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의 사회적 인식 전환
“100세 시대, 연령차별을 버려라.” 얼마 전 한국에 왔던 미국의 노인학 대가 팔모어 교수가 한 말이다. ‘노인학’이 뭔지 궁금해서 네이버백과사전을 찾아봤다. 노인학(Gerontology, 老年學)은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고령층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노화(노년기)에 대한 연구가 전문분야로 특히 선진국에서 발달한 학문이라는 설명이다.
팔모어 교수는 "나이를 둘러싼 일상의 편견을 걷어내라. 노인을 공경하고 노인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고령자를 차별하는 에이지즘(Ageism, 연령차별)일 수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처럼 경로사상의 예(禮)를 중시하는 유교문화권에서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발언이요 색다른 충격이다. 그에 의하면 나이 든 사람이 자전거를 타려고 할 때 위험하다며 만류하거나 흰 머리가 많아 늙어 보이니 염색하라든지 또는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도 노인을 차별하는 의식의 발로(發露)라는 것이다.
직장에서 나이가 들면 능력과 관계없이 실시하는 정년퇴직이나 명예퇴직은 연령차별의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연령차별이 문제가 되는 것은 노년세대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선입관으로 다른 세대와 달리 차별하는 자체가 공정타당(公正妥當)치 않기 때문이다. 고령자는 무능하고 쓸모없다는 사회적 인식이 노년세대의 독립의지를 꺾고 사회적 자립성을 훼손하게 된다. 따라서 일찍이 영국,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금지와 마찬가지로 연령차별 폐지가 사회운동화 되어왔다.
최근 우리사회는 업무수행능력이나 사회적 경륜으로 볼 때 얼마든지 더 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에 떠밀려 소위 백수가 된 사람들이 허다하다. 물론 경제적여유가 있어 나름대로 취미나 봉사활동을 하며 노후를 보내는 분들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말 그대로 백수생활하며 여생(餘生)을 보내고 있는 현실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살아지는’ 잉여인구인 셈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생산 가능인구(15세~64세)가 급속히 줄어들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100세 시대가 다가오는데 나이 먹은 게 죄라고 유능한 노동인력을 하루아침에 무능한 잉여인간으로 퇴출시켜 고려장(高麗葬)시키니 우리사회야말로 연령차별 폐지운동이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65세 이상 노인수가 7%에 달하면 고령화 사회라고 한다. 이미 2000년에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작년에 11.0%를 기록했고 오는 2026년이면 20.8%로 초 고령화 사회가 된다. 머지않아 전 국민의 1/5 말하자면 다섯 명 중 한명은 잉여인구(노인)가 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노령화 진행으로 잠재성장률은 크게 떨어지는 반면 복지지출수요는 계속 증가해 사회적 갈등야기 등 국가운영자체에 중대한 문제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노년층에 대한 연령차별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과감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첫째, 경제발전에 따라 전통적 유교적 가치가 무너지고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그 동안 경로사상의 고취, 노인헌장 제정, 노인대학 도입 등이 추진되어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경로위주의 차원에서 벗어나 국가경쟁력강화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서구식 노인학을 연구하고 또한 사회적 조로(早老)현상을 포함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다각적으로 검토해서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야 한다.
둘째, 정년퇴직이나 명예퇴직제도의 합리적 개선이 필요하다. 능력과 상관없이 나이순으로 획일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불합리할 뿐 아니라 우리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유능한 고령자의 정년연장 도입도 필요하다. 당장이야 청년실업이 넘쳐나는 판에 무슨 한가한 소리냐 싶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불가피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생산가능인구의 급격한 감소추세에서 인적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생산성제고를 위해서는 경험과 업무숙련도가 중시되는 분야가 많기 때문이다. 생산성을 중시하는 서구 선진국이나 일본의 경우 이미 다양한 시스템을 도입해 65~70세로 정년을 연장하는 추세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우리나라에 정년제 폐지를 권고한 사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인구구조가 역삼각형의 초 고령화 사회가 되면 노년층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세상이 된다. 지금도 지하철을 타다보면 거의 노인네들로 가득 차 있을 때가 있다. 팔모어 교수의 말처럼 경로사상(敬老思想)에 매달리기 보다는 세대를 뛰어넘어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것이 100세 시대에 대비해서 노년층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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