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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것들

주택가격 아직도 비싼가?

집값 떨어져서 재미 좀 보셨습니까?

 

  요즈음 경제 분야의 화두는 단연 집값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집값은 속절없이 떨어졌고 한동안 이어지던 지방 부동산시장의 온기도 어느새 식어 버린 느낌이다. ‘하우스 푸어’ ‘깡통주택’ 등의 신조어가 속출하는 것만 봐도 부동산시장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유럽 재정 위기 등으로 가뜩이나 위축된 경제의 숨통을 침체된 부동산 경기가 짓누르는 형국이다.

  
대통령선거를 눈앞에 두고 ‘표심’을 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는 정치권으로서는 물실호기(勿失好機)가 아닐 수 없다. 하우스 푸어의 주택 지분을 정부가 떠안거나 배드뱅크 같은 기구를 만들어 공적 재원을 투입하자는 등 각종 의견을 쏟아낸다. 마치 묘책이라도 되는 양 포장하고 있지만 실은 대규모 재정 투입이 전제되는 무책임한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 대부분이다.

  
기준이 다양하므로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려우나 서울의 집값은 2006년 말~2007년 초에 고점을 찍은 이래 대략 20% 안팎으로 내렸다는 게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일부 수도권 신도시를 비롯해 지역에 따라서는 하락폭이 30%를 훨씬 넘는 곳도 적지 않다. 평수가 크고 비쌀수록 타격이 더 크고 그래도 수요가 있는 소형은 한결 덜하다.

  
그렇다면 질문 하나 해 보자. 지금 집값은 충분히 내린 상태인가, 아니면 아직도 비싼 편인가? 주변에는 집값이 너무 떨어졌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더 내려야 한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하우스 푸어 대책을 놓고도 말들이 많다. 한쪽에서는 ‘렌트 푸어’와의 형평성에 어긋날뿐더러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나라 재정을 거덜 낼 것이라고 비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부동산시장의 침체를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경제 전체가 무너진다고 경고한다.

  
이 대목에서 어느 쪽이 옳고 그르고를 굳이 따질 마음은 없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집값이 계속 떨어진다고 해서 집 없는 사람이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주택 매매에서 전세로 수요가 대거 몰려 전셋값이 치솟고 기존의 전세는 월세로 돌아서는 바람에 서민들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부터가 그렇다.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다.

  
가격이 더 내릴 것으로 보고 집들을 사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른바 ‘깡통전세’가 속출해 서민의 주거생활을 뿌리째 위협하고 있다. 집값이 계속 떨어져 애초에 계약한 전세금을 밑도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전세물건 기근으로 인해 아예 계약할 때부터 전세금을 매매가보다 높게 책정하는 황당한 모습도 연출되고 있다. 경위야 어쨌든 집값이 더 내리면 자칫 세입자가 전세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돌려받지 못하는 최악의 사태로 내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국면이다. 집값 하락으로 집 없는 사람이 재미를 보기는커녕 더 고통스러워진다는 얘기다.

  
내 집 장만은 모든 서민의 지극히 소박한 꿈이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전에는 돈이 부족하면 융자받거나 전세 끼고 사는 게 당연시됐지만 집값이 하락세인 지금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뿐이다. 이제 와서 은행 돈 빌려 집 산 사람들을 모두 투기꾼으로 매도하는 시각은 온당하지 않다고 본다. 지금은 모두 머리를 맞대고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올바른 처방을 내놓을 때이지 책임 소재나 따질 한가한 계제가 아니다.

  
집값이 아직도 비싸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대졸 직장인이 몇 년치 월급을 한 푼 안 쓰고 고스란히 모아야 서울 변두리의 조그만 아파트 하나 겨우 살 수 있다면 비싸다고 하는 게 맞다.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부동산 투기가 성실한 국민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리며 국가 경제를 왜곡시키곤 했고 ‘투기 광풍’으로 나라가 온통 난리였던 게 불과 5~6년 전이라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부동산 거래의 숨통을 틔워야 한다. 경제의 활력을 다소나마 되찾고 서민들 주거를 안정시키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하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어려울 게 없다. 그저 버티기만 하면 된다. 급매물이 나와도 서민은 돈이 없고 설령 있어도 집을 사려는 분위기가 아니다. 서민은 싼 집이 나와도 살 기회를 놓치고 대부분 부자들 차지로 돌아갈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의 대책이 좀 더 치밀하지 못한 것은 아쉬우나 그나마 어렵사리 마련한 취득세와 양도소득세 감면안을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가 ‘부자 감세는 안 된다’며 반대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다. 말로는 서민을 위한다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들을 더욱더 곤경에 몰아넣을 뿐이라는 역설적 사실에는 눈감고 있으니 말이다.

  
국민이 재산의 80%를 부동산에 묻어 두고 있는 나라에서 부동산이 무너지면 가계든, 기업이든, 금융이든 모두 결딴날 수밖에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참여정부 초기의 카드대란과는 비교도 안 되는 부동산대란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지금은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볼 때다.

 

 

 

이도선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편집위원, 운영위원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전) 연합뉴스 논설실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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