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웃이야기

아직도 늦지 않았다.

아래 서경석 님의 편지를 실어 함께 읽고 싶습니다.

 

 

95세 어른의 수기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나는 60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내가 35년 후인 95살의 생일 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0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5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
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5년이나 살았습니다.

35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지 1이 넘는 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5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 내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 째 생일 날
95살 때 왜?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2008.8.25.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늦지 않은 빠른 때이다.

KFC(Kenturkey Fried Chicken)를 최초로 창업하여 세계적인 체인점을 이룩한 커널 하랜드 샌더스(Colonel Harland Sanders. 1890-1980)는 6살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가 일을 하여 먹고 살았다.

그는 어머니가 일을 하러 간 시간에 어머니 대신 어린 두 동생 돌보느라 스스로 요리를 하기 시작하였고, 어린 동생들은 형이 만드는 닭튀김 요리를 아주 좋아했다고 합니다.

샌더스는 40세에 켄터키 주의 코빈에서 식당을 운영하였으나 동네를 가로 질러 고속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식당을 싼 값에 경매처리 되었다.
사회보장금 105달러로 어렵게 살던 그는 닭튀김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63세 때인 1952년부터 차를 몰고 미국의 여러 도시를 다니며 식당을 찾아가 자신의 닭튀김 요리를 보여주었다.

잡상인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 아들 뻘 되는 청년에게 “나이 생각하고 다 그만 두라”는 설교를 듣기도 했다.


샌더스는 잠은 낡은 포드 자동차 안에서 자고 세면은 공중화장실에서 하고 식사는 스스로 만든 닭튀김으로 해결했다.
3년이 넘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1009 식당에서 거절을 당했다. 마침내 68세 때 1010번째 찾아간 식당에서 첫 계약을 맺었다.
그는 피터 허먼이란 식당 주인으로 치킨 맛에 매료된 그는 치킨 한 조각 당 4센트의 로열티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고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이란 이름도 제안했다.
이렇게 출발한 KFC 치킨은 현재 전 세계 82개 국에서 1만 3천 여 곳의 매장을 가진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성공하여 년 간 20억 번 이상 KTF 메뉴가 애용된다.
KFC의 주인은 계속 바뀌었다. 그가 사망한지 벌써 28년이 지났지만 이익금의 상당한 부분을 교회를 통해 사회에 환원하고 있고,  샌더스는 여전히 KFC를 상징하는 온화한 미소의 할아버지로 우리 옆에 있다.
............................
현재를 보면 슬프지만 미래를 상상하면 가슴이 벅차다.
그는 절망 대신에 희망을 가졌고, 우는 대산 웃었으며, 방황 대신 행동했다. 자기를 냉대한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고, 자포자기 대신 세상을 감싸 안았고, 항상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