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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것들

가우리

아래 문헌에서 보면

가우리는 고구려의 별칭으로 여겨진다.

 

 

 

우리 민족이 사는 온누리를 쥬신(朝鮮)이라 한다.

우리 민족은 파미르 고원에서 발원하여, 바이칼호를 거쳐 불함산(백두산)으로 이동 정착하였다.
불함산에 도착한 우리 조상들은 그곳을 중심으로 집단 정착 문화를 발달시켜, 서기전 6000년경에는 홍산문명을, 이어서는 황하문명을 일으켰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서기전 3898년에 배달나라를 세우고, 농경민족인 중화족을 제압해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배달나라는 18대 1565년으로 끝나고, 그 뒤를 이어 단군쥬신이 세워졌다.

단군쥬신은 아사달을 도읍으로 제국을 형성, 신쥬신을 중심으로 말쥬신과 불쥬신의 세 단군이 넓은 지역을 나누어 다스렸다.

개아지 쥬신(기자조선)이나 위만쥬신(위만조선)은 쥬신 제국의 지방 제후국이었다. 따라서, 한무제의 위만쥬신 정벌은 중화족과 지방 정권과의 투쟁이었으며, 중국 사서가 고집하는 이른바 한사군(漢四郡)은 한무제 퇴치에 공이 큰 장군들에게 분봉한 영지였다.

단군 쥬신이 나약해지자, 해모수의 부여와 동명왕의 가우리를 함께 계승한 고두막루칸이 제국을 아우르고 졸본부여를 일으켰다.

부여가 일어나면서 제국의 권위가 떨어져 지방 세력이 성장하였다. 서기전 3세기경에는 황하 상류에 살던 동호족의 한 갈래가 흉노에 밀려 남하, 서기전 57년에 서울에 자리잡고 나라를 세웠는데, 이것이 실라(신라-新羅)이다. 실라는 이후 마한, 백제와의 투쟁 과정에서 소백산맥을 넘어 서라벌로 옮긴다.

서기전 37년에는 졸본부여에서 성장한 추무(고주몽)가 부여를 탈출 졸본지방에 이르러 가우리(고구려)를 세우고, 이어 북만주 일대를 통일하였다. 이때 가우리 건국의 공신 협보가 일본지역으로 달아나 최초의 나라 다파라국을 일본지역에 세웠다.

백제는 가우리 건국 과정에서 배신감을 느낀 황비 소서노와 그 아들 비류, 온조가 가우리를 탈출, 비류호 지역에서 독립한 나라이다. 이후 백제는 요서 지역으로 옮겼다가(외백제) 다시 충청남도 아산 지역(목지국)으로 옮겼다. 이 시기에 온조가 독립, 십제(한성백제)를 세웠으니, 백제의 아우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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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해, 고려 등이 고가우리[高句麗]를 잇는다는 의미에서 “가우리[句麗]”라는 국명를 사용하였기에 대쥬신제국사에서는 이를 구분키 위해 고구려=고씨가우리(고씨 왕조의 가우리), 밝해=대씨가우리(대씨 왕조의 가우리), 고려=왕씨가우리(왕씨 왕조의 가우리) 등으로 국명이 표현되어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고가우리[高句麗]의 고(高)를 성씨(姓氏)로 오인한 잘못임을 여기서 밝히며 앞으로 출간되는 대민족통사 시리즈에서는 고구려(고가우리)→위가우리, 대가우리→밝해, 고려→왕가우리로 국명이 지칭됩니다.
참고로 고가우리[高句麗]의 고(高)자는 크다, 높다의 뜻 외에도 위(上)의 뜻이 함축되어 있어 위가우리(위대한 가우리, 큰가우리)로 표현하였음을 밝혀둡니다.


내용참고: 다물넷 (http://www.damoo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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