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가을의 소원 - 안도현
어느 오래된 돌담길 걷다가
시 한 편 읽고서
참 소박한 소원 하나 빌었습니다
쓸쓸하지는 않겠습니다
절멸하는 이 가을에
하얀 겨울만 그립겠습니다
사진.글 - 류 철 / 아산에서
가을엔 그리움으로
사랑하는 님 기다리다가
눈 내리는 겨울엔
따뜻한 햇살에 잠들어 꿈꾸고
파릇한 새봄이 되면
새들과 함께 노래하며
한여름 밤 시원한 바람과
속삭이던 은행나무
그렇게 평생 그 곳에 머무는 것
은행나무의 소원
글. 사진 / 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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