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길음동은 예전에는 미아리(彌阿里 - 언덕이 많은 동네)로 불리웠고
그 곳에 내가 졸업한 미아국민학교(지금은 미아초등학교)가 문을 연 곳이고
나의 가족이 남이섬에서 이사 와서 처음 서울 살이를 하며 살던 곳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어린 시절의 추억이 아련하고 가득한 옛 동네의 모습을 그려보며
문득 그 곳으로 달려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살아간다.
미아리 고개 넘어 산동네
무허가 판자집이 다닥다닥 붙어 서민들이 하루하루 연명하며 동고동락 했던 마을
미아리 공동묘지와 솔밭 그리고 돌산(채석장)
길음시장, 인영파출소, 연탄, 비포장 도로, 가난, 개천....
2002년 길음뉴타운 개발계획으로 옛 동네 옛 추억이 모두 사라지고 없지만
골목과 큰 길을 걸어보며 옛 추억을 더듬어 본다.
필자가 졸업한 미아국민학교의 돌담.
50년이 지났지만 그 때의 그 돌담은 여전하다.
돌담 밑에는 떡볶이 장사와 풀빵장사가 자리잡고 어린이들을 유혹하던 곳이다.
학교 앞 가게들은 주로 문방구와 구멍가게들이 있었고
정문 쪽으로는 양옥집들이 줄을 지어 들어서 골목을 형성하였었다.
학교 뒷담쪽 역시 문방구와 잡화가게 그리고 집들이 나즈막하게 줄을 잇고 있었다.
내가 주로 등하교 시 이용했던 학교 후문
미아리 극장에서 삼양동을 향하던 버스길에서 학교 내부를 내려다 본다.
마주 보이는 건물은 예전에 없던 것이고 우측 건물이 우리가 배우던 교실이었는데
노랗게 리모델링을 해서 예쁘게 단장되어 있다.
학교 정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철봉대들과 구름다리 그리고 회전놀이대가 있었는데.....
저 운동장에서 쉬는 시간마다 뛰고 달리고 축구와 농구를 했었지.....
그나마 모교가 아직 남아서 학교 주변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주택가는 완전히 고층아파트들로 다 바뀌어서 옛 추억의 작은 골목과 집들은 온데 간데 없다.
겨울이면 이곳에 흐르던 개천에서 썰매를 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왼쪽 코너에는 인영파출소가 자리했고 우측길로 내려가면 길음시장이 있었다.
사진을 찍은 위치에서 뒤 언덕길로 넘어가면 정릉으로 갈 수 있었다.
왼쪽으로 올라가면 채석장(돌산이라고 불렀다) 가는 언덕이고 좌우로 판자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때 어른들은 그런 집들을 하꼬방이라고 했다.
미아국민학교 좌측의 삼양동 넘어가는 길 가에 가게(태양상회)집을 했던 우리집이 위치했던 곳
이곳에서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취학 전 그리고 초등학교 졸업때까지 살았던 동네의 초입
동창생 국현이네 집도 우측으로 들어가면 골목에 있었고 그 아래로 내려가면 개천 가에 우리집이 있었다.
그 땐 집에서 닭을 300마리정도 키웠고 부모님께서 과자도매업도 시작하였다.
그랬던 미아동은
이제 길음 뉴타운으로 재 탄생하여
옛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들은 마음 속으로만으로 간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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