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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이야기

학군 17기, 소위 임관 이후 30년 - 퍼온 글

 

 학군 17기, 소위 임관 이후 30년

                                                         운죽(雲竹)  박형규(朴炯圭)

 

  이제 이틀 후인  금년 2월 23일이면 학군 17기 3,601명이 경기도 성남시 소재 문무대(文武臺)에서 육군소위로 임관한 지 만  30년이 되는 날이다. 1979년 2월 23일 금요일 아침,  2년간 하계병영훈련 시 땀과 눈물 콧물을 흘리며 고된 군사훈련을 받았던 문무대 연병장에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이하 많은 군 장성들이 단상에 배석한 가운데 임관식이 엄숙하게 거행되었으며, 마침내 선배 장교들이 우리 동기들의 양 어깨에 5만 촉광으로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하나씩 달아줌으로써 우리는 그 옛날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했던 서라벌 화랑의 후예인 자랑스런 대한민국 육군 장교단의 일원이 되었던 것이다.  

  그 후 2월말 우리 신임소위들은 각종 병과학교로 이동하여 약 4개월간의 학군 초등군사반 과정을 이수해야 했는데 광주 상무대 예하 보병학교['나를 따르라!], 포병학교['알아야 한다!'], 기갑학교(현 기계화 학교)['내 생명 전차와 함께!']와 여타 지방 소재 공병학교['시작과 끝은 우리가!'], 통신학교['통하라'] 등의 5개 전투병과 학교 외에도 화학학교['알아야 산다!'], 헌병학교, 병기학교, 수송학교 등에서 소정의 이론, 실기 및 초급장교가 구비해야할 인격과 자질과 덕목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심신을 수양하고 단련해야만 했다.

   초군반 과정을 이수하고나서 6월 하순 각 지역 보충대를 경유하여 임지로 배치받은 우리들은 초급지휘자가 되어 상관들의 명령에 복종하고 부하들을 관리, 감독하는 상경하애(上敬下愛) 정신을 실천하면서 연일 계속되는 부대훈련에 적극 참여해야만 했다. 그러던  와중에 10. 26과 12. 12 사건이 연속하여 발생하면서 신군부의 등장으로 인한 대한민국 역사의 대격변기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최악의 국난을 극복하는 대열에 동참해야만 했다. 이듬해에는 급기야 광주에서 5.18 사건이 터지면서 많은 동기들이 소요사태 진압을 위해 그곳에 투입되어 그 험난한 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던 것이다.

  장기복무를 지원한 약 100 명의 동기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군 17기 동기들이 1981년 6월 말, 2년 4개월 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육군 중위로 전역하게 되었지만 크고 작은 군부대내외의 사건 사고로 인해 10명의 동기들이 순국(殉國)하여 서울 국립현충원에 9명[고(故) 오하영 소령-청주대-, 이승수 소위-한양대-, 권영주 중위-충남대-, 김세권 소위-광운대-, 이인상 소위-고려대-, 황의국 소위-동국대-, 이원우 소위-외국어대-, 김원규 중위-동국대-, 박봉관 중위-동아대-], 대전국립현충원에 1명[고(故) 박인섭 소령-광운대-]이 안장되었다. 앞서간 10명의 동기들의 그 뜨거운 희생과 헌신은 조국통일과  자유수호에 값진 밑거름이 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나는 지난 6년간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학군 17기 총동기회의 공식 행사에 두 번 참석하게 되었는데 하나는  2004년 5월 9일 일요일 성남시 소재 국군 체육부대에서 우중에 실내 체육관에서 거행된 학군 17기 체육대회였고, 다른 하나는

2007년 5월 3일 목요일 서울 용산구 용산동 소재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거행된 고(故) 권영주 동기의 현양식(顯揚式)이었는데  당일 그곳에는  2007년 5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된 권중위를 추모하기 위해 유족, 유관단체 주요인사, 생전에 근무했던 제 3군단 2전차대대 의 장병들과 30여명의 우리 학군 17기 동기들이 참석하였다.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한 동기들이 각계각층에서 기반을 잡아가면서 학군 17기 총동기회 결성 및 활성화 운동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길인철(경희대) 초대회장(1987-1989)을 비롯하여, 김충원(시립대) 2-3대 회장(1990-1993), 장인수(한양대) 4대 회장(1994-1995), 김영진(연세대) 5-6대 회장(1996-1999), 황진하(청주대) 7대 회장(2000-2001)이 학군 17기 총동기회의 조직, 운영 및 각종 행사와 활동 등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였으며, 김재동(중앙대) 8대 회장(2002-2003) 때부터 '가우리안 상' 제정 및 시상, '푸른 누리' 발간, 세미나 개최 등 보다 진일보하고  학구적인 동기회 운영 관리를 시작했으며,

유협(건국대) 9대 회장(2004-2005)과 권수봉(서울대) 10대 회장(2006-2007)과 현재의 유재은(국민대) 11대 회장(2008-현재)에 이르러서는 각 대학 및 지구별 모임을 육성, 활성화시킴은 물론 육사 35기와의 연합모임 운동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작년부터는 각 지구별로 '1357회'라는 모임으로 우리 학군 17기들과 육사 35기들이 모여 골프대회, 회식, 노래방에서의 친목도모 등을 통하여 대부분 초.중.고 생활을 함께 했고 1979년 초에 임관한 임관동기로서의 우애와 친목을 돈독히 하는데 매진하고 있다.  육사 35기 중에는 나와 고교동기이면서 1학년 때 같은 반이기도했던 정원식 예비역 대령이 있다.

   금년 2월에 학군 47기들이 소위로 임관했기에 우리 학군 17기는 정확하게 임관 이후 30년이 지났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학군 총동기회의 중고참급 기수의 자리를 점유하게 되었다. 또 작년 10월 30일 우리 17기 동기 중 임국선(원광대) 장군이 소장 진급과 함께 양평 20사단장에 보임되는 영예를 획득함으로 인해 이제 우리 동기들이 달성해야 할 목표는 중장 진급과 군단장 보임에 이어 대장 진급과 군사령관 혹은 참모총장 보임이라는 두 가지로 제한되기에 이르렀다.

   돌아보면 소위 임관 이후 30년, 강산이 세번이나 바뀌는 긴 세월이었다. 우리 현존하는 3500여 명의 동기들은 각계 각층에서 성공하였든 혹은 부진하였든 간에 이제 50대 중반, 극심한 경제난과 절망적인 생활고를 극복해야 하는 지천명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한 손에 펜을 다른 손에 총을 움켜잡고 조국사수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젊음을 송두리째 불태우던 시절을 결코 망각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