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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이야기

3D wire panel system 수출 후기

㈜DJWP의 3D wire panel M/C 수출 후기

 

Man & Biz Corp.

 

2004년 1월 2일 갑신 년 새해 벽두에

DJ의 HMS 부사장의 들뜬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다.

드디어 베트남의 큰 바이어와 2003년 12월 26일에 3D wire panel M/C 1 line의 수출계약

을  맺었고 곧 L/C가 열릴 예정이니 도와주기 바란다,

무역을 아는 사람이 동진 내에는 없으므로 반드시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간청하였다.

나는 애써 담담한 어조로 잘되었군요 축하드립니다. 하면서도 일단 계약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fax로 계약서와 L/C application 서류를 받아보았다. 

 

사실은 이미 베트남의 ST GROUP과 오래 전부터 이야기가 있었던 건이고, 그 이전에 내 베트남 파트너인 COMPOTECH SAIGON INC.의 MR. CONG DOAN과 3D WIRE PANEL SYSTEM에 대한 견적이 오고 간 사실을 떠 올리면 내겐 약간 속이 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2002년 베트남 출장시 내가 최초로 베트남의 파트너인 COMPOTECH에게 DJ의 3D WIRE PANEL SYSTEM을 소개하였고 마침 MR. CONG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였고 MR. CONG은 그 겨울에 한국을 방문하여 DJ의 3D WIRE PAENL SYSTEM을 살펴보았고 내게 투자를 하겠노라고 하여 견적요청이 있었다.

 

당시 DJ는 내게 USDXY0,000/FULL SET의 견적을 주었고 가격이 비싸다고 깎아달라고 하는 MR. CONG의 요청에 원가가 높아 가격인하는 힘이든다며 밀고 댕긴 끝에 USD%&0,000/FULL SET까지 가격이 내려갔지만 MR. CONG의 생각은 달랐다. 본인이 생각할 때 중요핵심 장비 및 부품(전자 및 정밀가공 부품)은 한국에서 제작하되 나머지 간단한 기계부품은 베트남에서도 도면만 있다면 제작이 가능하니 그리하면 전체 제작비가 약 USD$$0,000/FULL SET로 낮아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DJ와 다시 가격 및 제작방법에 대한 제안을 해 달라고 하였다.

나는 합리적이라 생각하여 DJ HMS 부사장에게 바이어 말대로 조정을 요청을 하였다. 하지만 국내 제작기술과 수출기반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유일한 공급업체인 DJWP는 고압적인 자세로 첫 기계시스템인만큼 한국에서 모든 기계의 FULL SET를 제작하여야 하며 USD630,000이하로는 절대 할 수 없다. 하여 그만 아쉽게도 COMPOTECH SAIGON INC와 무위로 끝나버렸다.

 

그런 끝이어서 내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어찌됐든 나와 인연이 맺어지고 깊어진 DJWP의 새로운 베트남 파트너와의 계약이 이루어지고 실질적인 수출이 코앞에 닥친이상 과거에 집착하여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여 돕기로 마음을 내심 먹고 있었다. 내게 보내온 베트남 ST GROUP와의 주요 거래조건은 아래와 같았다. 

 

(주요 조건)

 

1.       3D wire panel machine  1 set로 200sheet/8Hr(one shift) capa.의 신기계로 ㈜동진와이어패널이 제작하고 생산제품은 30mm styro-foam을 이용하여 50mm panel을 가장 얇은 두께로 하고 130mm styro-foam을 이용하여 150mm panel까지 만들 수 있는 기계이어야 한다고 되어있다.

2.       가격은 USD##0,000.00,CIF,I.C.D SONG THAN, 

3.       PAYMENT : L/C AT SIGHT(그 중 80%와 20%를 나누어서 지급 받기로 됨) 그 조건은 아래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조건이다

-          B/L, INVOICE, PACKING LIST, INSURANCE POLICY, COUNTRY OF ORIGIN,

             PATENT CERTIFICATE, INSPECTION CERTIFICATE, HEAD LETTER 80%

-          SUCCESSFUL COMMISSIONING CONTRACT 20%

       4.  SD : 2004년 4월 5일   ED : 2004년 4월 10일 결국 3개월(90일) 이내 선적

5.       분할선적, 환적 금지조건이며 안전하고 부식방지를 위한 포장 및 운송이 필요함

6.       베트남 작업자 2명(기계 1 전기 1)의 한국 내 연수조건(1개월)

7.       베트남 수퍼바이저 3명 파견 설치 및 시운전 완료(최소 25일간)하고 1년 보증조건

 

HMS 부사장은 내게 무역업무의 협조를 당부했고 나는 업무협조에 따른 COMMISSION 지급을 확약 받고 업무협조에 착수하였다.

왜냐하면 HMS가 사후에 책임을 잘 지지 않는 경향을 몇 번 보아왔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도 일본에 미니펀치 수출을 위해 우연히 알게 된 DJWP HMS 부사장, 그리고 부사장의 친형인 HCS 사장은 우연히 나와 같은 성씨에 돌림자까지 같아서 남들이 보아도 나와 DJ사장, DJ부사장이 서로 형제라고 하면 믿을 정도였다. 인연이다 생각이 들었고 그 때문에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협조하여 일본으로 수출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서로 가까워 졌고 또 서로를 파악할 수 있었다. 1년 간 서로 협력을 한 결과 인간적으로나 업무적으로 동진의 경영진과 나는 그다지 CODE가 맞지 않아 가급적이면 향후에 DJ와 관련한 일거리를 만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인연이 각별했는지 앞서 이야기 했듯이 베트남의 내 파트너가 DJWP의 기계를 투자할 생각이 있다고 해서 나는 다시 DJ 경영진과 깊숙하게 접촉을 하게 되었고 비로소 나는 DJ 와이어패널기계에 관심을 깊이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베트남 파트너가 한국의 동진을 방문하였고 서로 많은 의견을 교환하였는데 마지막 기계 가격조건에서 많은 차이를 느낀 내 파트너는 합자를 제의했고 그것도 동진의 사정으로 성사되지 못하게 되어 아쉽게도 파트너가 구매를 포기하게 되었다.

 

당시 내 파트너에게 제시하였던 가격 조건은 USD730,000,CIF,HCMC,COMM5%조건에서 NEGO하여 최종 USD680,000까지 제안하였었다. 결제조건은 계약과 동시에 40% 선적 시 40% 설치 시운전 후 20%로 분할 입금하는 조건이었다. 당시 나는 기계의 성능과 기술수준을 잘 모르는 가운데 동진을 믿고 가격의 NEGO에만 신경을 썼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 계약을 하지 않았던 것이 모두를 위해 다행이다라고 판단이 선다.

 

왜냐하면 내가 대학 동기 동창생인 AP의 LJG 사장에게 동진와이어패널의 시공대리점 계약 건을 알선하고 성사시키고 난 직후였다. 기계 및 시공영업에 전문가인 JSO 이사가 DJ을 사직하고 2003년 1월부로 내 소개로 AP에 영입을 하면서 DJ의 숨은 뒷얘기들을 자세히 들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DJ의 현재 기계의 기술적 한계와 제품의 문제점 경영층의 비합리적인 조직관리 각 경영자의 관리능력 등 문제가 많은 회사 경영 시스템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해외 수출능력이 전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더 이상 DJ과 업무적으로 얽히는 일을 만들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또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2004년 1월 2일에 DJ으로부터 기계수출에 대한 수출업무 지원요청을 전격적으로 받고 나니 딱히 거절할 수도 없고 또 DJ가 처한 입장과 상황을 미루어 볼 때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대로 협조하고 협조한 만큼 수수료를 받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처음부터 난항이 기다리고 있었다.

 

DJ는 운영자금이 고갈된 상태였다. 하청업체를 가동시키기 위한 기초자금도 거의 없어서 HMS 부사장은 심적인 부담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2003년 여름부터 여주공장의 낡은 기계로 인해 제품의 생산성과 불량문제로 고민 끝에 기계를 새로 제작을 해 왔고 모든 자금을 동원하여 겨우 국내 기계를 완성한 시점이었다. two pole system으로 생산 capa가 기존 기계보다 2배 가까이 되고 불량율이 대폭 감소하여 최신형이라고 하면서 부사장 이야기로는 Y억 이상 투자가 되었다고 했다.

 

그 와중에 베트남의 수출계약이 갑자기 성사되고 협상에서 밀려나 선수금을 한푼도 받지 못하고 L/C조건으로 계약이 되고 가격도 무려 1억 이상 nego를 해 주어서 매우 불리한 여건에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착수금(선금)이 없이 부품을 사고 가공하고 하려니 어느 하청업체라고 기꺼이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더욱이 최근에 유가 인상과 철값, 스텐레스가격 등 모든 원자재가격이 폭등하고 있어서 그 어려움은 매우 컸다.

 

그래서 나는 기계 수출계약서와 L/C를 근거로 수출보험공사에서 보증을 받아 선적 전에 자금을 얻기로 계획을 세웠다(최소 3억 5천만원을 2월 말까지 대출을 받는 계획). 나는 수출보험공사를 무작정 찾아가서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고 방법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중요한 포인트는 DJ가 국내 유일한 동 기계 제작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해외에서도 이를 인정하여 첫 수출 오더를 받게 되었다는 점과 베트남 바이어인 SONG THAN 공단이사장인 SONG THAN CORP.회장이 베트남의 큰 건설회사를 가지고 있고 자금력이 우수한 업체라는 이야기 그리고 내가 수출 경험이 많아서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점 등을 차분히 설명했다. 제반 서류를 넣고 기다렸는데 시간이 자꾸 흐르고 자금이 확보될 것으로 생각했던 2월 말이 되었다. 그 와중에 보험공사 담당과장이 바뀌었다. 새로 시작하는 식으로 다시 찾아가서 설명하고 부탁을 하였고 기간이 경과하면서 이미 기대했던 2월말이 되었지만 현장 실사도 나오지 않고 베트남 바이어회사의 신용조사결과가 나올 때 까지 기다리자라고 해서 약 14일이 그냥 지나가고 있었다. 회사가 매우 힘들어 지기 시작했다 하청업체들은 수시로 중도금을 요구했고 부사장은 이들을 조금만 기다리면 자금이 나오니 걱정하지 말라고 달래가면서 작업을 끌고 나갔다. 나는 수시로 보험공사 담당과장에게 전화하거나 방문하여 차라리 현장(여주공장과 기계조립공장)실사를 하면 확신이 생기지 않겠냐고 하여 겨우 날을 잡고 강남지점본부장과 담당과장이 여주공장을 방문할 수 있었고 그 2일 후 즉 3월 10일 원하는 금액 3억 5천만원을 대출 받을 수 있었다.

 

그 동안 베트남에 4명(사장, 신규투자팀장, 전기기사 기계기사)를 초청하기 위해 초청장 신원보증서 등을 작성하여 변호사 공증을 받아 베트남으로 보냈고 3월 1일 4명의 바이어회사 임직원을 인천공항에서 맞이할 수 있었다. 이들을 일주일간 부사장과 함께 이끌고 필요한 미팅을 arrange하고 대접하고 공장방문 시키고 각종 지원 협조를 하였다. 통역과 업무조정 및 업무지원 등으로 하루 해가 짧았다. 생각보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강행군이었다. 그러나 바이어에 대한 최선의 배려와 예우가 요구되었다. 베트남에서는 굴지의 회사이고

장차 기계 3대를 추가로 발주할 업체임을 고려할 때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2명의 기사는 여주공장에 배치하여 기계에 대한 이해와 운전요령 등을 익히도록 하며 바이어가 요구했던 부수적인 협조요청사항도 충실하게 지원을 해 주었다.

 

KCC 내화sheet, Galvanized Wire, Roofing Material, Styrofoam Machine, 건설 중장비, 레미컨 트럭 등의 견적을 내게 요청하였고 나는 짬짬이 시간을 할애하여 최선을 다해 견적수집 및 제공을 하면서 적극 협조하였다. 물론 롯데호텔 투숙, 용인 민속촌 관람,고급요리 대접, 워커힐의 dinner show 관람 등 여가도 즐기도록 해 주었다. 홍삼정을 4개 선물하였다. 기사 2명을 남기고 사장과 팀장은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베트남 간부들이 출국하고 나자 HMS 부사장은 기계 제작 및 조립을 하고 있는 인천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며 기계 제작, 조립, 페인팅 등 과정을 관리하고 나는 동진 사무실과 보험공사 등을 오가며 자금 만들기와 선적을 위한 견적확보 및 서류 작성 등 미리미리 준비를 착실히 하였다. 다시 선적 후 보증(보증한도 : USD450,000)을 얻기 위해 서류제출을 하였고 기계조립 현장인 인천 가좌동에 들러서 INSPECTION CERTIFICATE초안을 잡고 수출포장견적을 위해 업체를 이끌고 인천공장에서 회의도 하면서 나름대로 준비를 해 왔다.

 

선적일을 맞추기가 다소 불안하다고 부사장은 조치를 해달하고 하여 선적을 10일 연장하는 것으로 L/C AMEND를 요청하여 AMEND L/C를 받았고 뒤 늦게 제품 두께 사양이 75MM를 L/C에 70MM로 잘못 표기되어 이 또한 AMEND요청을 하였으나 AMEND는 하지 않아도 L/C NEGO시 불일치 크레임을 걸지 않겠다고 확인 FAX를 받아놓았다.

 

기계의 조립과 도색작업 그리고 시운전 등을 위해 인천 가좌동에 MS산업(용접기 전문제조업체)이 임차한 기존 공장은 너무 좁아서 20개 이상 되는 기계라인의 파트(아래 참조) 덩어리를 배열할 수도 없는 공간이라서 우선 나무포장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모든 기계를 한  장소에 모아서 널찍하게 포장하고 나중에 트럭에 옮겨 실을 수 있는 별도 공간으로 임차를 해야 할 형편이었다. 인근에 제법 큰 창고를 빌리게 되었다. 면적은 크고 좋았으나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나무포장 할 때 드릴과 펀치를 하는데 필요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 할 수 없이 발전기를 빌리게 되었다(발전기는 3일간 15만원) 그리고 창고 사용비는 8일간 280만원을 주었다. 그리고 엄청난 아래 기계 덩어리들을 창고까지 옮기는데 필요한 트럭과 지게차 비용이 50만원이 들게 되었다. 동진와이어패널의 자체 공장이 크다면 이러 저러한 비용이 추가로 안 들어도 될 터인데 아쉽기만 했다.

(아래)

-          직선기 2대 / 권선기 2대 / 방차통 다이 / 와이어메쉬 기계 / 샤링기 / 밴딩기

-          패널기계(도입부, 팔레트, 대기부, 사침기, 매인패널기계, 패널다이, 상부다이)

-          상부 방차통 및 난간 / 엘리베이터 / 작업 난간대 / 캐비닛 콘트롤박스 2개

-          콘트롤 박스 3개 / 콤프레샤 / 콤프레샤 에어탱크 / 콤프레샤 콘트롤박스

-          잡자재 악세서리 파이프류 공구류 등 무려 270CBM에 40TON 이상이 되었다

개별 자재품목 수가 무려 100종 가까이 되었다.

 

나무 팔레트를 짜고 기계를 올리고 벽을 막고 덮개를 덮는 방식으로 나무포장을 하는데 기본 비용이 일반적으로 60000원/CBM이었지만 후배가 경영하는 SI T&T를 이용하고 포장전문업체인 MS수출포장을 이용하면서 중국 및 베트남 추가오더 시 계속 협력하겠다고 하면서 최저가격으로 실행하기로 해서 약 42000원/CBM으로 끝내기로 했다. 물론 주요전자 부품 및 녹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부품은 알미늄 호일로서 진공포장을 해 주었다. 또한 선적은 기계부품의 사이즈(특히 폭과 높이가 컨테이너에 적입이 될 수 없는 큰 사이즈라서 일반 컨테이너에 넣지 못하고 아예 벌크선에 선적하기로 결정하고 이 사실을 베트남에 미리 통지하고 양해를 구하였다. 그런데 중국으로부터 벌크선의 출발과 항해가 지연되어 부득이 3일의 선적연기를 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창고비가 더 발생되었고(상기 280만원 중 170만원이 추가 4일 보관하는 비용으로 발생함) 모든 일정이 3일 늦어지게 되었다.

 

어쨌든 대망의 제 1호 DJ의 와이어패널 기계가 2004년 4월 7일 on BOARD되었고 4월 8일 L/C에서 요구하는 제반 선적서류 일체를 준비하여 국민은행 여주지점에 NEGO를 신청하게 되었다. 우스운 일화지만 국민은행 여주지점은 근래 주택은행과 통합되면서 지점 내 외환업무 파트가 신규로 조직되었고 지점 발족 이래 첫 L/C를 통지 받은 경우라고 한다. 그것도 USDXY0,000의 큰 금액이니 지점의 담당과장이나 지점장이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선적서류 중 L/C와 상이한 부분인 제품두께 75MM부분이 결국 문제가 되어서 두 기관(국민은행과 수출보험공사)을 설득하다가 원칙론에 부딪쳐서 결국 베트남에 긴급으로 L/C AMEND를 요청하여 처리하고 나서 수출보험공사의 선적 전 보증보험의 만기일인 4월 10일에 간신히 맞추어서 보험공사 대출보증금 3억 5천만원을 무사히 변제할 수가 있었다.

 

1차 USD448,000을 NEGO해서 최우선적으로 수출보험공사 보증금을 갚고 나머지로는 포장비 내륙운임 해상운임 수출면허수수료 해상보험까지는 우선 결제를 하도록 요청하고 그 뒤로는 각 하청업체의 대금을 지급하도록 결제순서를 결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HCS 사장은 최초 투입된 회사 돈부터 회수하는 입장을 취했고 부사장은 그 동안 애쓰면서 결제도 못 받은 하청 제작업체부터 지급해야 다음 기계 제작에도 협력을 얻어낼 수 있다고 하며 서로 의견충돌을 일으켰다. 그러나 결국 내가 객관적으로 HMS 부사장의 입장에 암묵적으로 동의를 하여 부사장 의견대로 결제가 이루어 졌다. 그리고 관리의 편의상 HY정밀(부품가공업체)를 주 납품처로 내세워 구매승인서 방식에 의한 DJ에 총괄하여 납품하는 형식으로 일을 추진하였으므로 HY정밀의 실제 매출(1억 3천만원)과 총 세금계산서 발행금액(5억)과의 차이 금액인 3억7천만원에 대한 부가세 및 종합소득세 부담에 대해 합리적으로 DJ에서 배려해 주어야 한다는 개인적인 의견을 객관적으로 기재하여 부사장에게 건네주었다. 아울러 베트남에 하청업체 기술인력을 인솔하고 가는 부사장에게 현지에서 기술자들의 책임업무추진을 약조하도록 하는 확약서(일종의 각서)를 모두 받아두도록 초안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베트남에 기계 설치 및 시운전 목적으로 기술자를 파견하는데 모두 9명이 파견되는 것으로 결정을 보았다. 물론 계약서에는 단 3명의 수퍼바이저가 약 2주간 파견되기로 되어있지만 각 파트의 기술을 통합조정하기가 까다로운 나머지 전기 2명 프로그램 1명, 기계조립 3명 공압부 1명 정상오 이사, HMS부사장까지 많은 인원이 대거 출장을 가야 하는 점이 아쉽게 생각되어 진다. 차차 기술축적을 통해서 출장인원도 줄이고 기계생산 원가도 절감하고 제작기간도 단축하고 합리화 시킨다면 하는 바람이다.

 

(총평)

처음 시도한 기계수출 건으로서 배운다는 자세로 수출지원을 했다.

포장, 선적, 서류준비, 하청업체 관리 등 많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동진은 이번 기회로 엄청난 축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실수와 시행착오도 많았던 수출 건이다. 가격은 최초 USDZV0,000에서 협상 시 장차 기계를 3대 추가 발주한다는 명목으로 최종 USDXY0,000에 계약이 이루어졌고 계약 당시보다 환율은 무려 70원/$가량 하락했으며 최초 선불을 50% 정도 받고자 했지만 최종 협상에서 100% L/C at sight로 결론이 지어졌다.(환차손 3천9백만원과 철 값이 30% 정도 인상되어서 이 또한 원가 상승으로 작용하였다.) 약 5천만원 가량이 예상보다 이익감소가 난 셈이다.

 

L/C 방식으로 진행하다 보니, 자금확보를 위해 수출보험공사로부터 선적 전 보증보험(3억 5천만원)을 가입했고 선적 후 보증보험(USD450,000)을 얻어내야 했다. 기계의 KEY POINT에 대해 알게 되었고 많은 주변정보를 얻게 되었으며 DJ의 경우엔 부속품의 고급화 안정성 제고 등 기술축적까지 이루게 되었다. 따라서 순 이익율이 낮았지만 엄청난 직, 간접적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 및 베트남 기타 국가에 수출을 할 경우 최소한 7억은 받아야 하고 50% 선금을 받고 나머지를 L/C 방식으로 해야 하고 선적기간까지 LEAD TIME은 최소 100일로 해야 하며

 

기계 부품의 포장은 방청제를 스프레이로 뿌려주고 녹이 우려되는 전자 계측, 프로그램, 소프트웨어 및 주요 기계 부품은 알미늄 호일로서 진공포장을 하고 + WOODEN포장으로 해야 하며 선적은 BULK선으로 해야 하며 인천에서 선적함이 최선이다 그리고 년간 최대 3기를 넘기지 말도록 주문량을 조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확정오더 + 100 DAYS 후 선적

항해일수 + 10~15 DAYS

통관     + 5 DAYS

설치     + 5 DAYS

시운전   + 15 DAYS

TOTAL   140 DAYS 소요되기 때문이다.

 

위 경험을 충분히 살려서 중국과의 계약 시 개선해야 할 부분을 개선하고 또 그에 합당하도록

계약서도 새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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