교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유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하나님을 믿는 생활을 하면

구원을 받아 천당에 갈 수 있으므로 매우 호감이 가는 종교라고 볼 수 있다.

일찍이 예수라는 하나님의 아들을 속세에 보내어서

원죄에 시달리고 있는 하나님의 자식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 길을 제시하셨고

그 가르침이 글로 담겨있는 성경이라는 메시지로서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읽히고 있는 가장 오래된 책으로 기록되고 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동네 친구를 따라서 부활절날 계란과 사탕을 얻어먹기 위해(?)

교회라는 곳에 첫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 첫 교회와의 만남으로 잃어버린 것은 내 운동화였다.

어려운 1960년대, 치약과 칫솔도 도둑이 훔쳐가던 시절,

교회에서 산지 얼마 안 된 내 운동화를 신고 가버린 아이는

아마도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또래의 친구였을 것이다.

당황하였지만 모두가 신을 신고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마지막 남은 아무 신발을 신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였는지 섭리였던지

은행 알로 추첨하여 입학한 중학교가

알고 보니 예배시간(채플시간)이 정식 수업시간으로 들어있고 시험과목으로 잡혀있는

미션스쿨(기독교 학교)인 경신중학교였다.


그래서 난 어쩔 수 없이 외부적 요인(타의)에 의해서

교회를 다녀야 했고 일요일엔 교회에 가서 출석 확인을 받아와야 했다.

그래야 학교생활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상황이어서

그렇게 내 어린 시절 기독교란 종교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다른 학교 친구도 사귀고

하나님의 말씀도 배우고

목사님의 가르침도 마음에 새기며

때론 간절히 기도도 하고

때론 찬송가를 멋지게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추수감사절의 아름다운 이벤트에 나를 맡기면서

꼬박 3년의 기간을 교회와 함께 기독교 교우들과 함께 지냈다.

유달리 순종적이고 적응이 빠른 내겐

마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점점 깊어져 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적어도 남들이 보기에는 매주 빠짐없이 교회에 잘 나가고 착실하게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교회 중등부에서 주최하는 기도회라든가 등산대회 합창대회에 빠짐없이 참가하였기 때문에 더욱 독실한 기독학생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과연 하나님이 계신 것일까?

왜 만민을 구원하시고자 한다면 죄 짓고 안 믿는 많은 사람들을 방치해 놓고

두고 보자는 것일까

왜 하나님은 볼 수가 없는가?


태양을 만드시고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이기에

한 여름 햇빛도 잘 못 보는 인간이 그 해를 만든 하나님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는 선생님의 말씀도 어쩐지 어설픈 변명으로 들렸었다.


그리고 더욱 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한 구원을 받을 수가 없어 지옥으로 간다는

그 교리가 어린 학생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구한말 이 땅에 기독교가 전파되었는데 그 전에 나라를 위해 살다가 돌아가신

세종대왕님, 원효대사님 왕건 이순신 장군 홍길동 임꺽정 이율곡 신사임당 효녀 심청도

그렇다면 지금 지옥에 갔다는 교리에 납득을 하기는 불합리한 점이 많아

더욱 나는 믿음이 가지 않았다.

더욱이 존경하는 내 부모님께서는 불교신자라고 자처하시는데

그렇다면 우리 부모님은 지옥으로 가신다?

말이 되지를 않아 보였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교회에서 항상 강조하는 전도를 나는 게을리 하였다.

내 스스로 구원에 대한 내세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독교를 자의 종교라고 얘기하였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꼭 필요한 좋은 가르침이라는 확고한 사실과

교회에 가면 여러 친구도 만나고 좋은 노래도 좋은 모임도 색다른 경험도 할 수 있다는

좋은 면이 있어 내겐 좋은 시간이 되었다는 점이 있어서였다.

그래서 계속 교회를 다녔다.

교회의 친구 중에는 목사님 아들도 있고 집사님 동생도 있고 전 가족이 모두 교인인 친구도 있어서 그 신앙심의 깊이는 서로 많이 달랐다.

한 친구는 열심히 기도하는 도중에 방언을 하기도 하고 성령을 받았다는 친구도 있고 은혜를 입었다고도 하면서 간증을 하였다.

그러나 난 그들의 얘기를 무조건 수용할 수는 없었다.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설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런 유형의 계시를 우리 마음의 최면현상 일시적인 환각 착시, 환청 등의 현상으로 해석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내 생각은 고등부 대학부 청년부 시절까지 하나도 변화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대학을 졸업하고 장교로 군에 입대하면서 사회에 발을 디딜 때부터

교회와의 단절이 시작되었다.

애 터지게 교회를 꼭 가야한다는 구속도 없고 스스로 죄의식도 크게 갖지를 않게 되었다.

어쩌면 교회 다니면서 보고들은 좋지 않은 관습과 행태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안타까웠다.  교리와 상반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고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사건들이어서

교회와 목사에 대한 장로 집사 전도사 등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따가운 경우가 많았었다. 내가 보기에도 심한 경우가 못내 아쉽고 마음에 걸려 그 울타리에 소속되는 것이 불쾌할 때도 많았다. 그래서 미련 없이 교회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천주교와 불교에 대한 나의 생각)


결혼한 지 18년이 되던 해에

큰 누님이 유방암으로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진정 하나님께서 곁으로 불러서 갔던

아니면 주어진 운명에 의해 생을 마감하였던 간에

겨우 50세를 넘긴 나이에,

이제 살 만한 시기에,

시집 안 보낸 세 딸과 남편을 홀로 남겨 둔 채

이승을 떠났다.  


누나는 평화롭게 예고된 본인의 죽음을 조용히 숙명처럼 맞이하였다.

죽기 전날 내가 누나의 퉁퉁 부은 팔을 주무르고 안심을 시키느라

힘을 내고 어서 나으라는 말을 하였었다

그때 이미 누나는 본인의 곁에 죽음의 사도가 가까이 와서

저승으로 데리고 갈 것이라는 예감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애써 평온한 얼굴을 짓고 담담히 나를 바라보던 큰누이

그리곤 다음 날 부고를 받았다.


이미 누나는 오래 전부터 성당에 다녔다.

영세도 받았고 견진세례도 받았다.

신앙심도 많이 깊어져서

여름휴가 때 가족들과 형제자매들과 같이 설악산에 놀러 갔을 때도

일요일에 속초에 있는 동네의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고 왔다.

천주님을 믿어서 그랬는지 항상 너그럽고 수용을 잘 하였으며

봉사활동도 많이 했었다.


임종을 맞기 전 천주교 신도들이 수시로 와서

유방암 말기인 누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고

임종을 차분히 맞이하도록 힘을 불어 넣어주었다.

나는 천주교 신도들의 그 지극하고 아름다운 심성을 보았고

그들이 천사처럼 보였다.

그리고 임종 후 모든 장례에 관한 절차를 성당 신도들이 주관하여

입관과 묘지안장까지 정성스레 주관하여 봉사하는 것을 보고

나도 감명을 받았고

그 억센 큰 매형도 감동하여 고마운 나머지

누나 뒤를 따라서 천주교에 입문을 하게 되었다.

그 뒤 남아있는 전 가족이 매주 성당에 착실하게 나가게 되었다.


흔히 임종을 앞두거나 많이 병들어 아픈 가족이 있을 경우

가족들은 천주교에 입문하여 성모마리아나 하나님(천주님)께

간절히 기도를 올린다. 마음의 위안을 얻고 아픈 자가 낫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리고 혹 하나님 곁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더욱 신앙심을 소중히

갖게 된다고 한다. 그 즈음 내 아내도 장모님이 자주 아프시어 막내딸로서

항상 마음 아파하였고 그 상황을 극복하고 평안을 얻기 위해서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천주교에 입문하였다. 그리고 영세를 받았다.

주일에 홀로 가까운 성당에 나가서 미사를 드리고 기도도 열심히 하였다.

큰아이가 대학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나는 나대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느라

많이 어려웠고 힘들 때였다.

하지만, 아내는 성당에 다녀오면 얼굴이 평안해 보였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점점 착하고 맑은 심성으로 바뀌어 가는 것 같았다.

가끔 아내는 내게 미안해하기도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난 집에 혼자 남아서 목욕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내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도 보면서 있는 것이 편했다.

아내는 가끔 나에게 같이 성당에 가기를 권했다.

특히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엔 같이 갔으면 하는 눈치다.

그때마다 나는 다음에 어떤 계기가 있으면 가겠지만 지금은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당분간 나는 놔두고 혼자 다니라고 하였다.

나는 성당에 가면 너무 무료하고 축 처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그 분위기가 싫었다. 내 자신이 너무 나약해 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도 기독교보다는 낫다 싶다.

내가 아는 바로는 천주교는 기독교와 달리

제사도 인정하고 담배도 피우고 술도 먹도록 하였으며

기독교처럼 막무가내 식으로 전도를 하고 성당을 나오기를 강요하지 않았으며

조용한 가운데 교인들을 사로잡아 가는 신비스러움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헌금은 걷지만 기독교처럼 많이 내라고 강요하거나 압력을 가하지 않고

사용하는 내용을 잘 알기가 어려운 기독교와는 달리

천주교는 로마교황청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교구본부에서 어려운 교구를 돕고 지원하며

꼭 어느 성당을 다녀야 한다는 논리도 없다.

또 교회처럼 자꾸 시간을 빼앗지 않는 것 같다.

교회는 성가대다 친교다 기도회다 단위별 모임이다 등등 개인시간을

많이 빼앗기게 되는 경향이 있다.

천주교는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또한 가난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매우 적극적이다.


내게는 그런 천주교의 분위기와 신도들의 매너와 교리가

기독교의 비타협적이고 일방적인 분위기보다 훨씬 거부감이 덜 했다.

그래서 천주교가 기독교보다 좀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작은 누나는 영세를 받아 계속 다니던 성당에 발을 끊고 갑자기

어느 순간 작은 매형과 함께 절에 다니고 있었다.

묘한 일이었다.



(불교를 느끼고 싶다)


국내의 어디를 가도 뾰족탑의 교회가 있고 동네마다 성당이 있다.

그리고 어떤 산을 가더라도 절이 한 두 개는 꼭 있다.

등산을 하던 멀리 여행을 하던 그 주위엔 꼭 유명한 절이 있게 마련이다.

특히 산세가 좋고 높고 깊은 산엔 어김없이 유명한 사찰이 있다.


불교에 대해 나는 역시 한번도 심취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상식적인 선에서 불교를 이해하고는 있는 편이다.

부처님이 깨닫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고 참 선을 완성하셨다고 알고 있다.

모든 중생들도 부처님과 같이 점점 불심을 키우고

선을 행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치관이 불교의 불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기 해탈을,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 중들은 머리를 깎고 홀로 입산수도를 한다.


책을 읽었다.

도꾸가와 이에야스,

불교와 천주교와 일본의 전통교가 같이 상존했던 시절,

서로간의 종교적 철학과 관점의 이질적 요소로 사회는 혼란스럽고

마찰을 일으켰다.

국가가 근대화되어 가는 시기에는 이처럼 세 종교가

서로 얽히고 설키어서 발전해 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의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이조시대 구한말 일제 강점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에도 항시 불교 기독교 천주교가 상존하여 왔다. 


책을 읽었다.

혼불, 일본강점기에 남원지방을 주무대로 그려진 사회 정치 군사 종교사적

배경을 잘 나타내어 내겐 많은 공부의 시간을 주었다.

불교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 안에 부처가 있다는 점

기독교와 천주교는 믿음의 확고한 대상이 하나님이라는 교리가 있지만

불교는 자기스스로 수도를 통해 자기만의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르는

종교라고는 할 수 없는 철학이랄까? 도랄까?


불교에서는 윤회라는 것을 믿는다

인간은 죽어서 계속 다른 짐승이나 생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이론인데

곤충으로부터 그리고 인간으로까지 다시 태어난다는 이론이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가설이다.

윤회를 하기 위해 영혼과 육체는 분리되고 영혼은 공중에 따 다니다가

적당한 생물체에 영합하여 다시 태어난다는 이론인데

총 7회를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극락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부처를 믿는다는 사람부터

내 안에 부처가 있어서 스스로 깨닫고

열반의 경지로 들어간다고도 하고

부처님께 빌거나 예수님 하나님 성모마리아님 천주님께 빌면 소원도 이루고

죄사함도 받는다고 한다.


미신을 믿는 사람들은 굿을 하면 병이 낫고

점쟁이에게 복비를 주고 액땜을 하면 좋다고 한다.

별의 별 이론이 난무하고 있다.


나는 주위의 종교가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자기의 종교가 진짜 종교이고

진짜 신이고 진짜 천당을 가게 해 주고 진짜 강력한 종교라고 주장하면서

싸우는 사람들을 종종 보아왔다. 기독교에서도 예수교 장로회 감리교

제칠안식일교회 침례교회 성공회 몰몬교 통일교 신앙촌 여호와의 증인

기타 갈래가 많고 불교도 조계종 천태종 원불교 등이 있으며

수많은 미신과 도교 유교 천주교 등등 매우 다양하고 많기도 하다.

서로는 서로가 가장 진정한 종교이고 구세주이고 천당에 갈 수 있고

믿기만 믿으면 가장 행복해 지고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더욱이 이 종교가 진정한 종교이면 나머지 종교는 다 거짓이라고 봐야 하는가?

그러면 그 어느 종교 말대로 나머지 종교를 믿거나 또 아무 것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늘나라(천국, 천당)은 갈 수 없다는 이야기인가?

납득할 수 없는 이론이다.


인간답게 인간의 도리를 지키며 납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남에게 베풀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겸손하고 도둑질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살인하지 않고

열심히 주어진 일을 잘 하면서 자식 잘 키우고 부인 잘 위하며 부모 잘 섬기고

이웃과 다정하게 지내고 예절을 잘 갖추고 배우고 노력하며 슬기롭게 살면서

사회와 국가와 세계에 공헌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위와 같이 살지 못한 사람들은 죽을 때 불안을 느끼게 될 것 같다.

그래서 지옥을 가지 않겠나 하면서

신을 찾고 섬기는 것이라고 본다.

또 그런 사람들을 종교계에서는 서로 끌어드리려고 난리가 아니다

헌금도 받고 십일조도 받고 성전 건립기념 성금도 받고

일부는 어려운 사람도 돕고 좋은 일에도 쓰지만

일부는 중간에서 잘못 이용을 하는 종교단체도 있어서 비난을 사고 있다.

모두가 무지한 신도들을 우롱하고 정말 신이 있다면 그 신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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