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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야기

나의 지하철 애용기

 

자가용을 집에 놓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기 시작한 것은

1999년 1월 1일부터이다

1998년 12월 31일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정보수집도 하고 가까운 지인들을 만나서

충고와 권고도 들으면서 잊고 지내던 친구들을 두루 만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당장 고정수입이 없어져 버린 그 시기에

모든 지출을 아끼고 합리화해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자가용 운행은 자제하기로 하였다.

모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무역창업교육과정을 수강하기 위해

하계동 집에서 신용산으로 다니기 시작한 1999년 2월 초부터

나의 지하철 애용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지하철을 애용하다보니 몇 가지 좋은 점이 있다.


첫째 교통비가 절감되었다.

당시 지하철 시내 왕복이 1200원이었는데

자가용을 타면 기름값이 크게 비싸서 서울시내 이동을 하고자 하면

기본적으로 기름값이 최소 5000원에 주차비가 3000원

도합 8000원이 든다.


둘째 많이 걸으면서 다리가 튼튼해졌다.

집에서 지하철 하계역까지 걸어서 7분 노원역에서 4호선을 갈아타기 위해서

4분 그리고 신용산 역에서 내려서 사무실까지 7분

하루에 최소한 36분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셋째 지하철에서 독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자가용으로 이동하다보면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하루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1시간 20분 동안 독서를 할 수 있어서

그 동안 멀리했던 소설이나 잡지 신문을 편안하게 읽다 보니

상식도 늘고 삶의 지혜도 깊어지는 것 같다.

지금까지 매월 최소 4권의 책을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읽어왔다.

1년에 최소 50권을 5년 이상 읽어 온 셈이다.

감명깊이 읽었던 책의 내용은 정리를 해서 컴퓨터에 저장하고

내가 속한 동호회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서 좋은 글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기도 하고 그로 인해 내 이름 석자를 널리 쉽게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책을 많이 읽다보니 대화의 테마도 많이 생기고 나의 생각의 깊이가

더해지고 사고의 폭이 더 넓어져서 정말 좋다.

어떤 날은 너무 읽던 책이 흥미진진해서 두 세 정거장을 지나친 경우도 있지만...


넷째 약속시간을 잘 지키게 되었다.

자가용으로 약속장소를 갈 땐 교통혼잡을 예측하기가 어려워

시간을 어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지하철은 정확하니까

시간관리가 정확해지고 합리적으로 변했다.



다섯째 많은 이웃들과 같이 지하철을 이용하다보니

다른 이웃들의 사정을 많이 알고 느끼게 되었다.

다양한 삶의 모습과 애환을 알게 되면서 이웃사랑 그리고 함께 사는 시민사회의

의미를 진한 감동과 함께 서로 공유할 수 있어서 진정한 삶의 맛을 보게 되었다.

진정한 행복의 가치관이 달라지고 삶의 방향도 재설정하게 되었다.

지하철에는 모두가 평등하고 공평한 사회적 가치관이 있다

누구나 같은 요금을 내고 누구나 한 개의 좌석을 차지하고

때론 노약자에게 좌석을 양보하고 고맙다는 인사도 받고

보던 신문도 다 읽고나면 다른 사람이 나누어 보고

심지어는 휴대폰을 급한 옆 사람에게 빌려준 경험도 있다.

외국인에게 길을 안내하기도 하고

무거운 짐을 가진 노인을 도울 경우도 있다.

장애인을 도와서 승하차를 하기도 한다.

어려운 이웃이 값싼 물건을 팔면 사주기도 하고

장님이나 어려운 사람들의 구걸에 조그만 동정심을 발휘하기도 한다.

속이 상한 어르신들이 술 취한 객담을 받아서 말동무가 되기도 하고

공공장소인 지하철 안에서 소란을 떠는 중,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어른으로서 점잖게 가르치기도 하고 따스한 눈길이나

작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여섯째 도덕재무장의 기수가 되었다.

출퇴근 시간에 많은 이웃들이 한꺼번에 이용하는 지하철에서는

남에 대한 배려와 주어진 규율을 지키는 자세가 요구된다.

책과 신문을 보더라도 조용히 그리고 옆 사람에게 불편과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며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자세와

휴대전화를 진동모드로 변경하고 전화를 받을 경우

작은 소리로 통화하며

지하철을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때 좌측을 비워서 바쁜 사람이 신속하게

계단을 오를 수 있도록 하는 배려 등 몸소 공공질서를 지켜야 하는

삶의 현장이기에 기본예절과 도덕적 생활화가

절로 발현되는 매우 좋은 삶의 터가 지하철이다.


일곱째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급히 떠오르는 필요한 사람과

사업의 아이디어가 종종 떠오른다.

그러면 즉시 볼펜과 수첩을 꺼내서 적어 놓는다.

그리고 회사에 가서 즉시 실행에 옮긴다.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지하철에서 내 시야에 들어오는

주위의 많은 모습에서 소리에서 빛깔에서 때론 고요함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현상일 것이다


지하철을 애용하는 모든 지하철 가족이 느끼는 감흥일 것이다.

오늘도 지하철을 이용하며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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