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친구이야기

간월암과 해미읍성을 둘러보고

 

 

간월도의 간월암은 만조로 바닷길이 없어지고

멀리서 바라다 볼 수 밖에 없다.

항상 건너 다닐 수 있는 아름다운 부교라도 띄어 놓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간월암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겨본다.

 

 

 

 

 

 

 

조업을 마치고 포구에서 정비를 하고 있는 작은 고깃배들

 

 

 

교황님의 방한 때 천주교 순교성지로 소개되었던 해미읍의 해미읍성은

아내의 추천으로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가는 날이 장날,

때마침 해미읍성 축제가 한창이다.

 

 

 

 

 

 

해미읍성에 관하여

 

고려 말부터 많은 피해를 준 왜구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하여 덕산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을 해미로 옮겨1417(조선태종17)부터1421(세종3)까지 축성,

충청도의 전군을 지휘하던 병마절도사영성이다.

 

1652(효종3)년까지 230여 년간 병마절도사영의 기능을 하였으며, 청주로 옮겨간 후

해미현감이 이성에 옮겨와 겸영장이 되면서 해미읍성이 되었다.

호서좌영으로 1895년행정구역 개편 때까지 243년간 내포지방12개 군현의 군권을 지휘했던 곳이다.

 

낮은 산과 평지를 이용하여 쌓은 평산성으로 성곽의 하단은 큰 돌로 쌓고 위로 오를수록

작은 돌을 사용하였는데 안쪽은 흙으로 채웠다. 

성문은 동, , 남 세 곳에만 있고 북에는 암문이 있다.

주 출입구인 진남문은 다듬어진 돌로 된 아치형 홍예문이다.

성 밖에는 해자가 둘러져 있는데 발굴조사를 통해 북쪽해자의 일부를 복원해 놓았으며,

기록에는 성벽위에 여장과 옹성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성곽둘레는 1800m, 높이는 5m로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성 주변에 탱자나무가 심어져

탱자의 한자음을 취한 지성이라고도 한다.

 

이 읍성에는 병마절도사와 겸영장이 집무하던 동헌을 비롯한 관아와 객사 등의 건물이

꽉 들어차 장관이었다고 한다.

1578(선조11)에 이순신 장군이 군관으로 10개월간 근무한 적이 있으며,

조선시대 말기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진남문

 

 

 

 

 

 

 

 

 

 

조선시대 각종 무기 전시

 

 

 

 

 

정원 잔디와 잘 다듬어 가꾼 나무들이 아늑하고 평화롭게 느껴지며

보기에 좋았다.

 

 

 

 

 

회화나무

 

 

 

 

 

 

 

 

 

 

호서좌영

 

 

 

 

 

 

 

 

 

 

호서좌영 내부

 

 

 

 

 

 

성의 북쪽으로 가려면 계단을 이용한다.

 

 

 

 

 

장승동상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17대 이명박 대통령까지 세워두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무호17기 친구들이 17대 이명박 대통령 장승과 함께....

 

 

 

 

 

북측 성곽 위에서 뒤로는 조성한 해자가 보인다.

 

 

 

 

 

키가 크고 몸이 뒤틀어진 소나무가 많이 보인다.

 

 

 

 

 

 

 

 

 

 

 

 

 

 

 

 

 

 

 

 

 

시원한 그늘에서 담소를 즐긴 후

 

 

 

 

 

 

서산 시내에 있는 맛있는 해물요리집에서 저녁을 먹고......

 

하행길은 다소 지체가 되었으나 오히려 서울로 오는 상행선은 막힘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