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otech Saigon Inc.
1999년 사무실 OPEN 후 바이어 확보에 여념이 없었던 그 시절,
처음엔 지면과 인터넷에 공개된 바이어의 BUYING OFFER를 검색하여
CIRCULATION LETTER를 보내고 QUOTATION을 제시하며 시간을 낭비하였다.
그런 방식으로 제대로 된 바이어를 찾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뿐더러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KOTRA의 해외 현지사무소를 통해서 유료로 바이어 조사의뢰를
하여 내가 수출하고자 하는 아이템을 취급하거나 사용하고있는 거래선을 되도록 많이
찾아내고 KOTRA로부터 FEED BACK 받은 자료의 검토를 통해서 한 두 군데를 선정하여
선택적으로 거래제의 편지를 보내서 거래를 해 보아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베트남과 스리랑카 두 개 지역을 대상으로 KOTRA 현지 사무소에
내 주요 수출 품목의 상세한 정보를 주고 현지의 가능한 잠재 비즈니스 파트너를
찾아달라고 의뢰를 하였다.
미원 재직 시절에 이 시장은 수출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던 지역으로서
경쟁이 아직은 치열하지 않고 때가 덜 묻은 신흥시장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내가 취급하는 주 품목의 판매 가능처를 현지 KOTRA로부터 4~5개씩 추천을 받아
거래제의를 할 업체를 문서상으로 검토를 하였다.
그 결과 베트남 파트너로서 호치민에 소재한 플라스틱 연구소를 택하였다.
이 연구소는 베트남의 플라스틱을 가공하여 사업을 하는 업체에 지원을 하기 위해
설립된 공공 기관으로서 직접거래를 하기는 사용량도 적고 적절치 않았지만
많은 정보와 협력업체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고 이 연구소를 통해서
실질 바이어(FRP 제조업체)를 연결받게 되면 원하는 바대로 제조업체와
직접 기술아이템 수출거래를 할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즉각 내 소개(PERSONAL INFORMATION)와 회사소개서(COMPANY PROFILE)
를 보내고 취급품목 소개와 “당신을 통해 거래연결 또는 당신의 조직을 통해서
베트남 수출을 희망한다”라는 제안을 하였다.
다음 날 DR. LUONG BACH VAN이라는 여성으로부터 친절한 회신을 받았다.
제품에 대해 기술자료와 가격을 제시받기를 원하였고 한국의 여러 가지 주재료,
성형관련 기술 등 많은 협력을 서로 하자는 적극적인 내용이었다.
나는 즉답을 통하여 내게 관심을 표한데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했고
현지 KOTRA 직원에게도 전화와 FAX, 그리고 EMAIL을 보내어 감사를 하였다.
나는 내 MAIN ITEM을 광범위하게 소개하며 가격견적을 주었다.
그러자 며칠 후 가격이 비싸서 베트남 시장개척이 어렵겠다라고 회신이 왔고
한 번 더 BEST PRICE를 달라고 하였고 나는 최대한 성의를 다해 마지노 수준으로
제시하면서 어떻게든 비즈니스를 엮어보자고 매달렸다.
그러나 UP RESIN 그리고 유리섬유 모두 경쟁력이 없다고 업계에서 의견이 나왔으니
특단의 SPECIAL PRICE를 운용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나는 실망이 컸다.
모처럼 거래선을 발굴하여 이제 베트남과 본격적인 비즈니스를 하게 되는구나 하였는데
이미 현지의 DEALER들이 해외 각지로부터 수입하여 팔고있는 시장가격이
많이 하락했다고 한다면 이 또한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암담해 졌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계속 서로 연락을 취하면서 DR. LUONG이 필요로 한
정보와 아이템을 찾아서 자료도 건네주고 가격도 제시하여 주면서 긴밀한 관계로
유지해 나갔다.
동시에 내가 DEALING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에폭시 수지와 플라스틱원료를 추가로
소개하였던 바, 며칠 후 반가운 소식이 왔다.
내용은 “베트남에 큰 변압기(TRANSFORMA) 제조업체에서 한국의 변압기 MOLDING용
EPOXY RESIN도 구입을 하고싶고, MOLDING 시설 및 기술을 사고 싶다"고
하는 내용이며 이를 내게 연결해 주고자 하는데 관심이 있는가”하는 제안이었다.
나는 곧 바로 감사의 글과 함께 한국의 에폭시 공급업체인 JD화성을 떠올리며
내가 HANDLING이 가능하고 FULL로 지원할 수 있다고 INQUIRY를
자세히 보내달라고 하여 변압기업체로부터 직접 회신을 받게되었다.
나는 JD화성의 소개로 인천에 있는 한국의 큰 변압기 전문제조업체를 접촉하여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충실히 중간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변압기 제조업체에서 자기들과 베트남과 기술적인 격차가 크므로
기술적 이전이 쉽지않고 베트남에서 원하는 기술 및 설비 희망 수입가격 조건이 너무
낮아서 별 메릿이 없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나는 최선을 다해 설득을 하고 나름대로
견적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 기술의 이전을 완성하기 위해서 베트남에서 추가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빠짐없이 알려주면서 성사가 되는 방향으로 양측을 유도해 갔다.
그러나 결국 베트남 측에서 가격조건을 이유로 보류하고 싶다고 연락을 받고
더 이상 진행시키지 않기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나서 DR. LUONG BACH VAN은 내게 또 다른 업체를 연결해 주겠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연을 만드는 업체인데 대형 연의 살대를 FRP 인발성형으로 제조하고
싶어하는 업체였다. 나는 이 거래선에 한국의 원,부재료를 연결판매 하기위해 노력을
하였지만 사용량이 적고 파트너가 이 성형방법에 대한 기초가 부족하여 몇번 편지를
주고 받고 하다가 진행을 시키지 못하였다.
약 1년을 이렇다 할 PERFORMANCE도 없이 시간만 가면서도
DR. LUONG BACH VAN에게 계속적으로 접촉을 하면서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
보자고 매달렸다.
그러던 중 2000년 중반이 다 되어서 DR. LUONG BACH VAN은
새로운 거래선을 내게 소개하면서 잘 해서 거래를 해 보라고 편지를 띄었다.
나는 즉시 “거래선을 소개해 주어 진심으로 감사하다“의 편지와 함께
업체와 직접 접촉하라는 언질에 따라 내 소개와 회사소개서를 첨부하여
COMPOTECH SAIGON INC.라는 FRP 제조회사의
MR. CONG DOAN이라는 사장에게 ”나는 충실히 한국의 재료를 좋은 조건에
공급이 가능하고 DR. LUONG이 소개한 거래선인 만큼 최선을 다해 지원을 하겠다” 라고
간절한 편지를 보내었다.
DR. LUONG을 접촉한 지 10개월이 되어가는 시점이었으며 그렇게 거래를 원했던
즉 제대로 궁합이 나와 딱 맞는, 내가 찾던 업체를 소개 받을 수가 있었다.
COMPOTECH SAIGON INC.는 베트남 내에서 FRP HELMET과 SPA FOOT BATH를
만들어서 프랑스와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는 업체로서
매출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의 공급선으로부터 직접 수입하기를 희망하였다.
그리함으로써 구매원가를 절감하고 기술적인 지원도 충실하게 받을 수 있으며,
베트남 내의 경쟁자를 두지 않고, 원,부재료를 한국의 고급품으로 수입, 사용하여
점차 자기사업을 확대해 가고 싶어하는 의도가 있었다.
나는 내가 공급가능한 UP RESIN, G/F, GELCOAT, 등을 상세히 소개하였고
가격 INDICATION도 적극적인 수준에서 초기부터 접근하였다.
그런데 의외로 BUYER는 가격조건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기보다는
내가 공급하려는 제품의 품질과 나의 종합적인 기술력과 정보력 그리고
SOURCING 능력을 검증하려는 듯 소량 주문부터 시작되었다.
첫 LCL trial order는 일반용 수지이며 흘러내리지 않는 특성을 가진 type을
요구하였으므로 나는 향후 유리섬유의 병행판매,
그리고 장차, ISO-NPG type의 GELCOAT를 공급받기를 원하는 바이어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CVK의 수출제품이 베트남에서 품질이 않좋다고 소문이 많이
나 있었다.
이미 후배 JBS과 현지의 TB&D라는 dealer가 몇년간 CVK 제품을 취급하면서
그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았으므로 새로운 공급선이면서 제품구색과 기술서비스가
가능한 KCC가 참신하고 내겐 유리하리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최대한 BEST PRICE를 제시하고 신뢰를 주기 위해서 신속하게
TECHNICAL DATA SHEET, MSDS 등 꼼꼼하게 챙겨서 SAMPLE과 함께 보내주었다. 그러나 한 가지 예상되는 문제는 대금결제였다. 내 형편 상 buyer가 나와 직거래를 하기를 원 할 경우 KCC에 local L/C로 선 대금 결제가 선행되어야 하는 부담과
최근까지의 정보로 보아서 그렇게 마진율이 좋지 않을 것이고 그럴 경우
결국 commission base로 거래를 한다해도 KCC가 넉넉하게 offer comm.을
잘 주지도 못하는 회사고 어떤 경우는 윗 경영자들이 comm.을 주는 것 자체를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담당자의 이야기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BUYER는 베트남 현지에서 오래 전부터 CVK의 일반용 수지 제품의
문제가 있었음을 알고 있었고 C.V.K.의 제품을 새삼 구입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고
솔직히 말했다. 나는 안타까왔다. 내 출신 회사의 제품을 수출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판촉하였지만, 현지의 반응이 이 정도로 안 좋다면 굳이 이를 강요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판매는 요구자의 NEEDS에 부응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대 명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은 KCC와 협력을 하는 것으로 마음을 정리하였다.
첫 수출을 하고 나는 거래처를 소개하여 준 DR. LUONG BACH VAN에게 사례를 위해
멋진 스카프를 사서 선물로 보내었는데 즉각적으로 EMAIL로 회신이 없어서
좀 이상하다 싶어 전화를 하였더니 직장을 그만두고 자기 남편과 함께
마스터배치 제조회사를 도와 운영하고 있다고 해서 물어서 간신히 연락이 되었고
선물은 꼭 본인에게 전달해 달라고 직원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였다.
도와 준 DR. LUONG에게 그렇게라도 사례를 하고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 졌다.
최소한의 예의만 갖출 수 밖에 없던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DR. LUONG BACH VAN이 사업을 하면서 필요한 어떤 정보든
ARRANGE도 해 주리라고 마음먹고 있다.
1차 order 제품의 적용 결과가 괜찮았는지 베트남에서는 2차 ORDER가 왔다.
그런데 황당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그것은 2차 order를 위한 inquiry를 받고 best quotation을 요청하였는데 KCC에서 더 이상 UP RESIN을 1차 ORDER처럼 싼 값으로 수출하지 않기로 내부 결정이 났으니
양해해 달라고 하는 회신이 왔다.
내용인 즉슨 자기들은 페인트 전문업체이고 유리섬유를 충분하게 수출을 잘 하고
있는데, 전문성이 부족한 UP RESIN을 품질보증이란 부담을 가지고 베트남의
직 거래처를 상대로 수출을 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고 또 가격 역시
도저히 원가와는 동떨어진 수준에 거래 될 전망이어서 일찌감치 포기를 하기로
하였다는 통보였다. 나는 당황이 되었다. 이렇게 되면 수지뿐만 아니라 유리섬유까지도
구입하여 수출하기가 난감해 지는 것이다.
나는 즉시 이 사항을 소상히 buyer에게 설명을 하고 어쩔 수 없이
공급선을 급히 바꾸겠다고 하였고 buyer 역시 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 기회에 출신회사인 CVK와 이 거래를 본격적으로 연결을 하고자 신속하게
결정을 내렸고, KCC에서 1차 공급하였던 RESIN의 DATA SHEET를 C.V.K.에 제공하여 지급으로 똑 같은 type을 신규 개발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유리섬유는 한국화이바를 새롭게 접촉을 하여 공급의 가능성을 확보하였다.
아울러 C.V.K.에게도 값 싼 유리섬유의 공급이 가능하다면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베트남에 연락을 하여 한국의 공급상황을 솔직히 통보하고 그 대안으로서
“내가 C.V.K.출신이며 품질관리를 해 보았고 바짝 신경을 쓴다면 과거와 같이
C.V.K.의 불량품을 공급할 염려는 추호도 없고 당신을 위해 새롭게 수지를 개발하여
SAMPLE을 보낼 계획이며 유리섬유도 새로운 공급선을 확보했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좋다“라고 연락을 주었더니 내 말을 믿고 있으니 열심히 SOURCING하여 좋은 조건으로
거래를 하자고 호의적인 회신이 왔다.
나는 즉시 C.V.K의 개발 SAMPLE을 다시 준비해서 TEST용으로 수지와
한국화이바의 GLASS FIBER SAMPLE을 보내주었다.
물론 TECHNICAL DATA SHEET, COA, MSDA, 카타로그 등 필요한 자료를 모아서
신속하게 보내주었다.
현지에서는 며칠 후 TEST 결과가 다행히 만족한다고 회신을 보내오고
다시 TRIAL ORDER가 왔다.
참으로 기뻤다. 이제는 지속적으로 거래가 가능하다고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곧 20FT FCL BASE ORDER가 시작이 되었다.
운이 좋았다고나 할까? 이 시기에 C.V.K.는 영국으로부터 최고급 신제품인 ISO GELCOAT 제품의 생산이 시작되기 시작하였고
나는 즉시 MR. CONG에게 편지를 써서 이 신제품의 소개를 하였고 SAMPLE을 보내고
각종 기술 자료를 신속하게 ARRANGE하였다.
베트남에서 “적용 TEST 결과 매우 만족스러우니 베트남에서는 자기만 이 GELCOAT와
일반용 수지의 개발품을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나는 C.V.K.와 협의하여 잠정적으로 이를 수용하도록 유도하였고 이를 MR. CONG에게
전달하였다. MR. CONG도 매우 만족하였다.
그리고 MR. CONG은 “이제 한국을 방문하여 나도 만나 보고 C.V.K.공장도 방문하고
싶으며 장차 기계성형사업의 전개를 위해 RTM, P/T, F/W, SMC, BMC시설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업체를 구경하고 싶다고 이를 ARRANGE할 수 있겠는가”고 문의를 해 왔다. 나는 “최선을 다해 요청대로 ARRANGE하겠으며 환영을 한다”고 회신을 보내고
한국 VISA 발급을 위해서 초청장을 보내고 손님맞이 준비에 최선을 다 했다.
방문할 거래선을 선정하고 사전에 거래선 방문협조 및 일정계획을 꼼꼼히 세웠다.
바이어는 인천공항에 아침 09:00에 도착하는 비행기로 입국을 하는 스케쥴에 맞추어서 나는 새벽에 리무진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나가 피켓을 들고 MR. CONG을 맞이하였다. 그는 처음 보기에도 Mr. Cong은 수수했고 털털해 보였다.
나는 리무진버스로 용산의 내 사무실로 안내하였고 ROOM MEMBER들을 소개 하였다.
짐을 숙소(국제연수원에 1일 33,000원짜리 방을 예약해 달라고 해서 정한 숙소)에
맡기고 즉시 서둘러 도착한 C.V.K. 이종남 수출과장과 함께 전주 C.V.K.공장으로
출발하였다.
가는 도중에 그는 점심을 국수종류를 먹고싶어 했고 나는 그에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중국식 짬뽕을 권했고 그는 먹어 보겠다고 했다.
MR. CONG은 그 매운 짬뽕을 3분의 2가량 들고 식사를 마치었다.
그리고 한국의 국수, 라면 등 NOODLE 제품에 많은 관심을 표현했다.
나는 C.V.K. 전주공장을 안내하며 출신회사의 잇점을 살려 많은 직원들과 돈독한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음을 자연스럽게 보여 주어 향후 비즈니스에 많은 SUPPORT를
받아 MR. CONG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게 되었다.
공장과 연구소 실험실을 두루두루 견학하고 SMC PRESS 성형과정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서울로 상경하는 도중에 한남수지를 들러서 김녕완 사장의 소개로 F/W 오수합병 정화조
제조과정을 견학하고, 폐비닐로 PE 5인 10인용 정화조를 성형하는 공정을 살펴보았다. 그는 매우 흥미를 가지고 PE 정화조 한대를 수입하여 자체 TEST를 해 보고
장차 베트남에서 정화조 사업도 해 보고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날 서울로 상경하여 국제빌딩 지하에서 한국의 불고기를 대접하였고 저녁엔 일찍
쉴 수 있도록 국제연수원 숙소에서 헤어졌다.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하니 그는 이미 일어나서 내 사무실 주변을 산책하였는지
주차장에서 만났다. 아침은 항상 먹지 않는다고 했다.
두 번째 방문 거래선인 토탈 FRP로 향했다.
곤지암의 소머리 국밥을 점심으로 소개하여 같이 들었다.
반 정도 들고는 더 먹지 못하였다.
TOTAL FRP를 둘러보고 인발성형기기를 한국에서 값싸게 구입하고 싶다고 하며
파이프, 앵글, 환봉 등, 여러 가지 성형품의 SAMPLE을 얻어서
베트남으로 가져가고 싶다고 하여 TOTAL FRP에서 제품을 잘라서 SAMPLE을 주었다.
서울로 돌아와 내일 미국으로 또 출장을 가야하므로 마지막 밤이 되는 셈이어서 나는
서울 관광을 시켜주었다.
남산 타워를 올라가 서울 전경을 보여주었고, 북악스카이웨이를 DRIVE하고
대학로에 있는 놀부집에서 한정식을 소개하며 민속 장구춤, 부채춤, 가야금 병창등을
관람케 해 주었다. MR. CONG은 매우 흡족해 하였다.
그리고 다시 용산 숙소로 돌아와서 거봉포도를 저녁 간식으로 사서 들려주고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 내 사무실에서 MR. CONG과 마주 앉아서
향후 서로 신뢰하에 LONG TERM BUSINESS를 하기 위한 다짐도 하고 앞으로
한국으로부터 자기가 도입하고자 하는 SMC, BMC 금형과 프레스, 인발성형기계,
FILAMENT WINDING 기계, RTM 금형 및 기술에 각별한 관심과 사업의지를 표하였다.
나는 당신이야말로 황무지 같은 베트남 FRP 시장에서 떠오르는 별이요 선구자라고
칭찬을 하였다. 왜냐하면, 일찌기 뜻을 품고 프랑스에서 COMPOSITE로 박사학위를
이수하고 베트남의 국가 연구소에서 연구를 하다가 뜻을 가지고 독자적인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 째이고 이미 고급제품을 성형하여 해외에, 그것도 까다롭다는
미국과 프랑스에 수출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선구자 적인 사업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데 더 나아가 최신의 기계성형을 염두에 두고 적극적으로 투자를
계획하고 있으니 당연히 베트남 COMPOSITE 업계의 선두주자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MR. CONG은 자기 소유의 공장에서 자기가 디자인을 한 살롱 퍼니처도 제조하여
미국으로 수출을 하고 있었으며, 대나무 죽세공품을 제조하여 수출하고 있는 업체와
베트남 쌀국수제조업체에 자본 투자도 하였고, 세탁기용 세제업체에도 투자를 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내게 기존 수지 유리섬유 겔코트 비즈니스 외에 베트남 제품을 한국으로
수입판매 할 수 있도록 검토해 보아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나는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 보겠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나 역시 아이템의 종류를
불문하고 필요하다면 취급하리라 마음을 이미 먹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 중에서도 베트남 쌀 국수의 한국 수입판매는 참신하고 독특했으므로 꼭 성사시켜
보고 싶었다.
나는 그 때 비로소 MR. CONG이 한국의 국수류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현했던
배경을 알 것 같았다.
MR. CONG은 내게 조만간 베트남을 방문 해 주기를 원했고 나는 쾌히 응하였다.
“꼭 빠른 시간내에 베트남을 방문하겠다“라고 했다.
인천공항에서 MR. CONG을 배웅을 하고 나서 뿌듯하였다.
어떤 인연으로 나와 MR. CONG이 이렇게 만나서 거래를 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전생에 같은 마을에서 이웃하고 지냈던 사이와도 같아서 우리는 격의없이
서로 상의하고 대화하고 어려움을 같이 극복해 갈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후 베트남으로부터 주문량이 늘어서 수출대금을 받는 문제가 새삼 대두되었다.
나로서는 사전에 100% T/T를 받고싶었으나 MR. CONG은 50% 선금으로 50%는
B/L COPY FAX 우송 후 지불하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 제안을 선뜻 받아드렸다.
베트남에서 DEALER에게 구입하면 외상도 될 터인데 내게서 수입을 해 가면 꼬박꼬박
사전 송금을 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MR. CONG이 돌아간 후 나는 나름대로 쌀국수 영업전략을 세웠고 판매를 해 볼
각오로 SAMPLE을 요청하였다. 베트남에서 DHL로 SAMPLE이 왔다.
인스탄트 포장이 되어있었다. 뜨거운 물을 붓고 3분가량 두었다가 스프를 넣어서
섞어서 먹는 우리의 컵라면 조리법과 같았다.
객관적인 소비자 반응을 얻기 위해 사무실 근처의 식당에서 몇 사람의 패널을 구하여
맛 TEST를 할 계획으로 설문표를 만들었다.
연령별 성별 베트남 쌀 국수의 맛 에대한 평가를 문서로 받아 놓았다.
집으로 몇 개를 가져가서 우리 아이들의 맛 TEST 결과도 기록을 하였다.
그리고 미원의 입사동기를 찾아가서 나의 쌀국수 판매 계획을 설명하고 협조를 얻어
창동과 염창동에 있는 식자재 유통업체에 찾아가서 판매가능성을 협의하고 자문도
구하였다. 처음엔 분식센터에 직접 납품판매를 계획하였으나 그리되면 거래처 수가 많아도 주문량이 작으므로 원가부담이 컸다.
그래서 중간 총판을 할 수 있는 유통판매 방법으로 방향을 수정하였다.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지않았다.
우선 맛이 우리 입맛에 맞지 않았고 가격도 별로 싸지 않아서 거의 외면을 하였다.
나는 다시 다른 방법을 찾아보았다.
누군가 베트남 쌀국수를 인스탄트 식품으로 용기를 한국의 컵라면 형식으로 만들어서
24시간 편의점과 판매 독점계약을 맺고 저가로 공급하는 전략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은 미원유통(미니스톱 본사)이었다.
그러나 가격의 문제, 초기 납품 및 판매 TEST 등 난제가 많았다.
사실 초기 투자도 제법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아울러 식약청에 수입품 검사를 받아야 하는 문제가 가장 큰 장애이고 난제로 여겨졌다. 검사 결과가 좋지 않으면 모두 회송시켜야 하고 손해가 클 것이다.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하여 볼 때, 이 비즈니스는 내가 추진하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을 하였다. 나는 약 3개월을 검토 끝에 DROP을 시키기로 했다.
MR. CONG에게 이러한 나의 의견을 알리고 최종 포기를 하였다.
약속한 대로 나는 2001년 9월에 베트남을 방문하였다.
처음 가보는 베트남 출장이었다. 사전에 기초 조사를 하고 여행사를 통해서
관광비자를 얻어 출장길에 올랐다. 이것 저것 선물도 사고,
특히 한국의 농심 신라면(컵라면)을 몇 개 사고 한국의 순창 찹쌀 고추장을 샀다.
한국의 기본적인 입맛을 MR. CONG에게 알려주려는 의도였다.
호치민 공항은 9월이지만 근적끈적하고 무더웠다.
현지 시각으로 밤 11시에 공항을 빠져 나와 공항 광장에서 MR. CONG을 만나기로 하여
기다렸다.
그런데 MR. CONG은 한시간을 넘게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무척 당황하였지만 결국 계속 기다리다 못해 영업용 택시기사에게
COMPOTECH SAIGON LTD.의 사무실 근처에 있는 비즈니스 호텔로 안내해 달라고
요청하였고 다행이 객실요금이 $30/NIGHT인 호텔에 들 수 있었다.
나는 호텔까지 데려다 준 고마운 운전기사의 명함을 받아 보관하고 기사에게 10$를
요금과 서비스제공 대가로 지급하였다.
기사는 매우 만족하였다.
다음 날, 아침에 MR. CONG에게 전화를 하여 호텔에서 만났다.
어제는 시간을 잘못 기억하여 자기는 새벽 1시에 공항에 나왔었는데
한국에서 온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MR. CONG의 오토바이를 타고 COMPOTECH SIGON LTD.의
사무실, 공장, 시내관광 등을 하였다.
생각보다 재산이 많아보였고 추측했던 것 보다 공장도 잘 운영을 하고 있었다.
제품도 잘 만들고 분위기도 활발한 것이 보기가 좋았고 신뢰감도 들었다.
우리는 이곳 저곳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저녁엔 MR. CONG의 자택에서
MR. CONG의 가족들과 같이 식사를 하였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은 마치 한국의 가정집에서 먹는 밥처럼
맛도 있었고 편안하였다.
MR. CONG의 부친은 일찍이 눈을 떠서 어려운 국가 상황에서도 아들을 프랑스 유학까지
보낸 것을 본다면 지주계급이라고 생각이 되어졌다.
공장의 규모나 자택, 사무실의 외견을 보았을 때 부를 축적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마지막 미팅에서 다시 한 번 서로의 충실함과 향후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RELATIONSHIP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으며,
이런 저런 비즈니스 테마를 안고 3박 4일 간의 출장을 마치고 자신감과 신뢰감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다. 뿌듯했다.
돌아 온 후 나는 꾸준히 가격과 품질, 그리고 기타 서비스를 성심성의껏 제공하였고
MR. CONG은 대체로 만족하였다. 그러던 중 수지가 자꾸 흘러내리는 불량이 나타났다.
MR. CONG은 개선요구를 하였고 이에 대해 C.V.K의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했다.
그 와중에 가격이 계속 하락하여 마진도 그다지 좋지를 않았다.
나는 고민 끝에 다른 수지로 대체공급을 하기로 하고
SAMPLE과 TECHNICAL DATA SHEET를 보내어서 현지 TEST를 유도 하였다.
MR. CONG은 새로운 제품은 흘러내리지않아 좋다고 하였다.
가격은 가격대로 인하하여 공급하기에 이르렀고,
결제조건마저 100% 1개월 후 T/T로 요청이 들어왔다.
나는 못내 아쉽고 찝찝하였다.
물론 MR. CONG이 나중에 대금을 넣어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약간은 되었고
우선 C.V.K에 대금결제를 신속히 해 주지 못하게 되는 것이 마음이 불편했다.
사정을 이야기 하고 C.V.K에서 이를 수용해 주게 되어 나도 MR. CONG의 요청을
수락하였다.
이제는 평생 거래를 하여야 하는 관계가 되지않으면 곤란한 사이가 된 것이다.
나는 운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업을 하려면 크게 보고 길게 보고 하는 만큼 기우는 말끔히 털어내고 열심히 거래를
확대해 가리라고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2002년 들어서서 거래가 본격적으로 안정적인 국면으로 올라서는데
다시 한번 찬물을 끼었는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원료가격 상승으로 수지 가격을 C.V.K에서 대폭 인상을 하면서부터다.
MR. CONG은 최대한 가격인상을 저지하고자 나를 졸라매었고
나는 가운데 끼어서 양쪽을 모두 설득하면서 기본 마진율 확보에 최선을 다 하였다.
베트남에 팔리고 있는 다른 일반 범용 수지와는 내가 공급하는 수지의 배합비와
그 품질이 틀리고 원가도 높은 타입이므로 다른 수지 가격과 직접 비교하면서 가격을
같이 맞추어 달라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설득을 하였다.
그런데 C.V.K에서 고부가가치 수지를 함께 수출을 하면서 일반용 수지의 가격을
경쟁 관계에 있는 제품 가격보다 낮게 공급한 사실이 드러나자 나의 신뢰에 금이 가는
일이 발생하였다.
나는 매우 쑥스럽고 그 상황이 얹짢았다.
C.V.K에게 “최소한 성형업체를 상대로 직거래를 내가 운신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가격을 조정했어야 하지 않았는가“고 항의도하였고
그 덕에 특가로 다소 낮은 가격으로 거래를 계속 유지할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MR. CONG이 원하는 SMC 금형 및 설비투자에 대한 정보와 견적,
그리고 COOLING TOWER PROJECT, RTM PROJECT(금형견적) 인발성형기계의
견적(중고) 등 내가 REGULAR BUSINESS 아닌 PROJECT의 정보와 ADVICE를
계속함으로써 나의 필요성을 MR. CONG이 떨쳐버릴 수 없도록 근접, 밀착 지원을
하였다. 새로운 제품의 소개 그리고 새로운 기술자료의 우송 등 간접적인 서비스를
계속 하여왔다.
2002년 4월 경 본격적으로 MR. CONG은 미국으로부터 SPA BATH(발맛사지 욕조)의
오더가 증가되어 재료의 소요량이 늘고 생산의 확대가 필요한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는 이 시기를 기해 RTM 성형 도입을 구체화 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한국의 몇 개의 관련업체를 탐색하여 결국 유림산업이라는 업체를 알게 되었고
이 업체와 베트남 COMPOTECH SAGON INC.의 RTM PROJECT를 추진하기로 하여
APPROACH하기 시작했다.
유림은 과거 10년 동안 일반 마블 제품을 꾸준히 생산 판매해 오던 중견 업체로서
최근 2년간 RTM 성형을 시행착오를 무수히 겪으며
어느 정도 RTM 성형의 SYSTEM(기계, 설비, 금형, 제조, 마케팅)을 구축한 업체로서
한국에서 유일무이한 업체로 발돋움을 하였다.
즉시 이 회사에 나와 베트남 COMPOTECH의 계획을 알리고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고는
긍정즉인 답변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오더는 매월 20FT FCL로 증량이 되어 나의 고정 물량으로 안정화 되어가고 있다.
그러던 중 베트남으로 수출했던 어느 선적분에 대해 베트남의 세관에서
검사가 진행되었고 그 중 일본산 경화제를 내가 한국의 원산지로 서류를 잘못
신고하여 C/O를 발급 받아 보낸 것이 드러나서 현지 통관에 애를 먹게한 사건이 있었다.
원래 일본제는 원산지 증명을 일본으로 했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수입하여 재 수출하다보니 가볍게 생각했고 상공회의소 역시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었다. 나는 내 서명이 들어간 소명서와 각서를 베트남 세관에
제출하여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 후 나는 국산과 일제를 나누어서 신고를 하였다.
그런데, 한 번은 수량이 B/L과 INVOICE가 서로 틀려서 발급이 되어 다시 한 번
큰 불편을 주고야 말았다.
MR. CONG은 그 때엔 공장의 원재료 재고가 없어 급히 접대비를 써서
화물 통관을 하게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비용이 들었다고 내게 무척 화를 내었고
나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 나도 돕겠다고 했더니 MR. CONG은 내게 무려 500$을
지급하라고 요청하였다. 나는 그 돈을 변상조로 지급하겠다고 했고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사죄를 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MR. CONG의 장인이 지병으로 매우 위중하다고 하며 내게
WHITE GINSEN(백삼)을 사서 보내달라고 하여 남대문 시장에 가서 1BOX를 사서
보내었다. 그리고 나는 이 대가로 85$을 요청하였다. 이 정산은 내가 그 후 베트남에
방문했을 때, 415$을 현금으로 제공함으로써 끝났다.
최근엔 Compotech Saigon Inc.에서는 내가 수출하고 있는 수지 1종과 Gelcoat 4종을 베트남의 타업체에게 노출을 하지 않으면서 장기간 안정적으로 거래를 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모든 수지의 선적서류와 실 제품의 포장 및 표시를 나와 같이 정한 암호로
표기하기로 하였다.
나는 이를 위해서 Cray Valley Korea를 설득하여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세관에 수출신고를 할 때, Cray Valley Korea의
내부 장부 및 관세환급의 필요성에 따라 Invoice, Packing List를 2종류를 작성하여
준비했다. 수출신고용 Invoice와 Packing List는 정상적인 품명을 기록하고 괄호 속에
약호를 "Buyer's Brand : XYZ" 라고 표기 하였다.
그리고 실제 선적용 서류는 약호만 기록하여 작성하되, 경화제는 일본원산지 증명,
다른 품목은 한국원산지 증명을 발급받아 각각의 invoice, packing list를 별도로
다시 나누어 작성하고 이를 베트남에 보내는 식으로 일을 표준화 하였다.
서로의 뜻이 맞으면 이를 반드시 해결, 추진하는 식으로 서로는 더욱 가까워 질 수
있었다고 본다.
유림은 공장을 파주의 작은 공장에서 장차 대대적인 제조, 해외 마케팅, 국내 대량
납품의 의지를 가지고 온양에 소재한 대형공장을 36억을 들여 경매과정을 거쳐
매입하고, 설비이전 및 확장을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조동근사장의 지극한 관심으로
베트남 PROJECT를 적극적으로 구체화시키고자 하며 향후 RTM 생산의 파트너로서 서로 긴밀하게 협조하는 베트남 합작회사 또는 파트너회사로 키우고 싶다고까지 하였다. 이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금년 9월에 나와 조동근 사장은 베트남의
COMPOTECH SAIGON INC.을 방문하기로 계획을 세워 베트남을 찾았다.
물론 MR. CONG 역시 이를 매우 고무적으로 생각하고 조동근 사장과 만나고 싶다고
하였다. 마침내 우리는 호치민에서 MR. CONG을 만났고
서로 LONG-TERM PARTNERSHIP을 가지고 긴밀히 협력하자고 악수를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향후에 나의 경력과 지식을 살려 매우 보람있는 베트남 비즈니스를
예상하였다. 베트남의 MR. CONG이 한국의 유림산업을 공장방문 하여
구체적인 계약조건을 토의하는 과정에서 유림산업의 조동근 사장의 말이 바뀌면서
그만 신뢰관계가 깨어지고 RTM project는 보류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2005년에 위기가 닥쳤다.
한국의 수지가격은 한없이 오르는 유가와 맞물려서 천정부지로 올랐다.
그 사이에 싱가폴 대만 말레이시아 등 값싼 수지에 대한 정보가 흘러 들어간
Compotech Saigon Inc.에서는 15%나 상대적으로 비싼 한국 원료를 수입한다는 것이
불합리하게 되었으며 내 스스로도 가격차이가 많이 나는 우리 제품을 사용하라고 고집만
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품질면에서 특별한 차이가 없는 동남아 저가 수지를 수입하여
사용하라고 내가 Mr. Cong에게 조언을 해 줄 수 밖에 없는 가슴아픈 시기가 온 것이다.
물론 그 덕분에 새로운 아이템과 새로운 거래처를 신규로 활발하게 개척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어째든 정 들었던 Mr. Cong과의 거래는 뜸해졌고 고작 기능성 수지인 겔코트만
소량으로 수출하면서 명맥만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새로운 돌파구를 맞이했다.
2006년 3년 전부터 헬멧 쉴드로 알기 시작한 한국의 LW 산업의 손사장과 통화를 하던 중
그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백몰딩 오토바이 헬맷 성형기계를 중고로 Vietnam에 수출하고
그 기계에서 생산한 helmet shell을 수입하여 상호 win-win하면서 partnership을 맺는
중장기 project를 구상하게 되었다. 즉 한국의 중고성형기계를 Mr. Cong에게 수입하도록
제안하고 그 기계에서 생산되는 오토바이 헬멧을 역으로 한국의 LW산업으로 수출할 수 있는
계획안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하여 2006년 겨울 계약을 성사시키고 베트남에 중고 설비가
설치 시운전되고 지금 미국 수출용 헬멧을 시제품을 만들어 미국에 보내어서 시험 중에 있다.
이 제품이 합격이 되면 우선적으로 베트남에서 만든 헬멧을 미국으로 재 수출할 예정이다.
결국 단순한 원료의 수출에서 이젠 기계설비 + 기술 + 제조하청의 복합 비즈니스로 발전한
프로젝트 수출이 대안으로 떠 오르게 된 것이다.
경쟁력이 없는 수지를 덤핑을 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렵사리 맺은 거래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기는 너무 아까운 파트너와 한단계 upgrade된 기계장비 그리고 그 기계의 가동기술
그 기계로 성형할 수 있는 기능성 수지 유리섬유 등을 새롭게 장기 공급할 수 있는 입지를
구축할 수 있는 전기를 만들어서 거래 연장 및 상호 한단계 발전하는 전략이 바로 유효한 것이며
이러한 형태의 수출이 17년간 이 업계에서 얻은 노하우와 인맥 그리고 신뢰가 그 바탕이 되었음은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 또 다시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 사항을 차후에 다시 정리하기로 한다.
이 거래선을 확보, 유지, 발전시키면서 깨달음이 많이 있었다.
1. 거래는 무역의 단순한 감각과 절차만 안다고 유지된는 것은 아니다.
상대에게 무언가 남이 주지 못하는 독특하고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바이어가
원하는 분야의 깊고 광범위한 정보력과 이를 갖출 수 있는 나름대로의 인맥과 정보 NETWORK을
가져야 오래 거래를 지속할 수가 있다.
2. 역시 우호적이고 충실하게 SUPPORT 하면서 그리고 미래 지향적인 인간관계를
돈독히 이끌어 내어야만 비로소 장기 고정거래의 길이 열린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케
해 주었다.
3. 지혜롭게 서로가 서로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계속 고민하면서 서로에게
다소 불충실하다고 느껴질 때라도 서로를 의심하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가기 위해
상대를 유도할 것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믿고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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