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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것들

동네이름의 기원

가락동 :

가락동의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원래 가락골이 있은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추정됩니다.
또 을축년(1925년) 대홍수때 한강이 범람하여 송파동 일대가 침수되자, 그 곳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가히 살만한 땅' 즉 좋은 땅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가회동 :

조선초기에 한성부를 5부 52방으로 구획을 나누었을 때 북부 10방 중의 하나였던 가회방(嘉會坊)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길음동 : 

길음동은 기리묵골을 한자음으로 고쳐쓴 데서 연유되었는데 기리묵골은 의정부 방면에서 도성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미아리고개의 북쪽에 있는 마을로 의정부쪽에서 도성쪽으로 넘어오는 이 고개는 경사가 완만하고 또 정릉천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골짜기가 길게 형성되었고 골짜기가 길게 놓여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기리묵골 또는 기레미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또한 이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아주 맑고 고와서 물소리를 들으면 저절로 기분이 맑아지므로 좋은 노래소리가 들리는 동네라는 뜻으로 길음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낙원동 :

조선시대부터 이 곳에 원동(園洞)이라는 마을 명칭이 있었던 데다, 시내 중앙의 낙원지라 할 만한 탑골공원이 위치하고 있으므로, 여기에 '낙(樂)'자를 덧붙여 이름한 것입니다.

 

 

묵동 :

옛날 이곳에서 먹을 제조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국립여관인 송계원이 있었기 때문에 송계동이라고도 했었습니다

 

 

미아동 :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되너미고개(돈암현)를 일명 미아리고개라고 불렀기 때문에 고개 이름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는 설과 미아 7동에 있는 불당골에 미아사가 오랫동안 있었으므로 이 절 이름에서 동명이 유래 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언덕이 많다는 뜻

 

 

번동 :

고려 시대에 씌여진 '운관비기'3라는 책에 "이씨(李氏)가 한양에 도읍하리라"는 비밀스런 기록이 있어, 고려 말기의 왕과 중신들이 이 설에 따라 경계를 하던 중, 한양 삼각산 아래 이곳에 오얏나무(李)가 무성하다는 말을 듣고 이씨(李氏)가 흥할 징조라 여겨 오얏나무를 베기 위해 벌리사를 보냈는데 그때부터 이곳을 벌리(伐里)라 부르다가 번리(樊里)가 되었다고 합니다.

 

 

삼청동 :

옛날 이곳에 도교의 태청(太淸)ㆍ상청(上淸)ㆍ옥청(玉淸) 3위를 모신 삼청전(三淸殿)이 있었던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는가 하면 이 곳에 들어오면 산도 맑고, 물고 맑고, 사람의 마음마저 맑아지기 때문에, 세가지가 맑다는 뜻에서 삼청(三淸)이라 했다고도 합니다.

 

 

상계동 :

상계동은 원터, 간촌, 당고개, 온숫골, 갈월, 샛말 등의 마을이 한천(漢川)의 윗쪽에 위치하여 윗 상(上)자에 시내 계(溪)자를 붙여 지어진 것입니다.

 

 

쌍문동 :

쌍문동에 살고 있던 계성과 그 부인이 이름모를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이 부모가 살아계실 때 정성껏 모시지 못했다고 후회하면서 부모의 묘 앞에 움집을 짓고 여러해 살다가 죽자, 마을사람들이 그 아들의 효성을 지극히 여겨 그의 묘 근처에 효자문 2개를 세워서 쌍문이라 하였습니다.

 

 

안암동 :

안암동 3가에 있는 대광 아파트단지 가운데에 큰 바위가 있어 20여명이 앉아 편히 쉴만한 바위 이름이 앉을 바위라 하였는데 한자로 안암으로 옮겨쓴 것이 동명의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압구정동 :

압구정동이라는 동명은 이곳에 조선 세조때 한명회의 '압구정'이라는 정자가 있었기 때문에 불여진 이름입니다. 원래 압구는 한명회의 호로서 "세상일 다 버리고 강가에서 살며 갈매기와 아주 친하게 지낸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이동 :

동네 뒤에 있는 삼각산 봉우리 중에 소 귀 같이 보이는 봉우리가 있으므로 소귀봉 즉 우이봉 아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전해집니다.

 

 

전농동 :

청량리역 뒤쪽에 위치한 전농동은 조선시대 초부터 농업을 중시하여 국왕의 직접 농사를 지었던 적전(籍田) (일명 전농(典農) )이 있었기 때문에 전농리(典農里)라 불리었다가 전농동이 되었습니다.

 

 

종암동 :

고려대학교 뒷산에 종 또는 북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한문으로 고암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창동 :

창동의 유래는 조선시대에 양곡창고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평창동 :

선혜청의 평창(平倉)과 총융청의 평창(平倉) 등 2개의 창고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선혜청은 대동법의 실시에 따라 대동미와 포전의 출납을 맡았던 관청이며, 평창(平倉)은 이 선혜청의 여러 창고 중의 하나로 대동미를 보관하였던 곳입니다.

 

 

회기동 :

조선시대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묘소인 회기(懷墓)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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