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세무서 건너편에는 오래된 한옥집들이 가득하게 들어서 있다.
세월의 때가 덕지 덕지 묻어나고 있는 한옥집들 중에는 수리를 조금씩 해서
대문과 지붕을 새로 이어 달아 맨 집도 있지만
까짓것 수리한들 빛이 나랴 하면서 없는 살림살이를 탓하며
그대로 지니고 살아가는 낡은 집이 대부분이어서
뒷골목은 전체적으로 이젠 완전하게 낙후된 도시의 빈민가를 연상하게 하며
세월의 뒤안 길로 사라지기 직전의 뒷골목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며 그 곳 그 자리에
그렇게 자리 잡고 앉아 버렸다.
어떤 한옥집은 고시원 간판을 걸어 놓은 집도 있고
피아노 수리하는 자그만 공장으로 용도가 바뀐 집도 두 곳이나 있다.
골목 어귀에는 오래된 세탁소가 특유의 냄새를 피우고
세탁소에서 빨아 널어 놓은 옷들이 골목에 걸려 있다.
골목안 주민들의 면면을 보면 대개 60대 이상의 지긋한 연세의 할머니 아저씨들이
고집스럽게 낡은 가옥을 지키며 살고 계신다.
아침 일찍 골목안에는 포장마차가 놓여있는데 아마도 저녁무렵 종로거리로 포장마차
리어카를 몰고 장사하러 나갈 모양이다.
과거에 이 곳에 자리잡고 살던 부유했던 옛 주인들이 점점 낡아가는 집들을
하나 둘씩 집을 팔고서 주거환경이 더 나은 아파트나 공기가 좋은 외곽으로 이사를 갔거나
점점 형편이 어려워져서 쉽사리 이사도 못가고 정든 옛 집을 지키고 살거나
아니면 그도 저도 형편이 않되는 사람들에게 값싸게 전세나 월세로 놓고
다른 곳에서 가서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퇴근 무렵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지름길이라고 생각하여 항상 지나다니는 종로 세무서 골목길
곧 개발이 되어서 녹지공간(공원)이 들어설 것이라고 반가운 소문을 들었기에
하루 빨리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이 동네를 깨끗하게 정비하여 녹지로 개발하였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올림픽을 앞 둔 북경시는 숨가쁘게 도시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도 북경시의 전통을 이어 온
후통(뒷골목)을 이제는 없애지 않기로 결정을 하였다고 TV에서 본 적이 있다.
서울시의 개발계획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옛 것을 두고 볼 수 있는 여유도 가지면 좋겠다.
지금껏 살아 온 이 곳 주민들은 정든 동네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하는 것을 원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대대로 오랜 기간 이 곳에 사시면서 옆집 앞집 사시는
이웃들과 오랜 정을 나누시며 지내오셨을 텐데 당장 다른 곳으로 이주하라 한다면
썩 반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승용차 한 대도 들어갈 수 없는 좁아터진 골목이
안락하거나 썩 자랑스럽지도 않을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눌러 사는 세월이 족히 30년은 넘었을 것 같다.
서울에서 보기 힘든 방아풀을 심어 놓은 화분을 골목집 앞에 내어 놓은 집도 있다.
방아잎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잘 자랄 때가지 눈여겨 봐 두었다가
지난 해 여름 어느 날 퇴근 길에
방아풀을 심어 놓은 할머니께 1000원어치를 달라고 해서
집에 가져가서 장떡을 만들어 먹은 적이 있다.
그런데 올 해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방아풀을 찾을 수가 없다.
골목안은 그저 리어카 한 대 비켜지나갈 수 있는 좁다란 폭인데
가끔씩 소음을 내 지르며 오토바이 배달꾼들이 휘젓고 달리면 가던 발 길 멈추고
오토바이를 피해 골목 한 쪽으로 붙어 서야 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앞에 마주오던 사람과 우산이 서로 부딪치면서 서로 피해가야 한다.
다리가 불편하여 노상 골목에 작은 깔판이나 낡은 의자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시던 노할머니가 요즘 안보이신다.
혹시 지난 계절에 그만 몸져 누우셨는지...
아니면 자식네 들이 모셔갔는지...
혹은 돌아가셨는지 알 수가 없다.
며칠 전에는 퇴근 길에 골목을 지나가고 있는데
한 60이나 되어 보이시는 아저씨가
'에이 전쟁이나 나서 확 뒤집어 지면 좋겠어....
먹고 살기도 힘든데 나 같은 놈을 포함해서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사람이 너무 많아...' 하신다.
고달픈 삶으로 지치신 것 같다.
좁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좁은 마당에 좁은 방들이 몇 개 들어 있고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컴컴한 방 안에 나이 연로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살고 계신다.
날이 더우면 바깥에 의자를 꺼내 놓고 앉아서 이웃과 대화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 구경도 하면서 덧없이 시간을 보내고 계신 노인들을 만나게 된다.
그 골목 안에 신기하게도 나라 꽃 무궁화 나무가 크게 잘 자라서 나이를 많이 먹고
지금껏 골목을 지키고 있음은 특별한 풍경이다.
그 옛날 적어도 20년 넘은 옛 시절에 골목안에 어느 누가 심은 무궁화나무인지 모르지만
해마다 무럭무럭 자라서 꼭 이 계절이 되면 꽃분홍색 무궁화를 피우고 있다.
줄기도 굵어지고 키도 많이 자라서 앞집 지붕을 넘는 큰 키의 무궁화가 되어 예사롭지 않다.
마치 무궁화는 이 골목안의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는 듯 늠름하게 씩씩하게 서 있다.
내가 할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할머니 이 무궁화나무가 꽤 큰데 몇 살이나 되었을까요?
할머니는 '글쎄 꽤 오래 됐을거여, 하마 20년은 넘었을 걸 잘은 몰라도 하여튼 오래됐시우.
이 아래가 흙이 좋아서 잘 자란거여' 하신다.
저 무궁화가 꼭 우리 나라 꽃이라서가 아니라
이 쓸쓸하고 외진 뒷골목에서 참고 견디며
잘 자란 그 기개를 갸륵하게 생각해서
혹시 개발이 되더라도 그대로 그 위치에 남겨 두면 좋을 것 같다.
종로 뒷골목의 역사의 산 증인인 유일한 나무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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