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하여 7000억달러를 지원한다고 기사를 접했을 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금융의 위기 사태가 크고 충격적이라 하더라도 정부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사기업의 문제를 국민의 세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안일한 생각에
놀랐다. 거대 기업을 일단 살리고 본다는 논리에 소규모 영세 자영업자들이 반발하고 분노하고 있다.
"악마는 월가(街)서 일한다"… 미(美)서민들 분노
금융위기와 구제금융 사태가 미국 내의 반(反)기업·반(反)엘리트주의적 포퓰리즘에 불을 붙였다고 미 경제전문지 포천이 28일 보도했다. 메인스트리트는 여느 미 소도시에 있는 중심 대로(大路)로, 근로소득계층과 소규모 자영업자 등을 뜻하는 개념.
미 서민들 사이에 반(反)기업 정서가 확산되자, 여론에 민감한 정치인들이 당장 영향을 받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 더그 쇼언(Schoen)은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서민들의 분노가 고착화할 경우, 미국 사회에 잠재적 재앙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계급 분노'의 시대
요즘 미 연방 하원의원들의 지역구 사무실에는 유권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친다. 존 심커스(Shimkus) 공화당 하원의원 측은 "200통 중 199통은 비난 전화"라고 했다. CNN 방송 웹사이트의 구제금융 관련 기사에는 사흘간 약 2000건의 비난 댓글이 달렸다. 뉴트 깅리치(Gingrich) 전 미 하원의장이 이달 중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69%가 "월가(街)의 투자은행이 파산해도 구제금융을 줘선 안 된다"고 했고, 84%는 "금융위기의 책임자는 CEO(최고경영자)들"이라고 지목했다. 깅리치는 28일 "대부분 서민은 구제금융을 '거물들끼리 서로 봐주고 해먹는 것'쯤으로 여긴다"며, 헨리 폴슨(Paulson) 미 재무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포천은 "미국에 역사상 유례없는 '계급 분노(class fury)'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규정했다.
◆전염되는 포퓰리즘
정치인들은 여론에 발 빠르게 반응했다. 의원들은 구제금융안에 찬성하기를 주저했고, 앞다퉈 비난 목소리를 냈다. "폴슨 장관이 사회주의적 계획으로 나라 곳간을 마음대로 주무른다"고 비난한 민주당 로이드 더깃(Doggett) 하원의원이 대표적이다. 민주당 측은 대선 초반부터 "위기는 탐욕스런 CEO와 투자자들 탓"이라며 '계급'을 소재로 이용해 왔다.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 발언은 공화당도 예외가 아니다. 오랫동안 규제 완화에 앞장섰던 존 매케인(McCain) 대선후보는 "구제금융 기업의 경영자 연봉을 미국 대통령 연봉(40만 달러) 아래로 제한하겠다"며 포퓰리스트로 '환생'했다. 미트 롬니(Romney)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정치인들이 '질시(嫉視)의 정치(politics of envy)'에 이토록 집착하는 건 내 평생 처음 본다"고 말했다.
◆"금융산업은 악마가 아니다"
포천은 이런 현상을, ▲미국인들 사이에 상대적 박탈감이 축적되고 ▲경제적 신분 상승에 대한 좌절감이 늘어난 탓으로 분석했다. 미국의 부유한 1%는 1929년 이후 역사상 최대의 부를 독점하며,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가도 1000명이 넘는다. 미 경제연구소(ERI)에 따르면, 2007년 기업 매출은 평균 3% 미만 늘어난 반면, CEO들의 보수는 20.5% 올라 평균 1880만 달러에 달했다. 게다가 구제금융에 따른 재정 압박으로, 차기 대통령은 감세와 건강보험 등 중산층을 위한 정책에 제한을 받게 된다. 켄 로고프(Rogoff)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위기로 지나친 규제장치가 도입된다면, 위기 이후에도 미 금융산업은 재기불능이 될 것"이라며 "금융산업 자체를 악으로 보고, 질식시키려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libr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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