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즈이야기

재벌 때리기 유감


재벌 때리기 유감

 

  요즈음 재벌 때리기가 대유행이다. 전에는 일부 진보적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대학생 등에

국한돼 있었지만 지금은 여야와 보수·진보를 가릴 것 없이 사회에서 행세 꽤나 한다는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나서서 재벌 혼내는 맛을 만끽하는 분위기다. 보수적이라는 한나라당도 재벌들을

질타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심지어 청와대마저 재벌 때리기에 가세하는 모양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얼마 전 방송 인터뷰에서 대기업에 연상되는 단어를 ‘착취’라고 했다가

논란이 일자 “연상퀴즈 하듯 갑자기 질문했다. 미리 생각했으면 ‘책임’이라고 했을 것”이라며

한 발짝 뺐다. 그러나 홍 대표가 최고위원이던 1년 전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착취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다”고 말한 것을 보면 전혀 맘에 없는 얘기 같지는 않아 보인다.

굳이 홍 대표가 아니라도 요즘 여권에는 반(反)재벌 정서가 넘쳐흐른다. 원내대표와 정책위 의장,

최고위원 등이 저마다 회초리를 들고 나서니 누가 여당이고 누가 야당인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는 합법을 가장한

지하경제이고 어찌 보면 변칙 부당거래”라고 규정하고 “세법의 대원칙은 소득이 있으면 실질

과세를 하는 것”이라며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과세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앞서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은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문제를 들고 나와 ‘청와대가 재계 길들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게 ‘경제 대통령’을 표방하며 대선 사상

최대의 표차로 압승을 거둔 이명박 대통령 정부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정치권에는 늘 기가 죽어지내는 재계도 이번만큼은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고 일전을

불사할 태세다. 재계의 수장인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선거를 앞두고 쏟아지고

있는 포퓰리즘성 정책에 대해서는 재계 의견을 제대로 내겠다”며 정면으로 맞받아치고 나왔다.

평소 과묵한 편인 허 회장은 재계에 불리하거나 잘못됐다고 판단되는 정책에 대해서는 청와대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상대를 가리지 않고 할 말을 쏟아 냈다. 감세 철회, 반값 등록금, 동반 성장

등이 그가 ‘시장경제’의 원리에 어긋난다고 규정한 정책들이다.

  이 정도면 가히 ‘정치권-재계 전쟁’이라 할 만하다. 상황은 앞으로 더 꼬일 가능성이 크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권은 서민을 앞세워 대기업을 때리는

이른바 ‘표플리즘’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재계는 재계대로 자기 것 지키겠다고 필사적으로 맞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필자 역시 재벌 때리기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 ‘지은 죄’가 너무 큰 탓이다.

고작 몇 십억 원으로 차린 회사를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로 한껏 키운 뒤 상장하는 수법으로 불과

몇 년 만에 몇 조 원씩 챙기는 것은 그네들이 말하는 시장경제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저 변칙적인 상속과 증여에 의한 탈세, 즉 범죄행위일 뿐이다. 기업 키우기가 이보다 손쉬울

수 없다.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다. 이런 식이라면 정치권의 공세에 포퓰리즘 성격이

농후하다고 해서 ‘없던 일’로 돌릴 수 없다.

  재벌이 시장경제를 외치려면 자신부터 시장경제의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 중소기업이든

영세기업이든 거침없이 쓰러뜨리며 시장경제를 내세워서야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비아냥이나

듣기 딱 알맞다. 지난날 인허가와 자금 등에서 온갖 특혜를 누린 끝에 이만큼 컸으면 이젠 품격을

생각해야 한다. 아직도 변칙과 탈법의 ‘달콤한 맛’을 버리지 못한다면 재벌답지 못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2세, 3세에게 국가와 민족을 앞세우는 기업가정신을 물려줄 생각은 안 하고 고작

빵집, 치킨집, 떡볶이집이나 내주고 외제차와 명품 핸드백 수입에 열 올리게 하는 것도 재벌답지

못하기는 매한가지다. 대한민국 경제를 세계 10위권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인 재계에 쓴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외국에 나가면 현지 공항에 내릴 때부터, 그리고 시내로 들어갈 때에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흐뭇함을 경험하곤 한다. 공항 카트에서부터 시작해 길거리 간판과 ‘made in Korea’ 제품에

이르기까지 우리 기업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이렇게

훌륭한 우리 기업들이 왜 정작 안방에서는 국민의 공분을 사는 ‘찬밥’ 신세로 전락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온 나라가 기업 때리기에 매몰돼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제의 심장부인 기업의

위축은 곧 국민경제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전히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는 정치가 이미 세계 일류 대열에 오른 기업들 발목을 계속 붙잡고 늘어지는 것도

결코 국가 발전에 도움 되는 일은 아니다. 재계든, 정치권이든, 지금은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품격을 되찾을 수 있는가를 냉정하게 돌이켜볼 때다. 우리도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존경할 수 있는 기업인이 많았으면 좋겠다.
 
(※ 이 칼럼은 선사연 이도선 운영위원이 월간 마이더스에 오늘(2011.07.21) 기고한 내용입니다.)


   

필자소개

 

   이도선 ( yds@yna.co.kr )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지사장)
    (전) 연합뉴스 논설실장
    (현)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현)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편집위원, 운영위원
   

 

 

 

 

 

 

 

'비즈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생 PET chip   (0) 2011.07.26
학력주의 파괴 확산을 기대하며  (0) 2011.07.26
미국 부채한도 증액   (0) 2011.07.19
생각보다 가까이  (0) 2011.07.15
공생과 경쟁  (0) 2011.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