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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것들

중산층 이야기

과연 누구를 위한 중산층이란 말입니까~?

 

 

  며칠 전 신문을 보던 집사람이 느닷없이 “우리는 중산층에 못 끼네”라고 말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1년에 한 번 이상은 해외여행을 해야 중산층이라는데 우리는 벌써 몇 년이나...”라는 심드렁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만 해도 그저 늘 하는 넋두리인가 보다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나중에 보니 때아닌 중산층 타령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었다. 이른바 ‘중산층 별곡(別曲)’이라나.

  
그래서 기사를 읽고 인터넷도 찾아봤다.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나라 중산층의 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선진국과의 비교다. 그런데 직장인 대상 설문조사 결과라는 우리나라의 중산층 기준이란 게 가관이다. 중산층이라면 ▲부채 없이 30평 이상 아파트 ▲월급 500만 원 이상 ▲2천cc급 중형차 ▲예금 잔액 1억 원 이상 ▲매년 1회 이상 해외여행의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단다.

  
어느 직장인들을 조사했는지는 모르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게 비단 필자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듯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분류에 의하면 소득이 중간 가구의 50~150% 범위에 들어가면 중산층이다. 하지만 중산층 별곡에 제시된 조건을 모두 충족하려면 중산층이 아니라 중상층은 돼야 한다. 이런 식의 기준이 난무하니 대다수 국민이 스스로 가난하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경제연구원의 최근 조사에서 국민의 50.1%는 스스로를 저소득층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산층 별곡에 소개된 선진국의 기준은 사뭇 다르다. 미국에서는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사회적 약자를 도우며,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고, 정기적으로 비평지를 구독해야 중산층이다. 영국의 중산층은 페어플레이를 하고,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지며, 독선적 행동을 자제하고,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맞서며, 불의.불법에 의연히 대처한다. 프랑스에서는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하고, 직접 즐기는 운동이 있으며,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고, 남들과 다른 요리를 만들 수 있고, 공분에 의연히 참여하며, 약자를 돕고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야 중산층 대접을 받는다.

  
기준의 출처가 다소 모호하므로 어느 정도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일지는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미국과 영국은 각각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옥스퍼드대학이 제시한 기준이라지만 해당 국가의 주한 대사관에서는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는 것이 기사를 쓴 취재기자의 전언이다. 프랑스의 기준은 조르주 퐁피두 전 대통령이 제시한 ‘삶의 질’ 공약과 비슷하다니 그나마 출처가 확실한 셈이다.

  
그러나 특파원과 방문학자 신분으로 미국에서 4년 동안 살아 봤고 출장이나 개인 용무로 이들 나라를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는 필자가 보기에는 참으로 그럴듯한 기준이다. 외국의 실정을 속속들이 들여다봤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우나 적어도 이들 나라의 중산층이라면 불의에 공분을 느끼고 독선을 자제하며 사회적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이 남다르다는 것쯤은 실제 생활에서 여러 번 체험했다. 어린 자녀에게 거짓과 편법을 가르치지 않고 점수를 노린 형식적인 봉사활동이나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엉터리 표창장과 추천서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인터넷에 글을 올린 이들은 우리 사회가 물질적, 경제적 기준으로 중산층을 가르는 반면 그네들은 정신적, 사회적 가치를 더 중시한다는 점을 부러워했다. 필자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자꾸 국민이 가난하다고 세뇌시킨다. 그리고는 저마다 가난한 사람을 순식간에 중산층으로 탈바꿈시킬 요술방망이라도 갖고 있는 양 떠들어 댄다. 멀쩡한 사람마저 가난하게 만들고는 표를 달라는 식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중산층인지 모를 일이다.

  
대선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내세우는 경제 민주화 공약이 좋은 예다. 그러나 현대경제연구원의 또 다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다음 정부의 선결과제로 경제 민주화를 꼽은 국민은 겨우 10.3%로 물가 안정(36.4%)과 일자리 증대(24.8%)에 한참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는 뜻이다. 경제 민주화 공약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경제전문가 사이에서 잇따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가 10년이 훨씬 넘도록 선진국 문턱을 맴돌기만 하고 막상 넘지는 못하는 이유는 경제적 역량의 부족이 아니라 정신적 미성숙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중산층 별곡은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있다. 우리 사회가 성숙한 사회로 발전하려면 정신적 가치를 물질적 가치에 우선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허구한 날 편가르기만 하는 정치권에 기대지 말고 너나 할 것 없이 진정한 중산층의 가치를 되살릴 때다. 중산층이 든든해야 건강한 사회다.

 

 

이도선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편집위원, 운영위원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전) 연합뉴스 논설실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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