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리그 ‘공천 올림픽’
4년 만에 한 번씩 치르니 올림픽이라고 할 만도 하다. 그러나 온 국민이 밤잠까지 설쳐 가며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는 하계 올림픽이나 동계 올림픽과 달리 우리 정치권의 ‘공천 올림픽’은 완전히 그들만의 리그다. 거기서 어떤 경기가 벌어지는지, 선수는 누구이고 심판은 누구인지, 규칙들은 제대로 지키는지,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지에 대해 국민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4년 만에 한 번씩 치르는 것만 올림픽과 똑같지 실상은 영 딴판이다.
참담하다!
여야의 국회의원 후보 공천 결과를 보면서 제일 처음 머리에 떠오른 단어다. 여당인 새누리당과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은 컷오프니 모바일 국민 경선이니 하며 수선을 있는 대로 피웠지만 결과는 참담할 뿐이다. 언론의 평가도 하나같이 감동이나 신선함과는 거리가 멀다. 구태 공천, 회전문 공천, 돌려막기 공천, 낙하산 공천, 땜질 공천, 계파 공천, 밀실 공천에서 사천(私薦)에 이르기까지 가히 ‘비아냥 백화점’이라 할 만하다.
새누리당은 ‘돌아온 장고’라는 말까지 나온다. 4년 전 ‘공천 학살’을 당했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번에 친이계에 제대로 앙갚음했음을 빗댄 얘기다. 공천 결과는 그러나 당명까지 바꿔 가며 내세운 도덕적, 과학적 공천이나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천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민주당 역시 실패한 공천이기는 매한가지다. ‘친노계 쏠림’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모바일 경선 부정 시비 끝에 투신자살 소동까지 빚는 바람에 치솟던 당 지지도가 한풀 꺾인 만큼 후유증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사당(私黨)이니, 공천 불복이니, 탈당이니, 무소속 출마니 하는 뒷말이 무성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게다가 기껏 따낸 공천을 취소당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되레 반납하는 이도 나오는 등 한마디로 혼돈의 극치다.
이래서 공천 무용론이 나오고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는 것이다. 어따 대고 공천 개혁이고 인적 쇄신이란 ‘거룩한’ 표현을 들먹거린단 말인가? 말만 공천이지 실제로는 만천하에 드러내 놓고 벌이는 ‘추악한 패거리 정치’의 또 다른 단면일 뿐이다. 전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엉터리 후보들을 놓고 ‘누구를 찍을까?’ 하고 고민해야 하는 유권자들만 불쌍할 따름이다. 많은 국민이 TV에서 공천 얘기만 나오면 채널을 돌려 버리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물갈이만 해도 그렇다. 누가 그들에게 물갈이 권한을 부여했나? 그리고 누가 누구를 물갈이한다는 말인가? 현역 의원 교체율이 40%를 넘느냐, 안 넘느냐는 사안의 본질과 전혀 무관하다. 10선, 20선이 수두룩한 미국이나 일본도 항상 ‘젊은 피’를 강조하나 우리 같은 인위적 물갈이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도대체 기준이 없다. 지금까지 잘했느냐, 못했느냐가 마땅히 판단의 기준이어야 한다. 잘하면 얼마든지 다시 뽑지만 못하면 가차 없이 내쳐야 한다.
그리고 물갈이를 해도 유권자가 하는 것이다. 우리 유권자는 그러나 공천 과정에서 배제돼 있다. 조직 동원과 실어 나르기가 판치는 무늬만의 경선으로 유권자를 우롱해서는 곤란하다. 누구 마음에 들면 공천받고, 그렇지 않으면 물갈이되는 식이어서도 안 된다. 심지어 초.재선 소장 정치인이 합당한 근거도 없이 같은 당 중진 보고 ‘나가라’며 대놓고 윽박지르는 식의 패륜 정치는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 자칫 우리 정치의 소중한 자산을 우리 스스로 내쫓는 우를 범할 뿐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룩한 나라다. 이제 남은 것은 선진화다. 그러자면 정치권부터 정신 차려야 한다.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보잘 것 없는 세계의 변방에서 이제는 자동차, 휴대전화, 조선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고 K-팝, 드라마, 영화, 음식, 의료, 정보통신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정상을 넘보고 있다. 정치라고 안 될 것 없다. 그러나 여야의 이번 공천 결과를 보고 여기저기서 “그 나물에 그 밥”이라거나 “이 놈도 저 놈도 모두 도둑놈”이라는 탄식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정치의 선진화는 요원해 보이기도 한다. 앞으로 4년 후에 이 짓거리를 또 봐야 한다고 생각하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 대목에서 워싱턴 특파원 시절 얼핏 엿본 미국 정치가 생각난다. 마을회관에 모여 “△△를 우리 당의 주지사 후보로 추대하자”며 파이팅을 외치던 주민들이 새삼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풍경은 대통령이나 상하원의원 예비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도 이제는 유권자들이 공천권을 행사할 때가 됐다. 말 그대로 상향식 공천이다. 우리 실정에 맞는 공천제도를 서둘러 개발해야 한다. 제발 4년 후에는 모든 국민이 손꼽아 기다리는 ‘공천 올림픽’ ‘정치 올림픽’을 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도선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지사장)
(전) 연합뉴스 논설실장
(현)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현)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편집위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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