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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것들

20-50 클럽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들

 

 

  우리나라가 ‘20-50 클럽’에 가입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와 인구 5천만 명을 넘어섰다는 뜻이다. 국민소득 요건은 진작 충족했으나 인구 요건을 이제야 채운 것으로 통계청 인구시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6월23일 오후 7시에 5천만 명을 돌파했다. ‘20-50 클럽’ 가입은 세계 7번째로 당분간 8번째 회원국은 나오기 힘들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캐나다, 호주 등은 소득이 2만 달러를 훨씬 넘지만 인구가 적고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은 소득이 한참 모자란다.

  
대한민국은 이제 G20(주요 20개국)이 아니라 G7으로 당당히 대접받아야 할 테다. 실제로 세계는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취급하고 있다. 미국의 권위 있는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최근 “한국은 이미 신흥 강국이 아닌 선진국”이라고 평가했다. 향후 5년 내 ‘30-50 클럽’ 승격을 기정사실화하기도 했다. 남북통일이 이뤄지면 미국, 독일, 일본뿐인 ‘30-80 클럽’ 진입도 꿈꿔 볼 만하다. 지난해 세계 9번째의 ‘무역 1조 달러 클럽’ 가입에 이어 또 한 번 기분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요즈음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선진국이라는 명패는 참으로 민망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 전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우리나라가 (‘20-50 클럽’ 가입 같은) 경제적 수치 외에 다른 지표는 부끄러울 정도”라고 일갈하고 “선진국이 되려면 법 이전에 국민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의 발언은 재난과 재해 예방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임기 말이 가까워지면서 내곡동 사저 의혹이나 측근 비리 같은 추문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청와대부터 그리 선진화된 모양새는 아니다.

  
국회는 더 심하다. 제19대 임기가 6월1일부터 시작됐지만 여태 문조차 열지 않은 채 버티기로 일관하며 국민을 지치게 하고 있다. 하긴 18대 때에도 89일이나 공전한 끝에 개원한 것을 보면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새누리당이 국회의원에게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 소속 의원들의 6월 세비 전액을 반납하기로 했다지만 그 정도로 국회 공전의 책임을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진짜 문제는 그러나 국회 문이 열려도 크게 기대할 바 못된다는 점이다.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진영논리에 들러붙어 쌈질로 지새우며 국민을 더 지치게 만들 게 틀림없다. 의사당에서 주먹질하고 망치질하다 최루탄까지 터뜨리는 것도 모자라 북한의 선동을 그대로 리트윗하고 애국가를 부인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게 아무 조치도 못 취하는 ‘식물 국회’에 도대체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그런 곳이라 성희롱과 논문 표절도 넘어가고 부정이든 뭐든 당선만 되면 국회의원 배지를 단 하루만 달아도 평생 연금을 주는 황당한 일도 벌어질 게다.

  
제18대 대통령선거가 몇 달밖에 안 남았으니 이런 못된 짓거리는 갈수록 기승을 부리며 국민을 정말 지치게 할 것이다. 일찍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 미끄러진 아르헨티나를 위시한 남미도 그랬지만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휘말려 복지를 남발하다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건만 우리 정치권은 너나없이 서로 퍼주겠다고 난리다. 잃어버린 10년을 지나 20년을 까먹고 있는 이웃 일본의 집권 민주당이 복지 공약을 전면 포기했다는 소식도 그들에겐 그저 쇠귀에 경 읽기다.

  
‘20-50 클럽’이 자동으로 ‘30-50 클럽’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때가 어느 땐가? 세계가 주시하던 그리스 총선이 끝나면서 불확실성이 다소 걷히긴 했지만 유럽 재정 위기는 여전히 세계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보다 형편이 낫다지만 대외의존도가 워낙 높은 탓에 상당한 충격이 불가피하다. 상반기에는 성장이 다소 미흡해도 하반기에는 나아지리라던 ‘상저하고(上低下高)’ 전망이 상.하반기 모두 부진한 ‘상저하저’에서 아예 저성장이 죽 이어지는 ‘점저(漸低)’로 바뀐 것도 그래서다. 더욱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과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머잖아 국력이 신장되기는커녕 쪼그라들 판이다. 이런 면에서 일본과 남유럽 국가들은 우리에게 더없이 훌륭한 반면교사다.

  
우리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후손에게 가난과 빚만 잔뜩 걸머진 초라한 나라를 넘겨줄 것인가, 아니면 세계무대를 호령하는 위풍당당한 대한민국을 물려줄 것인가가 우리 하기에 달려 있다. 경제의 발목을 잡는 정치도 그렇지만 탈세와 변칙 상속, 담합, 납품가 후려치기 등을 일삼는 경제와 부패가 만연한 사회 등 국가의 품격, 즉 국격을 좀먹는 작태를 바로 잡지 않는 한 ‘20-50 클럽’은 한낱 휴지조각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도선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지사장)
    (전) 연합뉴스 논설실장
    (현)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현)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편집위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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