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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야기

상대의 생각까지 간섭하려는 마음

스님의 주례사(법륜) 중에서 발췌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게 되면 상대의 생각, 심지어 감정까지 시시콜콜 알고 싶어 합니다.

상대에게 관심이 많아서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상대가 내 것이라는 생각이 더 커요.

이것은 상대를 자신의 통제권 안에 두려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남편이 늘 말이 없고 뭘 물어도

"알 필요 없다"며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아내는 거기에 불만을 품습니다.

 

"입에 자물쇠를 달았나, 왜 항상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겨우 한마디 하지?" 이렇게 못마땅해 합니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에 대해 남편에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아내가 몰라도 되는 일인데도 자꾸 꼬치꼬치 물어서 귀찮다"라고 합니다. 아내가 볼 때는 알아랴 할 일을 남련이 안 가르쳐 주는 것 같지만 남편이 볼 때는 아내가 몰라도 될 일까지 자꾸 알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갈등을 피하려면 먼저 상대에게 맞춘다는 마음으로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꾸 알고 싶고, 캐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아야 해요.

"꽃아, 꽃아, 왜 한꺼번에 피느냐. 천천히 피지. 꽃아, 꽃아, 왜 한꺼번에 지느냐, 좀 천천히 지지."

이렇게 말하지 않잖아요. 피는 것도 제 사정이고, 지는 것도 제 사정이라고, 꽃이 피면 꽃을 보고, 꽃이 지면

그만인 것처럼 무심이 볼 수 있는 게 수행입니다. 그렇게 안 되는 게 우리 중생심이고, 그렇게 안 되는 게

현실이지만 목표를 세워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걸 확실히 아셔야 합니다.

 

만약에 같이 살 거면 상대를 그냥 날씨나 꽃처럼 생각하세요. 피는 것도 저 알아서 피고, 지는 것도 저 알아서

질 뿐, 도무지 나하고 상관없이 피고 지잖아요. 다만 내가 맞추면 돼요. 꽃 피면 꽃구경 가고, 추우면 옷 하나

더 입고 가고, 더우면 옷 하나 벗고 가고, 비 오면 우산 쓰고 간다고 생각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남의 언행, 남의 생각에 간섭하려 들어요. 가령 남편한테 어떤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일 때,

남편을 위해서 그렇게 합니까? 아니면 내 이익을 챙기려고 눈치를 보는 겁니까?

내가 이익을 챙기려고 눈치를 보잖아요. 내가 "이 것 사 주세요"라고 말하면 남편에게 "그래"하는 소리를

들어야 된다고 이미 답을 정해 놓고 눈치를 보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이 남편의 의사를 존중한다면 어때요?

사 달라는 건 내 마음이고 안 사 주는 건 누구 마음이에요? 남편 마음이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남편의 생각을 간섭하지 않으면 말하기가 쉬워요. 이야기 하고 싶은 것 있으면 해버리면 돼요.

스님한테도 이야기하고 싶으면 그냥 해버리면 돼요. 눈치 볼 핖요가 없어요. 받아 주고 안 받아 주는 건

그 사람 마음이니까 나는 말하는 것까지만 생각하면 돼요.

"이것 하나 사 주세요"라고 말했는데, 상대가 "안 돼!" 이러면 "알았습니다." 이러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먼저 답을 딱 정해 놓고 있어요. '내가 사 달라고 하면 네가 사 줘야 돼.' 이런 식이에요.

그런데 안 사 주면 기분이 나빠지죠? 그래서 남편이 나중에 사준다 해도 "이제 나는 안 살 거야." 이럽니다.

 

이 경우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못 사니, 누구 손해예요? 그러면 또 자기만 괴롭잖아요.

그래서 괜히 남편 미원하고 그러잖아요? 이때는 "이거 하나 사 주세요"라고 가볍게 말하세요.

상대가 "안 돼"라고 하면 "알았어요." 이러면 되고, 그래도 사고 싶으면 또 "사 주세요." 이러면 되는 거예요.

"안 된다니까." 이러면 "알았어요." 이러면 되는 거고. 여전히 마음에 있으면 또 "그래도 사 주시?" 이러면

되잖아요. 그럼 살 확률이 높아요, 안 높아요? 높습니다.

두 방법 중에 어떤 게 더 이익이에요?

남편도 안 미워하고 나도 안 괴롭고, 물건 살 확률도 높은 길이 있잖아요.

그런 길 놔두고 공연히 성질내면서 스스로 괴로움을 삽니다.

'저 인간은 성질이 더러워서 사 달라고 할 때 안 사주고. 그래, 네가 사 준다고 해도 이제 치사해서 안 갖는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남편을 미워하고, 갖고 싶었던 물건도 결국 못 사는 거예요.

 

자기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놓고는 '전생에 뭔 죄를 져서 저런 인간을 만났을까' 하고 한탄을 합니다.

이것은 전생이 아니라 자신의 어리석음 탓이에요.

만약 다섯 번 이야기해서 남편이 사 줬다면 흔히 뭐라고 그래요?

"아이고 그거 하나 사 주는 데 다섯 번이나 이야기해야 돼?"

그러면 남편은 사 주고도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당신이 안 된다고 했는데 제가 다섯 번이나 이야기해서 미안해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남편은 사 주고 기분이 좋겠어요, 안 좋겠어요?

당연히 기분이 좋지요. 그러면 남편은 기분 좋아서 한 개 더 사 줍니다.

어떤 게 더 현명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