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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것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데...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데…

 

  가끔 속담은 어느 한 쪽만 부각시키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래야 강조하고 싶은 대목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겠지만 때로는 혼란스럽기도 하다. All is well that ends well. 중학생 때 들은 영어 속담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뜻이고 조금 살을 붙이면 ‘결과가 좋으면 만사가 다 좋다’ 정도로 이해된다. 언제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하고 이제는 결과만 좋으면 만사 OK라니 변덕이 죽 끓듯 한다.

  그래도 요즈음처럼 세밑이 다가오는 시절이면 이 말이 새삼 절실해진다. 지난 한 해가 아무리 불만족스러웠어도 마지막 한 달인 12월을 잘 마무리해서 2011년 토끼의 해에 대해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고 대망의 새해를 맞이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한결같으리라.

  올해도 어김없이 다사다난했다. 작년 11월 하순부터 시작된 구제역 사태가 올 들어서도 한동안 맹위를 떨치면서 축산농가는 물론 온 국민의 시름을 깊게 했고 서민들은 때 아닌 늦추위로 장바구니 물가가 뛰어 ‘잔인한 4월’을 보내야 했다. 게다가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장마가 기승을 부리더니 그예 대형 사고들을 쳤다. 서울만 해도 서초동 우면산의 산사태로 17명이 숨졌고 수도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광화문과 대표적 부자동네인 대치동 등이 온통 물난리를 겪었다.

  이들 사고가 천재(天災)냐, 인재(人災)냐를 놓고 말이 많았지만 돈 많고 힘센 자들의 부도덕과 탐욕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무려 7조 원대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금융 비리인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대표적이다. 전·현직 정치인과 감독 당국 등이 대거 연루된 정황이 드러났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 없이 두루뭉수리로 넘어갔다. 대형 은행들이 아무 예고도 없이 가계대출을 중단하는가 하면 대정전이 초읽기에 들어가도록 천하태평이다가 수백만 가구의 전기를 느닷없이 끊어 일대 혼돈을 초래하는 것이 세계 10위를 넘본다는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국외로 눈을 돌려도 어지럽기는 매한가지다. 전 세계를 뒤흔든 일본 대지진과 ‘동양의 베니스’ 방콕마저 집어삼킨 태국 대홍수 등 초대형 천재지변이 줄을 이었다. 그런가 하면 연초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은 중동의 수십 년 독재정권을 연달아 무너뜨리며 아직도 진행형이고 그리스에서 비롯된 유럽발(發) 재정 위기는 세계 경제를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올려놓고 위험한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뉴욕 월가(街)의 주코티공원에서 젊은이들이 외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동일한 주제로 지구촌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들고 일어난 인류 사상 최초의 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안팎 가릴 것 없이 참으로 어려운 시국이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는 ‘우리 민족이 어렵지 않았던 때가 언제 있었냐?’고 자조하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세계의 변방이 아니다. K팝이 세계를 휩쓸고 화장품과 명품은 서울에서 통해야 세계에서 통한단다. 정보통신기술(ICT)은 말할 것도 없고 의료, 행정, 학술, 건설,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한류가 무척 도도하다. 우리 노래를 우리말로 따라 부르며 눈물 흘리고 커버 댄스(좋아하는 가수들 춤을 똑같이 따라하는 것)를 추면서 열광하는 세계의 젊은이들을 보면 ‘정말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왔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문제는 정치권이다. 세계 경제 위기가 여전한 가운데 서민들은 물가고에 허리가 휘고 양극화는 계속 악화되지만 정치인들은 패거리를 지어 노상 싸움질이다. 저마다 국민을 들먹거리지만 실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그 난리를 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지지 여론이 몇%이고 반대 여론이 몇%인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권력만 잡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무상급식이든, ‘반값 등록금’이든 모두 똑같다. 합리도 없고 정의도 없다.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만 하면 끝이다. 타협은 곧 나의 패배이고 상대방의 승리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집단이다. 몽땅 외국으로 수출이나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이제 그 못난 정치권에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려고 한다. 올해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해 달라는 주문이 바로 그것이다. 제발 멋지고 통쾌한 모습을 단 한 번이라도 국민에게 보여 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얼마 전 한 케이블방송의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3’에서 우승한 4인조 보컬그룹 울랄라세션의 리더는 원래 위암 4기의 중환자였으나 복막에 전이됐던 암이 우승 후에 보니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공연에 몰두한 ‘긍정’의 힘이 기적을 연출한 것이다. 우리 정치권에 이런 기적을 요구한다면 무리일까?

  스마트폰 2천만 시대다. 책상 위의 인터넷이 손바닥 안으로 들어온 만큼 우리네 삶에 큰 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소통이 크게 자유로워진 것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어째 자기들끼리만 소통하는 ‘그들만의 리그’인 때가 많아 보인다. 상대방과도 소통하며 이견을 해소해 나갈 때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 사회, 기업, 국가 모두 진정으로 스마트한 삶을 살 때다.

  60년 만에 한 번 온다는 ‘흑룡의 해’ 2012년에는 한반도에 통일과 번영의 서광이 가득하기를 기원해 본다.

 

 

 

이도선 ( yds@yna.co.kr )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지사장)
    (전) 연합뉴스 논설실장
    (현)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현)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편집위원,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