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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것들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 장충단을 다시 보다

지난 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아 있는데....

외로움을 달래 가면서 돌아서는 장충단 공원


장충단 공원을 다시 만나다.


'조선 최초의 현충원'이라 불리우던 장충단 공원은

원래 군사시설 남소영(南小營)이 있었던 자리,

도성의 남쪽을 수비하는 어영청 소속의 군영이었는데...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 고종은 남소영 자리에 '장충단'을 세우고

왕실을 수호하다 죽은 병사들의 충절을 기리는 곳이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장충단의 제사를 금하고 장충단비를 철거하였으며

1920년대에는 이곳에 수천그루의 벚나무를 심어 공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박문사를 세워 안중근에 의해 살해된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였는데...


광복 후 박문사 등, 일제의 건물들을 모두 헐어내고

버려졌던 장충단 비를 복원하여 세우고

독립운동가 이준 열사, 유관순 열사의 동상과

3.1운동 기념탑,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김용환 지사 동상,

이한응 선생비,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를 세우고

수표교를 옮겨 설치하고 주변을 잘 다듬어

역사와 문화의 공간이 된 것이다.






장충정





장충단













수표교






순국열사 이한응 선생 기념비

1905년 4월 을사늑약을 앞두고 영국정부에 조선구국을 위해 협조해 달라고 청원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음독 자살하였고 을사늑약 후 고종이 이한응을 순국열사로 추대하였다.





이준 열사 동상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1919년 137명의 서명을 담은 서한을 가지고 유림대표 김규식은 파리평의회에 일본침략을 폭로하고 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제출하였다.














이한응 순국열사 기념비 앞에서






수표교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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