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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것들

김삿갓 서당을 욕하다 - 조지훈

조지훈 선생님의 글 중에서

지훈 芝薰 조 동탁 趙 東卓 선생님은(1920-1968) 고려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셨었다.

선생님의 글 중에서 유머스런 글을 소개한다.
한국의 유머는 기발하기 보다는 은근하고 구수한 숭늉 같으면서 운치가 있고 은은하고 웃음이 절로 난다.

김삿갓 김립 金笠은 그의 별호이고 본명은 김병연 金炳淵(1807-1863)이다. 순조 때 권세가문인 장동(壯洞) 김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김익순은 홍경래의 난 때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게 되었다. 이때 나이 6살이었다.

형제는 노비로 멀리 황해도로 갔으나 수년 후 그 죄는 조부에게만 한하고 멸족에서 폐족으로 사면되었다. 자손에게는 해가 미치지 않아 어머니가 숨어살던 강원도 영월에서 공부를 하며 자랐다.

조부의 행적을 모르던 병연은 20세 때에 과거에 응시하여 시제가 자기 조부에 대한 글이라 조롱하며 신랄하게 탄핵하는 글을 지어 장원급제하였다.

어머니에게서 조부의 이야기를 듣고 조상에 대한 죄책과 폐족의 수치심이 깊어져 처자식을 버려둔 채 삿갓을 쓰고 평생 방랑길에 나섰다.

김 삿갓이 어느 시골 서당에 갔더니 몰골이 남루한 그를 본 학생들이 김삿갓을 무시하였다. 그들의 품행과 거동이 괘씸한데다 선생조차 내다보지를 않으니 이 시를 지어 서당 안에 넣고 왔다고 한다.


辱說某書堂 욕설모서당 (어느 서당을 욕함)
書堂來早智 서당내조지, 房中皆尊物 방중개존물.
生徒濟未十 생도제미십, 先生來不謁 선생내불알.
서당에 아침 일찍 와서 알아보니, 방안에는 모두 귀한 분들뿐인데
생도들은 10명도 안 되는데, 선생은 내다보지도 않는구나.

조지훈-삶과 문학과 정신. 조광열. 나남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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