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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것들

우리 지하철의 부족한 2%

 

 

 

 

우리 지하철의 부족한 2%

 

  뉴욕지하철역. 여기저기 쥐가 돌아다닌다. 심지어 객차까지 침입, 졸고 있는 승객 가슴을 기어오른다. 선로에는 버려진 음식물들이 널려 있다. 참 끔찍했다. 영화 장면이 아니다. 최근 한 TV뉴스가 보도한 내용이다. 80년 대 중반에도 뉴욕지하철은 낙서와 쓰레기로 엉망이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 해 오랜만에 타본 파리 지하철도 낙서투성이였다.

  
지금 우리나라 수도권 지하철은 매일 650만, 연간으로는 23억 5000만 명이 이용한다. 훌륭한 운영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매우 청결하다. 이동상황과 도착예정 시각까지 친절하게 실황중계(?)하는 화면을 설치한 역도 늘고 있다. 서둘러야 할지, 여유를 부려도 괜찮은지 금방 알 수 있다. 뛰다가 사고를 낼 일도 별로 없다. 승강장과 선로 사이의 안전문(스크린도어)과 칸막이는 사고 방지는 물론 소음과 먼지도 줄여준다. 기다리는 동안 잠시 시(詩)를 읽는 여유까지 즐길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지하철을 이용하며 1등 국민의 자긍심마저 느낀다. 선진국에도 안전문은 지하철이나 경전철의 무인운전 구간에만 설치돼 있을 뿐 유인운전 구간에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 너무 생소한 안내표지판의 지명(地名)들
  
그러나 사람 욕심에는 끝이 없는 것 같다. 우리 지하철의 우수함을 잘 알면서도 부족한 2%가 자꾸 거슬린다. 안내표지판이 특히 그렇다. 서울 생활 50년인데도 안내표지판의 역 이름들이 너무 낯설다. 장암, 온수, 대화, 개화, 당고개, 오이도, 방화 등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해당 역을 이용하는 사람들 말고 그 위치를 제대로 아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더구나 동서남북조차 알 수 없는 지하에서 말이다.

  
지하철 3, 7, 9호선이 교차하는 고속터미널역은 항상 붐빈다. 첫 눈에 들어오는 환승 안내는 ‘3호선 대화, 오금’ ‘7호선 장암, 온수’ ‘9호선 개화, 신논현’이다. 이어서 3호선은 ‘충무로•대화 교대•오금’ 7호선은 ‘건국대•장암 대림•온수’ 등으로 진화(?)한다. 그런데 7호선 장암행 열차가 도착할 때는 느닷없이 ‘도봉산 방면’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이 역 어디에도 도봉산이라는 표지판은 없다. 그런데도 승객에게는 오히려 더 쉽고 귀에 익다.

  
4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총신대입구역(이수역)으로 가보자. 역 이름부터 헷갈린다. 4호선 객차에서는 총신대입구(이수)로, 7호선에서는 ‘이수역(충신대입구역)’으로 각각 표기하고 안내방송도 각각 다르게 한다. 7호선에서 내리면 4호선의 ’당고개, 오이도’라는 안내판이 첫 눈에 들어온다.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 좀 더 가면 ‘서울역•당고개 금정•오이도’로 발전한다. 이제야 동서남북을 겨우 알겠다. 지하철 안내표지판이 대부분 이런 식이다. 종점 위주로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종점은 경기도 행정구역이 많다. 생소할 수밖에 없다.

  
몇 달 전 잘못된 안내표지판 때문에 직접 겪은 황당한 경험담이다. 7호선 고속터미널역에서 내려 호남선고속버스터미널을 가기 위해 ‘⑦호남선, 조달청’이라는 안내판을 따라갔다. 개집표기(공식용어라지만 매우 어색하다)를 통과하자 안내판에 '⑦조달청'만 있고 호남선은 사라졌다. 옆에 따로 써 있었다. 따라가보니 센트럴시티빌딩 입구였다. 여기서 호남선 안내는 아예 증발했다. 일단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매우 혼잡했다. 한참을 두리 번 거리니 에스컬레이터 입구에 입간판 안내가 있었다. 그런데 왠 일인지 호남선이 아니라 ‘구호남선’이다. 한 층을 올라가도 역시 구호남선이다. 당황했다. 길을 잘못 든 줄 알았다. 물어보니 그곳이 바로 호남선터미널이었다. 왜 구호남선이라고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안내표지판은 지하철 구역 밖에 있으니 지하철 책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여기까지 관심을 갖고 바로 잡아주면 좋겠다는 것이 소비자 마음이다.

▶ 이용객 누구에게나 익숙한 명칭으로 바꿔야
  
모름지기 안내표지판은 누구나 보는 순간 바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안내판의 존재 이유다. 지리에 어둡거나 낯선 지방 사람, 노인, 외국인들까지도 쉽게 알 수 있어야 한다. 대다수 이용객들에게 생소한 종착역 이름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해당 역을 기준으로 양 방면에 있는 가장 알기 쉽고 이용객이 많은 역 이름을 표기하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표지판만이라도 바꾸자. 예를 들어 고속터미널역의 경우 3호선은 ‘대화, 오금’대신 ‘경복궁, 가락시장‘ 7호선은 ‘장암, 온수’ 대신  ‘도봉산, 보라매공원’ 아직도 공사가 진행중인 9호선은 ‘개화 신논현’ 대신 우선 ‘김포공항, 신논현‘으로 바꾸면 얼마나 쉬울까. 4호선 총신대입구역(이수)의 경우도 4호선 안내는 ‘당고개, 오이도’ 대신 ‘서울역, 서울대공원’ 7호선은 ‘고속터미널, 보라매공원’이나 ‘고속터미널, 가산디지털단지’라면 되지 않겠는가.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명칭이 가장 훌륭한 안내다. 또 방향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3, 4호선은 북쪽행(Northbound)/남쪽행(Southbound), 5호선은 동쪽행(Eastbound)/서쪽행(Westbound)의 방식도 좋을 것이다.

  
객차 안내 방송도 시내버스처럼 다음 도착 예정 역 이름까지 함께 알려주는 친절을 보태면 더 좋겠다. 또 모든 안내를 일관성 있게 해야겠다. 이수역(총신대입구)으로 하든가 총신대입구역(이수)로 하든가 어느 한쪽으로 통일시키라는 얘기다.

  
이해하기 어렵고 혼란스러운 지하철 안내표지판은 탁상행정 때문일 것이다. 고객 입장에서 직접 현장을 찾아 다니며 고민하고 안내표지판을 만든다면 결코 이런 한심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빨리 개선하기 바란다.

 

 

 

김강정 

    (전) MBC보도국장, 논설주간, 경영본부장, iMBC사장, 목포MBC사장
    (전) 경원대 교수, 우석대 초빙교수, 방송광고공사 / 수협은행 사외이사

    (현) 삼성화재, 동아원(주) 사외이사
    (현) 사단법인 선진사회만들기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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