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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이야기

미국 어떻게 될 것인가 - 세가지 시나리오

시나리오 1‘팍스 달러리엄’ 무너져 내리는 중
‘큰손’ 중국·러시아, 강력 라이벌 부상

현재 첫 번째 시나리오는 로마제국이 멸망한 원인과 맞물리면서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로마의 멸망 원인은 설이 구구하다. 그중에서도 은본위제 포기와 금본위제 훼손에 따른 화폐 문제가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로마의 네로 황제는 식민지와의 무역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은 함유량을 조절해 은화를 평가절하했다.
이때부터 은 함유량은 지속적으로 줄어 로마의 경제를 심각하게 훼손시켰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금화를 기축통화로 삼았으나 채굴량 부족 등으로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이에 따라 중산층이 몰락하고 경제가 붕괴되면서 로마는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

영국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1737~1794)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로마가 멸망한 것은 가정의 굴뚝에서 연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제국의 몰락이 가정붕괴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로마의 가계(household)들은 화폐가치 하락에 따른 소득감소로 어려움을 겪었다. 가계는 사회의 가장 작은 구성단위임과 동시에 국민경제의 핵심 경제주체 중 하나다. 따라서 건강한 가계는 부강한 국민경제의 초석(礎石)이다. 미국도 이와 비슷한 처지에 몰려 있다. 서브프라임모기지의 부실로 많은 미국 가정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금융위기는 실물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미국 경기침체 징후는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8월 산업생산은 전달에 비해 1.1% 감소해 2005년 9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기업 활동이 둔화되고 실업이 늘면서 개인의 소득이 줄고 소비지출도 감소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달러화 주도의 세계경제 질서인 ‘팍스 달러리엄(Pax dollarium)’이 무너지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미국 상품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달러화 시대의 종료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고 진단했다. 미국은 그동안 막강한 달러화 자본과 월가의 첨단 금융공학을 바탕으로 세계 경제의 ‘지존’으로 군림해 왔다.

하지만 미국의 금융위기가 확산되자 세계 경제질서의 중심이 미국에서 유럽과 아시아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들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막대한 구제금융 비용이 가뜩이나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에 추가될 것이며, 누군가로부터 자금을 끌어와야 한다”면서 “가장 큰손은 중국·러시아·걸프 국가들이며 이들은 라이벌이지 동맹국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루비니 교수는 또 “미국은 이번 위기를 어떻게 해서든 넘길 것으로 보이지만, 세계에서 다른 위치를 차지하는 다른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라면서 “미국이라는 제국의 종말이 시작되는 것일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시나리오 2

금융위기로 인한 美 쇠퇴론은 과장
미국 대체할 강력한 리더 아직 없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현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지위를 상실시키지 않을 뿐더러 미국의 군사력은 미래에도 우월적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미국의 시대’의 저자인 로버트 리버 조지타운대 교수는 “이번 금융위기로 미국의 쇠퇴를 주장하는 이들은 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리버 교수는 “압도적 군사력, 시장규모와 생산성 등 실체적 요인뿐 아니라 미 경제 구조의 유연성과 경제회복 능력은 수퍼파워의 지위를 유지시키는 요인”이라면서 “국제질서는 우세한 쪽에 편승하는 ‘밴드왜건(bandwagon) 효과’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며 여전히 미국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의 로빈 니블렛 소장도 “미국의 쇠퇴가 부시 행정부 말기 들어 급속화하고 있지만, 미국의 쇠퇴는 구조적 현상이기보다는 단기적 현상이며 미국을 대체할 다른 국가들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폴 케네디 미국 예일대 교수도 “미국의 쇠퇴는 있겠지만 당장 급격하게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케네디 교수는 “20세기에 중흥을 꾀하다 몰락한 나치 독일과 일본, 옛소련의 경우는 급부상한 국력을 받쳐줄 만한 체계가 없었다”면서 “미국은 이들과 달리 하룻밤 사이에 모래가 될 제국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케네디 교수는“구조적으로 미국이 기울어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완전한 주도권 이전 시기는 아직 멀었다”면서 “역사상 막강하던 대국들은 그 힘을 뒷받침할 만한 체계가 있었고, 아직 미국에서 그 체계는 무너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도 “일각에서는 미국이 제국의 촉수를 과도하게 뻗쳐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하지만 이는 잘못된 예측”이라고 단언했다. 리 전 총리는 “미국은 정보통신(IT)혁명에서 목격할 수 있듯 수차례 자신을 혁신하는 능력을 보여주었고, 유럽처럼 과도한 사회보장의 부담도 지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 50년 동안 미국은 경제와 과학을 선도하면서 세계의 주역으로 활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은 여전히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GDP(국내총생산)는 13조8112억달러로 세계 총 GDP의 25.4%를 차지했다. 2위인 일본(4조3767억달러)의 3배나 된다. 미국의 국방예산은 전세계 군사 지출의 50%나 된다. 또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비 등에서 아직 어느 국가도 미국을 따라오기는 힘들다.

시나리오 3


위기 불구하고 당분간은 수퍼파워 유지
다만 국제정치·경제적 영향력은 급락할 것



마지막 시나리오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 강대국의 부상으로 미국의 수퍼파워가 분산되거나 미국의 쇠퇴를 대체할 국제기구나 국가가 없는 한 잠정적으론 기존의 수퍼파워가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이다. 영국 금융사학자인 니알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거상 : 미국 제국의 흥망(Colossus : The Rise and Fall of the American Empire)’에서 “미국이 정치·군사·경제적 규모 등으로 볼 때 당분간 수퍼파워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리드 자카리아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국제담당 편집인도 “미국이 통계 수치상으로는 하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교육과 창의적 정신, 경제, 젊은 인구 분포도 등 때문에 당분간 수퍼파워의 지위를 계속 누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로선 미국에 맞설 경제권으로 일본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유럽연합(EU),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이 거론된다. 이 중 어떤 경제권도 현재 미국이 누리는 경제패권을 갖지는 못할 것이다. 또 군사력 측면에서 볼 때도 미국에 단독으로 도전할 국가는 없다. 때문에 미국의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 미국의 국제 정치 및 경제적 영향력이 현저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자칫하면 미국의 지위는 급전직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달러화가 유로화, 엔화, 위안화와 함께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나눠 가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어느 시나리오가 맞을지 여부는 미지수이지만 미국 차기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위상을 복원하는 것이 될 것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차기 대통령은 위기에 봉착한 ‘미국’이라는 브랜드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민주당의 배럭 오바마 후보나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인 것만은 틀림없다는 것이다.


| 미국과 로마의 유사점 |


미국 시민권, 도시국가인 로마 시민권서 유래
 美 국회의사당 ‘캐피털 힐’은 로마 신전의 이름


미국과 로마제국은 유사한 측면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의미하는‘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라는 용어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에서 따온 말이다. 미국 국적을 ‘미국 시민권’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도시국가였던 로마의 시민권 개념에서 유래한 것이다. 미국 의회의사당을 뜻하는 ‘캐피털 힐(Capitol Hill)’은 로마 집정관의 취임식이 열리는 신전 ‘캐피토리노(Capitolino)’에서 따온 것이다. 상원을 가리키는 ‘세너트(Senate)’는 로마의 원로원(Senatus)을 뜻한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페터 벤더는 저서 ‘제국의 부활’에서 로마와 미국이라는 두 제국은 수립과정부터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로마는 이집트, 마케도니아, 시리아 등 헬레니즘 강대국들이 경쟁으로 쇠약해지는 틈을 타 세력을 확보했고, 미국은 1, 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강대국들이 몰락한 사이에 헤게모니를 잡았다. 두 제국은 협상을 통한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통한 평화를 선택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컬런 머피 전 시사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 편집장은 “두 제국은 광대한 영토와 여러 인종으로 구성됐다는 점에서도 닮았다”면서 “두 제국은 모두 선과 악의 대결구도에서 자신을 ‘구세주’로 여기고, 국경 너머로 너무 뻗어나간 나머지 내부에서 여러 위기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