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반려자인
아내와 이야기도 나눠보지 않은 채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아내와 내가 현실적인 일에서 손을 떼고
노후를 보내는 방법을 편안한 마음으로 그려보았다.
은퇴를 하고나면 서울에서 멀지 않은 교외에서 살고 싶다.
산을 뒤로 하고 개울을 앞에 둔 나지막한 언덕에
황토로 지은 아담한 기와 단층집에 아내와 둘이서 살고 싶다.
황토로 지은 집에는 작은 방 두 개와 큰 방이 하나,
모두 방이 세 개 필요하다.
하나는 책도 읽고 글도 쓰는 작은 방이 필요하다.
혹시 자식들이 와서 자고 가겠다고 하면 큰 방을 자도록 비워주고
이 방에서 아내와 난 잠을 잔다.
또 하나엔 아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업실로 쓰는 방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큰 방은 침실로 쓴다.
서너 명이 둘러앉아서 한 여름 밥을 나눠 먹을 수 있는 넓이의 마루와
그 마루 밑에 신발을 벗을 수 있는 댓돌이 있다.
그 댓돌에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가릴 수 있는 기와지붕과 처마,
댓돌에서 조금 떨어진 기둥 옆에 믿음직스런 견공 한 마리와 견공이 묶을 수 있는 집,
마당 한 쪽에 차가운 우물이나 펌프가 있어
화초에 물주기 좋고 한 여름에 등목하기 좋은 물이 시원한 곳,
사시사철 볼 수 있도록 채송화 봉숭아 나리 백일홍 분꽃 장미 찔레 등 여러 가지 꽃들과
목련, 소나무, 감나무, 포도나무, 자두나무, 대추나무, 밤나무, 석류나무, 등을 심어 놓고
가을엔 열매를 거두어서 이웃과 자식손자들과 나누어서 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
빨랫줄을 길게 매고, 장독대를 만들고 그 곳에 된장 고추장 장아찌 등 담아서 올려놓고
뒷밭에는 고추 상추 배추 무 오이 호박을 심어서 수시로 걷어 씻어 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
재래식 부엌엔 아궁이가 있어 장작을 지필 수 있고
부뚜막엔 재래식 가마솥을 걸 수 있고 고구마 감자 옥수수를 찌거나, 백숙을 만들거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광을 하나 만들어서 그 곳에 술을 담아 보관하고꼭 필요한 연장(예초기, 삽, 곡괭이, 도끼, 낫, 갈쿠리, 호미, 전지가위, 망치, 못, 뻰치, 톱, 등)을 나란히 걸어 두고,
개 사료도 넣어두고 기타 필요한 물건도 넣어두고 싶다.
재래식 부엌과 광은 내가 드나들면서 관리하도록 한다.
아내는 집 안의 일들을 편리하게 할수 있도록
냉장고, 텔레비전, 세탁기, 전기밥솥, 전자레인지, 김치냉장고가 필요하다.
보일러도 자주 사용을 하지는 않겠지만 유사시를 위해서 준비해야 한다.
입식부엌도 별도로 실내에 만들고,
수세식 화장실도 집안에 욕실과 함께 따로 있어야 한다.
자그만 하이브리드 자동차 1대와 자전거 두 대,
리어커 작은 것 하나...
개천이 가까이 있어서 여름에 발 담글 수 있고
뒷산에 아무 때나 오를 수 있는 오솔길이 나 있다면 좋겠다.
아침에 일어나면 둘이서 뒷산에 산책을 다녀와서 마당을 쓸고, 화초에 물을 주고
밥을 지어서 밥을 먹고 밭을 일구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아내와 함께 쇼핑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버스나 기차를 타고 애사 경사도 찾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저녁엔 돌아와 TV도 보고 휴식도 취하고 싶다.
집에서 downtown까지 자가용으로 10분 정도,
downtown엔 대학병원도 있고, 큰 할인 마트도 있고,
맥주나 차나 소주 마실 만한 곳이 있다면 좋겠다.
기차도 지나다니는 곳이면 좋겠다.
중요한 것은 아내의 생각을 들어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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