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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것들

덕수궁 project

1593년 임진왜란으로 피신을 갔던 선조가 서울로 돌아와 거처하면서 처음 궁의 역사가 시작된

덕수궁은 광해군 시대에 창덕궁을 지어 거처를 옮기면서 '경운궁'이라는 이름이 주어졌고 별궁으로 사용을 하게 되었다. 인조가 즉위한 궁이기도 하다.

고종이 아관파천 후 경운궁으로 돌아온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하면서 황궁으로 다시

거듭났다.

당시 경운궁 주변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대사관 등이 위치하여 활발한 국제외교를

펼치고 혹시 모를 위험이 닥치면 외국의 협조와 보호를 얻기가 용이한 경운궁을 황궁으로 정하였으며,

특히 고종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경복궁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고 한다.

 

독립국의 위용을 드높이고 대한제국의 기치를 세우고자 하였으나 일제의 강력한 저지에 의하여 고종은

황제자리를 강제 양위한 후 1919년 덕수궁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1907년 고종이 퇴위하면서 선황제의 거처가 되어 덕수궁으로 불리었지만...

한일합방 후 일제는 덕수궁을 침해하고 궁의 기능을 없애버리고 공원과 미술관으로 변조하였다.

 

이 파란만장한 사건의 현장인 덕수궁 곳곳에 한국 현대미술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각종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어 시간을 내서 찿아 보았다.

 

 

 

 

 

연 못

 

 

 

 

 

 

 

 

 함녕전 - 고종의 거처로서 고종이 살았던 이곳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도배하고 보료 3채를 깔았다.

 고종황제가 마치 살아계신 듯 온기가 느껴진다.

 

 

 

 

 함녕전 - 1897년 고종의 침전으로 지어졌다. 1919년 이 곳에서 고종은 붕어하셨다.

 

 

 

 

 

 덕홍전 - 편전으로서 원래 명성왕후의 신주를 모시는 혼전인 경효전이었으나 한일합방 후 개조하여

 덕홍전으로 부르고 일본통치자의 접견장소로 변형시켰다.

 

 

 

작가 하지훈(가구디자이너)는 덕홍전 바닥에 크롬 도장이 된 좌식 의자를 가득 설치하였다.

동양과 서양의 만남,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여 생성되는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특별한 퍼포먼스다.

 

 

 

 석어당 -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피신을 갔다가 1593년 돌아와 이 곳에 머물면서 궁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1608년 선조가 석어당에서 붕어하였고. 광해군 시대에는 인목대비가 이곳에서 약 5년간 유폐되었다.

 

 

 

 소박한 건물에 눈부신 눈물 한 방울을 설치하여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삶을 꾸려갔던 수많은 궁궐 속

 여인들의 운명을 표상한다.

 

 

 

 석어당의 방들을 아름답고 여성적인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개화기 가구와 공예품을 배치하여 행복했던 덕혜옹주의 한 시절을 되돌리려는 듯, 아련한 기억과 향수를

 이끌어낸다.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석어당의 희로애락을 보는 듯....

 

 

 

 오래된 건물과 근대 석조건물의 조화

 

 

 

 살짝 가을 빛이 물들어 가는 덕수궁 후원

 

 

 

 덕수궁과 멀리 보이는 시청앞 빌딩의 공존

 

 

 

 미술관 앞 분수대 옆엔 오래된 멋진 목백일홍 두 그루가 아직도 빨간 꽃을 가득 달고 품위를 보여주고 있다.

 

 

 

 

 

 

 

 

             목백일홍의 화사함

 

 

 

 미술관 앞 분수대와 목백일홍 나무

 

 

 

            해시계

 

 

 

 분수대 앞에서

 

 

 

 중화전 - 경운궁의 정전(正殿),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건물

 

 

 근대조선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 덕수궁의 대한 이야기를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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