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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것들

월우회 북촌을 걷다.

 

 

북촌
북촌은 20여년 전부터 한옥보존지구로 지정
재정비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가회동에는 8경이 있다.
특히 가회동 31번지는 1930년대 지은 한옥밀집지구가 있는데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명소이다.

1935년 북촌지역에 부동산개발이 추진되었는데 당시 경성의 인구가 증가하자
정세권(경남 고성 태생)이 건양사 설립하고 이곳에 주택지를 구입하여 한옥을 대량 건축하였다고 한다.
북촌 익선동 성북동 혜화동 창신동 서대문 왕십리 행당동 등지에 많은 주택을 건립하여

정세권은 당시 건축왕이라고 불렸으며 조선어학회에 대한 재정지원과 조선물산장려운동을 후원했다고 한다.

 

헌법재판소 백송 앞에서 월우들과

 

 

 

헌법재판소에 대하여

재동 백송은 지금 헌법재판소 안에 자라고 있는데 그 수령이 600년이 되었고

이조 말 영의정 홍순목의 아들 홍영식은 개화파 문인으로서 김옥균 박영효 등과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다.

영의정 조선군에 의해 갑신정변 3일천하 때 1884년 죽임을 당하고 그의 집이 몰수되었다.

그의 집터가 지금의 헌법재판소 자리였다고 한다.

1885년 선교의사 알렌이 이곳에 세운 최초서양식 국립병원 광혜원이 들어섰고

그 후 이름이 제중원으로 바뀌였고 남대문밖 복숭아골로 1904년 이사하고 세브란스병원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 제중원 자리에 1922년 경성공립여자보통학교(경기여고 전신)가 들어섰다가 정동으로 이사하고

창덕여중고가 자리잡았다가 1989년 방이동 이사하고 1993년 헌법재판소 자리하게 되었다.

 

재동에 대하여
1953년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려고 정 유재난을 일으키며 단종을 보필하던 대신들을

이 재동으로 유인하여 참살하여 그 피가 내를 이루어 아궁이 재를 덮었다하여 잿골로 부르다
재동이 됨
1895년 두번째 오래된 초등학교 재동초교
졸업생 ㅡ 유진오 김유정 황병기 백낙청 최인호 김민기 양희은 서태지 이상은 배두나 등이 있고


1894년 교동초교 최초초등학교
졸업생 ㅡ 심훈 윤극영 오상순윤시내 양현석 강수연 구봉서 박신자 김상협 조남철 등이 있다고 한다.

 

북촌에는 고개가 있는데

홍현 정독도서관 앞 고개 땅색이 붉어서 붙여진 이름
안현 종로경찰서 앞 고개 안국방이 있어
맹현 맹사성 집이 있었던 고개
송현 솔밭 이건희 미술관 자리의 고개를 말한다.

 

1935년 북촌 부동산개발 경성인구증가
정세권 경남 고성 태생 ㅡ 건양사 설립
북촌 익선동 성북동 혜화동 창신동 서대문 왕십리 행당동 건축왕 ㅡ 조선어학회 재정지원 조선물산장려운동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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