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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운이야기

임관 3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 ROTC 17기 임관 30주년 기념 문집을 발간한다고 하여 아래 글을 기고하였다.

 

 

지뢰밭 통과식

 

 

                                                                                                             고려대   황 득 수


 

지뢰밭은 애시당초 있지도 않았다.
 
단지
배치받은 우리 대대가 강원도 하고도 최전방이고
민간인 통제선 안에 위치하였으며
때는 여름 잡풀과 녹음이 우거지고 
야간 공제선만이 어슴프레 보이던 주변 야산들의 음산한 분위기때문이었다.
 
하늘같은 16기 선배들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별도 달도 보이지 않아서
칠흑같이 어두운 1979 6월 밤에
자대 배치를 받아 긴장과 피곤함으로 쉬고만 싶은 17기 동기들에게
맥주와 됫병 소주를 박스채 들여놓고 비오큐에서 성대한(?) 신고식을 시작하였고
술기운이 오를 만 하니까, 갑자기 군기가 빠졌다고 생트집을 잡으며 밖으로 집합하라고 명령하였다.
이크 이제 시작이구나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갖추고 긴장하며 총알같이 군화를 신고 밖으로 튀어 나갔다.
 선배가 술기운에 몸을 약간씩 가누지 못하며 부동자세로 서 있는 11명의 동기생들에게
낮고 조용하며 비장한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잘 들어라, 귀관들이 전방에 바라보고 있는 야산을 넘으면
바로 괴뢰들이 남으로 총구를 겨누고 있는 이북이다.
이곳이 말로만 듣던 최전방 민통선 안에 위치한 여러분이 2년 근무하게 될 68FA.'
 
'여러분이 들어서 알고 있을 것으로 믿지만 6.25 휴전이후에 저 야산을 넘어서
수많은 공비와 간첩들이 넘어왔고 이 부대의 선배 장병들의 목과 귀를 잘라 다시
북으로 넘어간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서 있는 이 풀밭은 비록 영내에 있다 해도 미확인 지뢰밭이다.
따라서 함부로 발을 내 디뎠다가 발목이 날라갈 수 있으니 매우 조심하기 바란다.
아직 전방에는 이와 같이 지뢰 발굴을 끝내지 못한 지역이 많다.
 
'오늘 자대에 배치를 받은 첫날 자랑스런 ROTC 후배 장교들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지금부터 전역하는 그 날까지 무사히 사고없이 부대근무를 잘 하려면 반드시
미확인 지뢰밭을 통과하는 의례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68포병대대의 전통이다.
오늘 입대한 17기 전 동기들이 무사히 이 지뢰밭을 한 사람의 낙오자나 발목부상자 없이
통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부터 지뢰밭 통과요령을 알려주겠다.
 
'지뢰밭을 통과할 때는 야간 정숙보행으로 걸음을 걸어야 하고 한 발 한 발 발끝부터 뒷꿈치로
디뎌야 하고 발을 높이 들어서 돌에 걸리거나 풀에 걸리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그리고 앞사람 뒷사람의 손을 모두 잡고 앞사람이 디딘 곳을 밟아야 하므로 앞사람 뒷꿈치가
떨어지자 마자 뒷사람의 발끝이 정확하게 앞사람의 뒷꿈치 위치에 발을 디뎌야 한다.'
 
'자기 멋대로 발을 헛 딛이거나 한 눈을 팔다가 지뢰가 터지면 17기 동기들의 명예는 실추되고
본인은 부상을 당하게 되어 평생 불구자로 살아갈 것이다.
내 부주의로 애꿎은 동기를 다치게 하는 일을 절대로 없어야 한다.'
 
 
모두 잘 할 수 있겠나 !.... 모두 '' 하였다.
 
'. 그러면, 지금부터 이 지형을 가장 잘 아는 16 000 선배가 가장 선두에 위치하여 지뢰밭을
통과하겠다. 000 선배의 손을 잡고 천천히 17기 모두가 뒤를 따르기 바란다.
 
'출발'
 
칠흑같은 밤, 가랑비가 추적 추적 내리는 밤 16 000 선배의 손을 놓칠세라
발자국의 위치를 놓칠세라 극도의 긴장 속에서 17기 동기 11명은
손에 손을 잡고 조용하게 조심조심 한발 한발을 떼어 놓았다.
 1분을 이리저리 걸어서 이동을 멈추었다.
 
'모두 무사히 지뢰밭을 빠져 나왔나? 하고 물었다.
예 모두 무사합니다. 하고 동기들은 대답하였다.
 
'그래 수고가 많았다. 이렇게 정신을 통일하고 집중하면 죽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 부대 근무는 이와 같이 매사에 서로 협동하여 서로 아끼고 돕고 정신을 집중하여
성공적으로 마치고 무사하게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우리 모두는 지뢰밭 통과를 무사히 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휴우하고 긴 숨을 내 몰아쉬었다.
그리고 다시 BOQ로 들어가서 술을 새벽까지 마셨던 자대배치 신고식인 지뢰밭 통과식이 떠올랐다.
 
 
 전통이 아직까지 후배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지는 모른다.
어째든 지뢰밭은 부대 안에 애시당초 없었으며 그저 잡풀이 자란 벌판이었다.
함께 웃을 수 있고 잊지 못하는 기억으로 남아 있는
지뢰밭 통과 의식은 나름대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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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1(三無 一存 ), 예외는 있다

 

 

 

 

ROTC사이엔

학연 지연 혈연은 없고 오로지 기수만 존재할 뿐이다.

 

맞는 말이다.

고향, 학교, 친척 등의 기타 요소들은 ROTC집단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또한 무의미하다. 오로지 선배냐 후배냐 동기냐 만이 중요하다.

 

아무데서나 주위에서

초록색 반지를 만나면 반가워 말을 건넨다.

 

혹시 몇기 이신가요?

0X 기 인데요‘ 하고 말씀하시면

‘어이구 선배님, 17기입니다.’로 바로 선배대접을 깍듯이 하면서 대화가 시작 된다.

 

혹은 ‘전 0Y 기입니다’ 라고 하면

‘어 그래요 난 17긴데 반갑구만... 어디서 근무했나?’하고 자연스럽게

후배와 격의 없는 대화를 이어간다.

 

세상만사 모두 그렇지만 3 1존 거기에도 예외는 있었다.

 

 

 

1979 4월 유난히 찬바람이 슁슁 불어대던 밤...

광주포병학교 14구대,

야간 점호가 끝나고 단꿈을 꿀 시간, 11

갑자기 구대장이 주번근무자인 내게 ‘빰빠라’를 발동하셨다.

‘지금부터 1분 이내에 팬티바람으로 전원 연병장으로 집합한다’

‘주번사관 뭐하나 !! 빨리 집합시켜라’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전원 기상 1분내 팬티바람으로 연병장 집합’하며

단잠을 자고 있는 동기생들을 큰 소리로 깨웠다.

‘야 뭐야 뭔 장교가 빰빠라야 에이 C...'하면서도

난생 처음 받아보는 빰빠라 기합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난 근무복을 입고 소총을 메고 주번사관 근무 중이었으므로 애매하였다.

구대장께 물었다.

‘구대장님 저도 옷 벗고 나갑니까?

구대장 왈 ‘야 이놈아 근무자가 자리를 지켜야지 어딜 나가 넌 대기해’

‘예 알았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나를 제외한 전 구대원은 모두 팬티바람으로 연병장에 집합하였고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고통의 빰빠라 기합을 받게 되었다.

나는 주번근무를 서게 되어 운 좋게도 열외가 되었고 따뜻한 내무반에서

혼자 대기하며 동기들이 어서 기합을 끝내고 입실하기를 기다렸다.

혼자 열외로 앉아 쉬고 있자니 좌불안석이었다. 하지만 내겐 하늘이 내려 준 행운이었다.

 

1시간이 지났을까?

추위와 고통의 기합에 악이 받친 동기생들이 덜덜 떨면서 괴성을 지르면서

복도로 몰려들어 오고 있었다.

난 너무 미안하여 말도 못 건네고 화가 나 씩씩거리는 동료들의 눈치만 보고 복도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야, 힘들었지 수고했다.’ 하면서 말을 건네 보았지만 반응은 모두 귀찮다는 듯이

냉담하다.

 

광주포병학교 새벽의 칼바람 속에서 살얼음이 언 하수구에서 맨살에 포복을 했다고 하니

얼마나 춥고 고통스러웠겠는가?

동기생들은 샤워장에 들어가서 찬물로(구대장이 찬물만 나오도록 조작함)

온몸을 씻으면서 추위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댄다.

그 소리를 나 혼자 복도에서 듣고 있자니 마치 수십 명의 귀신이

한꺼번에 울부짖는 소리로 들려 섬뜩하였다.

목욕을 마치고 모두 내무반에 들어와 씨부렁거리다가 피곤한지 이내 잠이 든 동기생들...

적막이 흐른다.

 

그런데 조금 후 그러니까 새벽 한시가 가까워 진 시간,

구대장께서 나를 포함하여 몇 명의 동기생들을 조용하게 깨워서 바깥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연병장에 집합해 보니 구대장을 포함하여 4명이었다.

구대장께서 하시는 말씀,

‘쉬, 조용히 해라 오늘 내가 느그들하고 한잔 할라쿤다.

오늘 이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이야기 하지 마래이.

오늘 날 잡아서 내가 한턱 내니께 고마 암말 말고 송정리역 건너편 골목에

떡갈비 집으로 가자. 떡갈비 놓고 소주한잔 하자 마..

 

아니 이건 또 어인 횡재수인가?

고통의 빰빠라에서 열외된 것도 미안하고 송구한데 그 맛있다는 떡갈비와 사제 소주를???

내겐 엄청난 행운의 순간이었다.

구대장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 아무한테도 이야기 하지 않을 겁니다.

그 새벽 송정리에서 구대장께 얻어먹은 떡갈비와 소주는 평생 잊지 못한다.

 

다음날, 같이 떡갈비 먹으로 갔던 친한 진주 KS대학 동기에게 물어 보았다.

'야 내가 어제 주번근무하면서 빰빠라 열외하고 너희들하고 같이 구대장 따라가서

떡갈비까지 얻어먹고 재수가 억수로 좋았는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나도 모르겠다.'

동기생이 내게 살짝 귀띔을 해 준다.

‘우리 구대장이 진주 KS대학에 니하고 같은 고향 산청 출신 아이가 이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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