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이 타령 / 품바 타령 / 품바의 고향 / 품바 공연
각설이 타령 (품바 타령)
얼-씨구씨구씨구씨구 들어간다 / 절-씨구씨구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1. 일 자나 한 장을 들고나 보니 / 일편단심 먹은 마음 죽으면 죽었지 못 잊겠네
2. 둘에 이 자나 들고나 보니 / 수중 백로 백구 떼가 벌을 찾아서 날아든다
3. 삼 자나 한 장을 들고나 보니 / 삼월이라 삼짇날에 제비 한 쌍이 날아든다
4. 넷에 사 자나 들고나 보니 / 사월이라 초파일에 관등불도 밝혔구나
5. 다섯에 오 자나 들고나 보니 / 오월이라 단옷날에 처녀 총각 한데 모아
추천 놀이가 좋을 씨고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6. 여섯에 육 자나 들고나 보니 / 유월이라 유두날에 탁주 놀이가 좋을 씨고
7. 칠 자나 한 장을 들고나 보니 / 칠월이라 칠석날에 견우 직녀가 좋을 씨고
8. 여덟에 팔 자나 들고나 보니 / 팔월이라 한가위에 보름달이 좋을 씨고
9. 구 자나 한 장을 들고나 보니 / 구월이라 구일 날에 국화주가 좋을 씨고
10. 남았네 남았네 십 자 한 장이 남았구나 / 십 리 백 리 가는 길에
정든 님을 만났구나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 전국 공통 각설이 타령 -
얼시구 시구 들어간다 절시구 시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요놈의 소리가 요래도오 천냥을 주고 배운 소리
한 푼 벌기가 땀이 난다 품 품 품바가 잘이 한다
네 선생이 누군지 남보다도 잘이 한다
논어 맹자 읽었는지 대문대문 잘이 한다
냉수동이나 먹었는지 시원시원이 잘이 한다
뜨물통이나 먹었는지 걸직걸직 잘이 한다
기름통이나 먹었는지 미끈미끈 잘이 한다
밥은 바빠서 못 먹고 죽은 죽어서 못 먹고 술은 수리수리 잘 넘어 간다
저리시구 이리시구 잘이 한다 품바 품바나 잘이 한다
앉은 고리는 등고리 선 고리는 문고리
뛰는 고리는 개구리 나는 고리는 꾀꼬리
입는 고리는 저고리 품바 품바 잘이 한다
한 발 가진 깍귀 두 발 가진 까마귀 세 발 가진 통노귀 네 발 가진 당나귀
저리시구 이리시구 잘이 한다 품바 품바나 잘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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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설이 타령 (자진모리)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여름바지는 홑바지 겨울바지는 솜바지
당신 본께로 반갑소 내 꼬라지 본께로 서럽소
주머니가 비어서 서럽소 곱창이 비어서 서럽소
일자나 한자나 들어나 보오소 일자리 없어서 굶어 죽을 판
이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이판사판 사까다지판
삼자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삼일빌딩 호화판
사자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사짜기짜 잘 살판
오자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오적들이 난장판
육자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육씨문중에 장설판
칠자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칠전 몽둥이에 불이날판
팔자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팔자 타령이 절로날판
구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구세주가 와야할판
십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십원짜리 하나가 아쉬울판
밥은 바빠서 못먹고 떡은 떫어서 못먹소
죽은 죽어도 못먹소 술은 술이술이 잘넘어간다
어허이 품바가 잘도헌다(어허이 품바가 잘도헌다)
품바허고 잘도헌다 (품바허고 잘도헌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소
어얼씨구씨구 들어간다 품바허고 잘도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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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바의 고향 - 각설이 타령 발상지
전라남도 무안은 품바의 발상지이다.
일로읍 의산리에 소재한 천사촌을 배경으로 밑바닥 인생의 한과 아픔을 풍자에 섞어 노래한 타령이다. 품바란 각설이 타령의 후렴구에 사용되는 일종으로 장단 구실을 하는 의성어였으나 현재는 각설이나 걸인의 대명사로 일반화 되었다. 일자 자유당, 공화당 시절에는 입방귀의 의미로 쓰였는데 아부 아첨하여 관직에 오른자, 기회주의자, 매국노 등의 문전에서 "방귀나 처먹어라 이 더러운 놈들아!"라는 의미로 입방귀를 뀌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한과 울분을 표출했다고 한다.
82년 초연되어 지금까지 4천여 공연을 넘어선 품바가 문헌에 처음 나타난 것은 신재효의 한국 판소리 전집 중 "변강쇠가"이다. "품바"란 타령의 장단을 맞추고 흥을 돋구는 소리라 하여 "입장고"라 불렸다고 하는데 그 말은 "입으로 뀌는 방귀"란 뜻이다.
"품바"는 일인극으로 일제 압박의 식민지 시대부터 자유당 말기까지 전국을 떠돌며 살다간 한 각설이패 대장(천장근)의 일대기를 무안군 일로읍 인의예술회(연출 김시라)가 주관하는 향토 창작 연극제에서 1982년 12월에 초연되어 4천여회 이상 국내외 공연한 향토극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인 무안군 일로읍 의산리가 품바의 고향으로 일로역에서 동남쪽으로 무안 중학교를 지나 인의산을 가는 길목인 밤나무골 공동묘지 아래가 天使村(일명 걸인촌)이다. 어느해인가 한해가 들었는데 이곳 일로에만 유독히 걸인들이 모여들어 주민 대표들이 모여 "어찌 한해가 들었는데 이곳으로만 모여드느냐?"고 불평했더니, "타향에서 괄세 받고, 푸대접 받다가 이곳 일로에 오니 문전박대 않고 한 끼니만 있어도 나누엊는 지라, 고향에 온 기분으로 떠나지 않고 눌러 앉았다."고 걸인들이 대답하니 주민들은 오히려 그들의 사정을 불쌍히 여겨 더욱더 도와준 후로 천사촌이 이루어졌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 천장근은 별명은 김작은이, 본명은 천팔만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일제치하에서 목포에서 태어나 부두 노동자로 일하다가, 일본으로 실어나가는 공출미 때문에 파업을 일으켜 수배를 받던 중, 일로로 피신하여 걸인 행세를 했으며, 6.25때 좌익들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인을 잃고 자유당때부터 100여명을 휘하에 두게되어 천사회(걸인회)를 조직해서 율법을 세우고 민폐를 끼치는 자는 엄하게 다스렸다. 그후 공화당 시절 주민등록 관계로 걸인들이 연고지를 찾아 떠나고, 구걸도 금지되자, 땅꾼, 막노동꾼으로 지내며 1972년 60여세로 타계하였으며 현재 외동딸과 외손자 7명만이 있으며 직계손은 없다.
각설(覺說)이라는 뜻은 깨우칠"각"말씀"설"로 가진 것 하나 없고 조롱의 대상인 각설이가 그 상황을 뛰어넘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뜻으로 5000년을 이어온 우리의 걸인패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그 대표적인 것이 품바이다. 해학과 풍자, 날카로운 비판의 한판 춤을 우리는 눈여겨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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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왔던 각설이/죽지도 않고 또 왔네로 시작되는 각설이타령의 원고장이 바로 무안군 일로읍 의산리이다. 한국 연극계에서 장기간에 걸친 공연으로 유명해진 품바 각설이타령은 바로 무안 천사마을이 남긴 노랫가락이다. 이 마을에 생겨난 품바 각설이의 주인공은 "김작은". 한국 거지계의 대부인 김춘삼에 필적하는 거물이다. 그는 1920년 부두노동자 파업 주동자로 도망다니다가 장타령꾼이 되어 이 마을에 들어와 천사마을을 형성하였다. 그 후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모이다 보니 100여명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폐촌이 되었다. 관광자원 개발차원에서도 복원하고 관리해야 할 것이다.
관련사이트 무안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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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마을 -품바!! 각설이 타령을 아시나요?
⊙위 치 : 전라남도 무안군 일로읍 의산리 천사마을
천사마을이라는 명칭보다는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라는 품바(각설이)타령으로 더 유명한 곳.
한국 소극장 공연의 혁신을 가져왔으며, 최장기 공연기록과 함께 해외 공연을 수십 차례나 가진 품바 각설이 타령은 지금도 해마다 연극으로 공연되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마을은 각설이 타령의 주인공인 김 작은씨는 본래 목포사람으로 1920년대 부두노동자 파업의 주모자로 몰려 도망다니다가 거렁뱅이 구걸을 하는 각설이 장타령패에 끼어 살면서 장타령꾼이 되어 이 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룬 마을로 각설이 타령의 원조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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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1999년 01월 07일 제240호
[전남]
제1대 '품바' 김시라씨 '자랑스런 전남인' 되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가장 낮은 사람'인 각설이의 애환을 타령으로 처음 극화한 제1대 `품바' 김시라(53·본명 김천동)씨가 각설이 타령 17년만에 고향에서 `자랑스런 전남인'으로 뽑혔다.
김씨는 무안군 일로읍 용산리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집 가까이에 있는 걸인촌인 천사촌의 애환을 옆에서 보며 자랐다. 지난 1968년 주민등록제가 실시된 뒤부터 정부가 구걸을 금지시켜 걸인들이 직접 부른 타령은 듣기 힘들어 졌지만 `밑바닥 인생'인 걸인들의 타령에 서려있는 애환은 사라지지 않았다. 문화운동에 빠져있던 그는 곧 각설이 타령을 희곡과 시로 만들었다.
지난 1981년 자신이 직접 제1대 `품바'가 되고 천사촌을 배경으로 남아있는 각설이 타령을 엮어 처음으로 극화한 뒤 무대에 올렸다. `밑바닥 인생'의 애환과 당시 사회를 풍자한 품바 타령의 가사와 가락은 전국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다.
품바타령은 17년간 국내의 유명배우가 대를 물려가며 `품바'로 출연해 지난 1968년6월28일에는 4000회 공연기록을 돌파했다. 또 한국 연극사상 최장기에다 최다 공연, 최대 관객동원이라는 이정표를 만들어 우리 연극으로는 처음 `가장 위대한 평론가는 관객'이라는 것을 입증시켰다. 1994년에는 <한국기네스북>에 기록됐고 미국 10대 도시 60회 순회공연으로 백상예술대상 등을 받았으며,`우리 시대의 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품바시대> 상·하권을 썼고 <품바> <남바> 등의 희곡도 남겼다. 1997년부터 올해까지 두차례 고향 무안을 찾아와 군민축제에서 `품바'를 공연해 지역민들을 기쁘게 하기도 했다. 상은 오는 31일 전남도청 회의실 종무식 때 준다. 광주/박화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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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시각 1998년12월23일18시50분 인터넷 한겨레 www.hani.co.kr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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