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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야기

선배님의 딸 사랑 - 윤주 시집가던 날

선배님
 
아버지의 애틋하신 딸 사랑이 깊이 묻어나오는 담백한 글을 읽고 잔잔한 감동이 밀려 옵니다.
윤주양은 아버지의 깊고 따뜻한 사랑을 몸과 마음으로 느껴왔을 것이므로
새삼 걱정하지 않으셔도 효녀이며 아름다운 신부일 것 같습니다.
 
저는 아들만 둘이라서
딸을 키우고 시집을 보내시는 분들의 애틋함을 깊이 느끼진 못하지만 알 것 같습니다.
선배님과 형수님 편안하고 건강하신 생활과
새 출발하는 윤주양과 새 가정의 행복과 건강을 빕니다.
 
안녕히 계세요.

황득수 드림

> From: choigreg@hotmail.com
> To: nayjya@hotmail.com
> Subject: 윤주 를 시집 보내고...09272008
> Date: Tue, 30 Sep 2008 01:13:50 +0000

 
윤주 시집가던 날,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웨딩마치도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고 축하객들의 선망의 눈길도 보이지 않았다.

당당하게 걸어간 신랑은 주례신부님 앞에서 돌아서더니 긴장 반 설렘 반의 표정으로 우리 부녀를 바라보고 서 있었고, 군대 ROTC 동기생인 이영찬 신부님 도 우리 부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신부 입장!" 사회자의 힘찬 구령이 떨어지자 나는 천사처럼 곱게 웨딩드레스를 차려입은 윤주 의 손을 잡고 발을 내딛었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 그런데 내가 걸음이 빨라서 너무 빨리 걷는다는 속삭임이 하객들틈에서 들리기에 중간쯤에서 걸음의 속도를 늦추었다. 입구에서 신랑이 기다리는 곳까지의 거리는 아주 가까운데도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딸아이의 손을 신랑에게 넘겨주기까지 28년 세월. 윤주 의 손을 잡고 한 발 한 발 걸으면서 딸아이가 태어나서 결혼하기까지 온갖 추억의 파노라마가 내 머릿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딸아이의 아름답고 자랑스런 모습들이 잇따라 떠올랐다. 신혼 의 단꿈을 뒤로하고 결혼 3개월만에 홀로 미국지점으로 발령받아 떠나오면서 그때에 아내 에게는 이미 윤주 가 새생명 으로 임신이 되어 있었다. 아내는 남편이 곁에 없는 시댁에서 지내면서 80년 9월 11일 윤주 를 16시간 의 산고 끝에 출산을 하였고 81년 7월 아내 와 생후 10개월 된 윤주 가 뉴욕 JF Kennedy 공항에 도착해서의 첫만남 은 황홀함 이었다. 색동옷을 입은 윤주를 품에 안고 돌잔치 를 하던 뉴져지 의 생활이며, 구정 중학교 3학년 때 미술공부 를 하겠다며 서울예고 에 진학하기위해 밤늦게 까지 미술학원 을 마치고 나면 승용차로 데려오던 일, 예고 다니던 시절 학교에서 전시했던 무거운 돌조각품 을 낑낑대며 차에 싣고 오던일, 관악산 기슭 서울대학교 에 시험 치루러 데리고 가던날의 모습, 서울에서 대학졸업하던날 엄마 아빠 가 미국에 살고 있기에 쓸쓸할것 같아 내가 일부로 서울 로 날아가 졸업식에 참석 했던일, 취직이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던 낭랑한 목소리……, 4년전 이곳 미국에 와서 버뱅크 골프장 우회도로 로 운전연습 을 시키던일. 여태까지 내가 고이 간직하며 보살폈던 그 소중한 보물을 넘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시야가 흐려졌다. 딸아이가 하나 더 있었더라면 이렇게 허전하지는 않았을까. 윤주 가 이런 내 속내를 알기나할까?
 나는 평소 딸에게 다정다감한 아버지 의 역할을 하진 않았다. 그런데 딸아이의 손을 신랑에게 건네주고 나자 정신이 아릿아릿해졌다. 딸을 둔 아버지들이 다 이미 겪었거나 앞으로 겪게 될 일이지만, 내 가슴속에서는 한 줄기 허전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다른 아버지들도 그랬을까. 결혼식이 끝나고 신랑신부 의 행진이 이어지자 그들의 얼굴엔 행복의 미소가 꽃처럼 피어났다. 내 마음은 아랑곳없이.....
 내 딸 윤주 가 마침내 남의 아내, 남의 며느리가 되었구나 싶었다. 말로만 들었던 출가외인(出嫁外人)이란 이야기가 피부에 와 닿았다. 딸아이가 우리 집 울타리를 벗어났다는 상실감이 조금씩 나의 마음을 후비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윤주 의 이름이 우리 집 호적에서도 빠져나가겠지.
 딸아이는 김씨 집안의 맏며느리가 되었다. 훗날 딸아이가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아이들의 성은 '최'씨가 아니라 '김'씨가 될 것이다. 내 며느리들이 아이를 낳으면 '최'씨 성을 물려받게 되는 것처럼.
 여섯 달 남짓 남겨두고 결혼날짜를 잡았다. 그 기간 내내 나는 신랑신부 못지 않게 스스로 몸조심을 해야했다. 신부 아버지가 마라톤 연습을 하다가 행여 부상을 입어 절룩 거리며 결혼식장에 걸어들어가서도 안 될 것 같았고, 질병에 걸려 결혼식장에 나가지 못해도 안 될 일이었다. 예식장에서 신부를 데리고 행진을 해야 할 중요한 몸이기 때문이었다. 결혼준비 기간이 더 길었더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딸아이나 사위가 이런 나의 심정을 헤아리기나 하려는지…….
> 윤주 가 마침내 시집을 갔다. 서른 살을 넘긴 자식들이 결혼을 하지 않아 애태우는 주위의 지인들을 만날 때면 홀가분한 기분이 들다가도 때때로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또 무슨 이유일까. 이게 변덕스런 봄 날씨 같은 아버지로서의 내 마음일까. 문득 아들 없이 딸만 둔 부모들은 얼마나 쓸쓸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할아버지 때 부터 모두 캐돌릭 인 집안에서 가정교육을 잘 받은 사위가 건강하고 심성도 좋으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더구나 내딸 윤주 를 위하고 사랑하는 모습이 마음 한켠으로 흐뭇하다.
 나는 딸아이가 겨울철 안방의 화롯불처럼 언제 어디에서나 따사로운 정으로 온기(溫氣)를 피워 올리고, 가정이나 사회에서 항상 입장을 바꿔 생각할 줄 알며, 어느 곳에서나 늘 웃음 밭을 일굴 줄 아는 그런 여성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 씨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부디 사랑 받는 아내, 귀여움 받는 며느리, 하나 뿐인 시누이로부터도 존경받는 올케 언니 가 되었으면 좋겠다. 윤주는 능히 그럴만한 심성과 자질을 가진 딸이라고 믿어지기는 하지만..... 언젠가 윤주 에게 들려주고 싶어 가슴깊이 고이고이 묻어두었던 그 한 마디를 이제는 해야될 듯싶다.

"윤주야, 사랑한다!" 부디 행복하게 잘살아라.
>

2008년 9월29일 아빠 가.....

Choice Mercantile Corp 최한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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